조선으로 간 천재 외과의사

4화: 고름을 가르는 칼
"청평군의 별당은 동쪽 행랑 너머입니다."
김 내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이가 이진의 앞을 막아섰다.
"대군마마께서는 누우셔야 하옵니다. 방금도 식은땀을 쏟으셨사옵니다."
이진은 발목에 감긴 천을 내려다보았다. 피가 다시 번지지는 않았지만 욱신거림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덕삼의 팔을 누르느라 오래 서 있었던 탓이었다.
[상태 경고.]
[체온 38.2도. 활동량 제한 권장.]
'알아. 그런데 저쪽도 시간이 없다.'
정 의원은 마당 끝에서 입술을 얇게 다물고 있었다. 덕삼의 피를 멎게 한 손을 우연이라 몰아붙이던 얼굴이었다.
"종친 어른의 종기는 오늘내일한 병이 아닙니다. 대군마마께서 편히 나으신 뒤 살펴도 늦지 않사옵니다."
"밤마다 열이 난다 했지요."
"그야 독기가 성한 탓이옵니다."
"고름이 안에서 갇혀 압력을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열도 그 때문일 수 있고요."
정 의원의 눈이 번뜩였다.
"가능성만으로 종친의 몸에 칼을 대시겠다는 것이옵니까."
"그래서 먼저 봐야 합니다."
세종이 말없이 아들을 보았다. 왕의 손에는 조금 전 덕삼의 피가 묻은 옷자락이 아직 잡혀 있었다.
"진아. 네 몸이 먼저다."
그 한마디는 명령보다 아버지의 부탁에 가까웠다. 이진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현대에서도 그는 수술 뒤 쓰러질 듯한 전공의들에게 쉬라고 말했었다. 환자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자기 몸을 부수는 일은 결국 다음 환자에게도 해가 된다고.
하지만 지금은 자신 말고 칼을 제대로 쥘 사람이 없었다.
"제가 걸어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마를 쓰겠습니다. 청평군께서 움직이지 못하신다면 제가 가야 합니다."
세종의 눈썹이 낮게 움직였다.
"덕삼은 어떠하냐."
복이가 얼른 대답했다.
"팔에 감은 천은 아직 크게 젖지 않았사옵니다. 손끝도 붉고 따뜻하옵니다. 김 내관께서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출혈도 손끝 색의 변화도 없다는 말이었다. 급한 불은 넘겼다.
"준비는 이미 명한 대로 되었느냐."
"얇은 칼 하나를 대장간에서 급히 갈고 있사옵니다. 술과 끓인 물도 마련 중이옵니다."
김 내관이 대답했다.
이진은 고개를 저었다.
"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불에 달굴 수 있게 화로도 가져가십시오. 천은 새 무명으로. 상처를 만질 사람은 모두 먼저 손을 씻습니다."
정 의원이 코웃음을 쳤다.
"손을 씻는다고 종기가 나을 리 없사옵니다."
"씻지 않아 사람을 죽일 수는 있습니다."
세종은 더 묻지 않았다.
"진성군의 말을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갖추어라."
청평군의 별당은 향 냄새와 땀 냄새로 가득했다.
문턱 안쪽에는 나이 지긋한 종친이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등에는 비단 적삼이 들러붙어 있었고 이불 아래로 열기가 피어나는 듯했다.
"누구냐."
그가 고개를 돌리자 핏발 선 눈이 드러났다.
"진성군 이진이옵니다."
"병석에 누워 있다더니 남의 등을 구경하러 왔느냐."
목소리는 사나웠으나 끝이 떨렸다. 통증과 열에 밤을 잃은 사람의 떨림이었다.
정 의원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군께서는 염려 마시옵소서. 소신이 고약을 새로 마련하였으니 종기가 익으면 곧 터질 것이옵니다."
이진의 시선이 고약 사발에 멈췄다. 여러 약재와 기름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깨끗한 상처에 쓸 물건이 아니었다.
"적삼을 잘라 내겠습니다."
"감히 내 옷을?"
"옷을 벗기려는 게 아닙니다. 등에 붙은 천을 떼면 상처가 같이 뜯깁니다."
청평군이 이를 갈았다.
"하면 해라. 대신 내 등을 망치면 네가 책임져라."
"살리기 위해 하겠습니다."
이진은 복이에게 가위를 달라고 했다. 복이는 손을 씻은 뒤 끓인 물에 적신 천으로 손가락을 한 번 더 닦고 가위를 건넸다. 아이의 손은 떨렸지만 도구 끝은 흔들리지 않았다.
적삼을 조심스레 잘라 내자 등이 드러났다. 오른쪽 견갑골 아래가 손바닥 두 장만큼 붉게 부어 있었다. 중심은 자주빛으로 팽팽했고 피부는 얇은 북처럼 빛났다.
이진은 손등으로 주변 열을 살핀 뒤 손가락 끝으로 가장자리를 눌렀다.
"윽!"
청평군의 몸이 들썩였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가운데를 누르자 안쪽에서 물이 찰랑이는 듯한 감각이 손끝에 전해졌다. 파동. 깊은 곳에 모인 고름이었다.
[대상 스캔.]
[우측 견갑하부 심부 피부 농양.]
[고열 및 전신 감염 진행 위험 상승.]
[권장: 절개 배농. 세척. 지속 배액.]
이진은 숨을 짧게 내쉬었다.
"군께서는 종기가 아니라 고름주머니를 등에 달고 계십니다."
정 의원이 곧장 반박했다.
"종기는 원래 독기가 뭉친 것이옵니다. 고약으로 독을 끌어내면..."
"안의 고름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기다리면 피부를 뚫는 게 아니라 몸 안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열이 오르고 오한이 드는 것은 몸이 이미 싸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열어 빼지 않으면 밤에 의식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청평군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지워졌다.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젖은 베개만 노려보았다.
"칼을 대면 낫는단 말이냐."
"고름이 다 빠졌다고 완치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고름을 빼지 않으면 나을 기회도 없습니다."
그때 세종이 별당 안으로 들어왔다. 이진이 가마에 오르는 모습을 본 뒤 곧바로 따라온 모양이었다.
"청평군. 네 뜻은 어떠하냐."
청평군은 눈을 감았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밤마다 등을 찢어 내고 싶은 통증이옵니다. 살 수 있다면 하게 하소서."
정 의원이 몸을 숙였다.
"전하. 한 번 칼을 대면 돌이킬 수 없사옵니다. 혹여 일이 그르치면..."
"그러니 지금 그르치는 일을 멈추라는 것이다."
세종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진아. 네가 하려는 대로 하라."
화로가 별당 한쪽에서 붉게 타올랐다.
이진은 문가에 놓인 물동이를 가리켰다.
"먼저 손입니다."
젊은 의관 하나가 머뭇거렸다.
"전하 앞에서 이리 물에 손을 담그라는 말씀이옵니까."
"손가락 사이와 손톱 밑까지 문질러라. 그다음 술을 묻힌 천으로 닦아."
세종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의관들은 마지못해 손을 씻었다. 정 의원은 끝내 움직이지 않다가 세종의 시선이 닿자 물그릇에 손을 넣었다.
이진은 가장 얇은 칼을 받았다. 새 칼은 메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날은 거칠고 손잡이는 두꺼웠다. 그래도 지금 궁궐에서 구할 수 있는 것 중에는 가장 나았다.
그는 칼날을 불 위에 잠시 댄 뒤 식혔다. 술에 적신 천으로 칼과 손가락을 닦았다.
[사용자 상태: 어지럼 경도.]
[권장: 앉은 자세 유지.]
'손만 떨지 마라.'
이진은 낮은 의자에 앉았다. 복이는 그의 등 뒤에 물그릇과 천을 정리했고 김 내관은 청평군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군께서는 이를 무십시오. 움직이면 칼이 깊어집니다."
청평군이 접은 천을 입에 물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이진은 가장 부풀어 오른 중심을 다시 확인했다. 주변의 붉음이 넓어도 절개는 짧고 분명해야 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 칼끝을 눌렀다.
피가 먼저 맺혔다.
그다음 탁한 누런 고름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으으으윽!"
청평군의 등이 활처럼 휘었다. 김 내관이 어깨를 붙들었고 복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새 천을 내밀었다.
"떼지 말고 받아. 상처 가장자리는 누르지 마."
이진은 칼을 아주 조금 더 움직여 출구를 넓혔다. 고름이 천 위로 계속 흘렀다. 썩은 냄새가 방 안을 덮자 젊은 의관 하나가 헛구역질했다.
정 의원이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그만두시옵소서! 몸의 진액이 빠져나가고 있사옵니다!"
"이건 살려 둘 진액이 아니라 빼야 할 고름입니다."
이진은 끓여 식힌 물로 적신 천을 상처 주변에 대고 더러운 고름이 주변 피부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깊숙이 물을 들이붓지는 않았다. 조선의 물과 천으로 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복아. 마른 천. 길게 찢은 것도."
"여기 있사옵니다."
그는 얇게 접은 깨끗한 천 한 조각을 절개 입구에 살짝 걸쳤다. 다시 막혀 안에서 고름이 고이지 않게 하려는 임시 배액이었다. 그 위에 새 천을 덮고 붕대처럼 감았다.
[배농량 확보.]
[국소 압력 감소.]
[전신 감염 위험: 관찰 단계.]
[경고: 반복 세척 및 배액 관리 필요.]
"끝났느냐..."
청평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고름은 뺐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진이 말하자 청평군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 들썩이던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었다. 숨도 짧고 거칠게 끊기던 것에서 길고 느리게 이어졌다.
"등을 누르는 통증은 어떠십니까."
청평군은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곧 신음할 것 같던 얼굴에 믿기지 않는 기색이 스쳤다.
"불덩이가... 조금 빠진 듯하다."
세종이 한 걸음 다가왔다. 왕은 고름으로 얼룩진 천을 보았고 아들의 창백한 얼굴도 보았다.
"열이 내리겠느냐."
"바로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밤에도 열이 오를 수 있습니다. 천이 젖으면 손을 씻은 사람이 새 천으로 갈아야 합니다. 상처가 더 붉어지거나 정신이 흐려지면 즉시 저를 부르십시오."
"고약은?"
청평군이 물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마십시오. 깨끗한 천으로 덮고 지켜봅니다. 술은 상처 속에 붓지 말고 손과 도구를 닦는 데 씁니다."
정 의원이 억눌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전하. 이 처치를 기록으로 남기시면 훗날 일이 그르칠 때 누가 책임을 지겠사옵니까. 내의원의 오랜 법도까지 뒤집는 일이옵니다."
이진은 정 의원을 바라보았다.
"기록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피를 멎게 할 줄 몰라 사람을 잃고 고름을 빼지 못해 사람을 잃습니다. 책임을 묻고 싶다면 그 죽음부터 적으십시오."
별당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세종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정 의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기록하라."
정 의원의 말이 멎었다.
"오늘 본 순서를 적어라. 상처를 만지기 전 손을 씻는다. 물을 끓여 쓴다. 고름이 안에 갇혀 열과 통증을 만들면 함부로 약을 덮지 않고 살핀다."
"전하."
"그리고 청평군의 상처는 진성군의 말 외에는 누구도 건드리지 마라."
이진은 그제야 손에서 힘을 뺐다. 손바닥이 떨렸다. 복이가 재빨리 그의 팔을 받쳤다.
"대군마마. 이제 가마로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그래."
별당 문을 나서려는 순간 이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청평군은 아직 등을 대지 못하고 있었지만 눈을 감은 채 한결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고름은 빠졌어도 이 시대에는 다시 곪게 만드는 손과 천과 물이 너무 많았다.
정 의원은 붓을 든 채 상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패배보다 계산이 먼저 떠올랐다.
이진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에는 손 씻기 정도로는 못 막겠지.'
그는 발목의 통증을 참으며 가마에 올랐다.
궁궐의 손마다 닿는 술과 끓인 물을 마련하지 못하면 오늘의 칼은 내일 다시 사람을 해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