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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3화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3화: 물이 길을 기억하는 날

똑.

빈 물독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오래 울렸다.

아이들은 숨도 쉬지 못했다. 박 노인은 두 손을 모은 채 대나무 관 끝만 바라봤다. 소은은 사람들의 얼굴 대신 물레방아 축을 보았다.

끼익. 철컥.

큰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왕복 막대가 가죽 판을 눌렀다. 그런데 두 번째 움직임에서 막대가 미세하게 걸렸다. 관 안에서 꿀렁거리는 소리도 맑지 않았다.

‘공기가 덜 빠졌다.’

소은은 비탈을 뛰어올랐다. 물독 옆 대나무 관의 끝을 손바닥으로 막자 차가운 바람이 손금 사이를 간질였다. 물이 아니라 공기가 먼저 새고 있었다.

“대장장이 아저씨, 실패한 거야?”

아이 하나가 조심스레 묻자 소은은 관 끝의 삼베 매듭을 풀었다.

“아니다. 물도 길을 처음 가면 머뭇거린다.”

그는 대나무 끝에 뚫어 둔 작은 숨구멍을 바늘로 넓혔다. 관 속에 갇힌 공기가 빠질 길이 있어야 물이 밀려 올라왔다. 그다음 물레방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박 어르신. 저 고정목을 한 번만 당겨 보십시오.”

노인은 망설이다가 고정목을 잡았다. 굽은 허리가 더 굽었다. 소은은 그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세게 말고요. 이만큼만. 물레방아가 너무 빨리 돌면 관이 놀랍니다.”

고정목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움직였다. 냇물이 날개판을 밀었고 물레방아가 낮게 신음했다. 작은 바퀴가 돌며 줄을 당겼다.

철컥. 철컥.

대나무 관이 한 번 움찔했다.

다음 순간 관 끝에서 물이 쏟아졌다.

콸콸콸.

물독 바닥을 때린 물이 먼지를 밀어내며 소용돌이쳤다. 마른 흙 냄새 대신 냇물의 차가운 냄새가 비탈 위로 올라왔다. 아이들이 먼저 소리를 질렀다.

“물이 올라간다!”

“진짜 산으로 올라가!”

박 노인은 움직이지 못했다. 물독이 반쯤 차오른 뒤에야 그는 손을 뻗어 물을 떠 보았다. 손바닥에 고인 물이 석양빛을 받아 떨렸다.

“차갑구나.”

그 한마디 뒤에 노인의 눈가가 젖었다.

소은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 우는 얼굴을 보면 고생을 더 덜어 줄 방법부터 떠올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 버릇 때문에 궁궐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에게는 몹시 위험했다.

“차가운 건 냇물이니까요. 마실 물로 쓰지는 마시고 밭에만 쓰십시오.”

“총각, 이 은혜를 어찌 갚나.”

“바가지 수리 값만 받겠습니다. 콩 한 되면 됩니다.”

사람들이 웃었다. 박 노인은 웃지 못하고 물독을 쓰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그 독은 금 간 바닥만 보이던 빈 그릇이었다.

그때 비탈 중간의 대나무 관에서 물줄기 하나가 옆으로 튀었다.

퍽.

삼베를 감은 이음새가 젖어들었다. 물레방아가 힘을 받을수록 새는 물도 늘었다. 소은은 혀를 찼다.

“고정목 놓으세요!”

박 노인이 손을 놓자 물레방아가 느려졌다. 관 안에서 물이 몇 번 울컥하더니 멎었다.

구경하던 농부 하나가 곁눈질했다.

“역시 물이 제 발로 갈 리가 없지. 오늘만 되고 내일은 멈추는 거 아냐?”

박 노인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소은은 젖은 삼베를 만져 보았다. 송진이 덜 굳은 탓이었다. 신기한 기계가 아니라 이음새 하나가 덜 마른 나무 장치였다. 문제를 아는 사람에게는 손볼 일일 뿐이었다.

“내일도 됩니다. 오늘은 내가 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걸 고치면 또 물이 오르나?”

“고치지 않으면 안 오릅니다.”

소은은 단호하게 말했다. 기적이라 불리기 시작하면 고장 난 날 누군가는 하늘을 원망할 것이다. 그는 그 전에 사람들이 나무와 손의 일을 보게 만들고 싶었다.

해가 넘어간 뒤에도 소은은 공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음새를 풀고 대나무 끝을 다시 다듬었다. 마을 아낙이 가져다준 삼베를 잘게 찢어 관 둘레에 감았다. 물에 데운 송진은 그 위에 얇게 발랐다.

박 노인은 옆에서 장작불을 지켰다.

“내가 괜히 일을 벌였구먼. 바가지나 고쳐 달랬는데.”

“어르신이 벌인 일이 아닙니다. 제가 벌인 일이죠.”

“그럼 더 미안하구먼.”

소은은 망치를 멈췄다. 노인의 어깨는 물통 멜빵 자국으로 아직 붉었다. 이 장치를 뜯어 버리면 그 자국은 내일도 그대로일 터였다.

“미안하면 배워 두십시오. 내가 없을 때도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는 물레방아 옆에 작은 나무 막대를 박았다. 막대를 앞으로 밀면 물길이 열리고 뒤로 당기면 날개판으로 가는 물이 줄었다. 밭머리 물독에는 옆으로 빠지는 낮은 홈을 팠다. 물독이 차면 넘친 물이 콩밭 고랑으로만 흘러들게 했다.

“이 막대가 제일 중요합니다. 비가 많이 오면 뒤로 당기세요. 관이 울면 멈추고요.”

“관이 운다는 걸 내가 어찌 아나?”

소은은 관을 손가락 마디로 두드렸다.

“오늘처럼 꿀렁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때는 물 욕심내지 말고 막대를 놓으세요. 줄이 풀리면 이 매듭도 다시 묶고요.”

“내 손으로?”

“어르신 밭 물입니다. 내 손만 기다리면 또 물통을 지셔야 합니다.”

박 노인은 한동안 막대와 매듭을 번갈아 보았다. 처음에는 손이 떨렸다. 세 번째에는 자신이 조절한 물이 물독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물이 성미가 급하구먼.”

“사람보다 낫습니다. 시키는 대로는 하니까요.”

박 노인이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마을 사람들도 따라 웃었다. 소은은 괜히 대패를 집어 들었다. 웃음이 길어질수록 일이 늘어난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소은은 공방 바닥에 누워도 잠들지 못했다. 문밖에서는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물레방아 이야기를 했다.

“우리 밭도 냇가만 닿으면 될 텐데.”

“대장장이 총각이 또 만들어 줄까?”

“콩으로는 안 되겠지.”

소은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한 번 도와준 걸로 끝이다.’

그 결심은 아침 햇살보다 먼저 무너졌다.

공방 문을 열자 평상 앞에 농부 셋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갈라진 손바닥을 비비고 있었고 한 사람은 말라 죽은 모종을 광주리에 담아 왔다. 막내는 지게에 참나무 토막을 지고 있었다.

“우리가 일을 하겠네. 나무도 내고 땅도 파겠네. 그저 어제 그 물길을 한번 봐 주게.”

소은은 눈을 감았다.

“안 됩니다.”

세 사람의 어깨가 동시에 처졌다.

“아니,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알아요. 돈도 문제지만 한꺼번에 다 만들면 누가 돌봅니까? 냇물은 마음대로 돌고 장치는 마음대로 삐걱거립니다. 제가 매일 밭마다 뛰어다니면 낚시는 언제 합니까.”

농부들은 낚시라는 말에 어쩐지 더 진지해졌다.

소은은 공방 뒤쪽 낮은 땅을 가리켰다. 박 노인의 밭 아래로 두 갈래 얕은 물길이 이어져 있었다. 물레방아에서 올린 물을 잠시 모았다가 고랑으로 나누면 두 밭까지는 적실 수 있었다. 다만 아무나 물을 틀었다가는 물보다 먼저 싸움이 날 자리였다.

“대신 하나만 합니다. 각자 양수기를 달아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공동 물길을 파세요.”

농부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재료는 여러분이 내고 나무 깎는 일과 땅 파는 일도 나눕니다. 물은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순번대로 씁니다. 먼저 밭이 마른 집부터요. 장치가 이상하면 먼저 멈춥니다. 억지로 돌리지 마세요.”

“총각은?”

“저는 틀만 잡습니다. 한 번만요. 다음 고장은 여러분이 고치셔야 합니다.”

박 노인이 비탈 아래에서 걸어왔다. 그는 어젯밤보다 허리를 조금 더 펴고 있었다. 물통 대신 빈 손으로 길을 내려온 탓이었다.

“내 밭 물 받는 때는 뒤로 미루겠네. 먼저 말라 죽는 밭부터 쓰게.”

“어르신 밭도 말랐잖습니까.”

“하루 이틀은 버티네. 내 물통은 이제 쉬게 됐으니 그 정도 품은 낼 수 있어.”

그 말에 농부들이 서로를 보았다. 누군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소은은 입술을 다물었다. 물을 나누는 규칙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박 노인이 물통을 진 손보다 나무 막대를 잡은 손으로 먼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모습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럼 오늘 해 지기 전까지 물길을 파 두세요. 고랑 깊이는 손바닥 반 뼘입니다. 내일 아침에 봅시다.”

농부들이 일어났다. 참나무 토막을 지고 온 막내가 깊이 절을 했다.

“고맙습니다, 장인어른.”

“장인 아니고 대장장이입니다. 그리고 절은 하지 마세요. 절하는 사람 많아지면 일이 많아집니다.”

그때 사립문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물을 산으로 올린다는 공방인가?”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주막 심부름꾼 차림의 젊은 사내가 땀에 젖은 보따리를 멘 채 서 있었다. 이름을 묻자 그는 돌쇠라 했다. 읍내 주막에서 술독을 실어 나르다가 냇가 마을의 소문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는 것이다.

소은은 얼른 대답했다.

“그런 건 없습니다. 물레방아로 물독 하나 채운 것뿐입니다.”

돌쇠는 비탈 위를 올려다보았다. 마침 박 노인이 막대를 밀자 맑은 물이 물독으로 흘러들었다. 돌쇠의 입이 벌어졌다.

“물독 하나라니요. 읍내 주막 뒤 언덕에도 물이 모자라 죽겠는데요.”

“주막 물은 우물에서 길으십시오.”

“그렇겠지요. 그래도 이 얘길 들으면 다들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관아에 드나드는 관기 하나가 맡은 약초 곳간도 요즘 습기가 차서 난리라던데요. 물을 산으로 올리는 장인이면 습기쯤은 가둬 둘 묘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소은의 손끝이 굳었다.

약초 곳간이 어찌 되었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 문제는 장치가 고작 하루 만에 읍내까지 닿았다는 사실이었다. 소은은 돌쇠가 든 보따리보다 그 입이 더 무거워 보였다.

“그런 묘수 없습니다. 나는 바가지나 때우는 대장장이입니다.”

“그 말도 주막 손님들은 안 믿을 겁니다. 물독을 봤으니까요.”

돌쇠는 아쉬운 얼굴로 보따리를 고쳐 멨다.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비탈을 돌아봤다. 읍내까지 가는 길에서 그가 물독 하나를 열 개쯤으로 부풀려 말할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소은은 공방 문을 닫았다.

문짝이 닫힌 뒤에도 돌쇠의 목소리는 담장 너머로 들렸다.

“그래도 물이 산으로 올랐다는 건 꼭 말해야지!”

소은은 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마당 한쪽에는 낚싯대가 있었다. 햇빛은 좋았고 냇물은 맑았다.

그런데 물레방아는 너무 성실하게 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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