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2화: 물통 대신 물을 올리다
낡은 물방앗간은 멀리서 볼 때보다 가까이서 볼 때 더 처참했다.
지붕의 볏짚은 장마를 세 번쯤 맞은 듯 검게 죽어 있었고 흙벽에는 손가락이 들어갈 틈이 줄줄이 나 있었다. 문짝은 한쪽 경첩이 빠져 비스듬히 매달렸고 절구통에는 빗물이 고여 푸른 이끼가 떠다녔다.
그래도 소은은 그 폐가 앞에서 흐뭇한 얼굴로 서 있었다.
냇물은 맑았다.
물레방아는 아직 돌았다.
그 두 가지면 됐다. 궁궐의 차가운 돌바닥도 없고 상의원 골방의 촛불도 없었다. 밤새 도면을 고쳐 올리라는 전령도 없었다. 썩은 축과 삐걱대는 문짝쯤은 망치와 나무쐐기로 달래면 그만이었다.
“좋아. 여기가 내 무덤…… 아니 내 은퇴처다.”
소은은 말을 고치며 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죽은 사람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뒤에도 무덤이라는 말은 어쩐지 찜찜했다. 그는 대팻밥이 흩어진 마당에 쪼그려 앉아 가져온 나무판자를 꺼냈다. 먹을 묻힌 붓끝이 조금 떨렸지만 글자는 생각보다 힘 있게 박혔다.
[소은의 연장 공방]
글씨는 살짝 삐뚤었다. 그래도 궁궐에서 받은 어떤 현판보다 마음에 들었다.
호미 한 자루를 벼려주고 낫 하나를 갈아준다. 손님이 없으면 물레방아 축을 손보고 손이 남으면 냇가에 앉아 찌를 본다. 해가 지면 감자를 삶아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잠든다. 이보다 완벽한 삶이 또 있을 리 없었다.
소은은 먼저 물레방아의 중심축을 살폈다.
축목은 오래되어 겉이 갈라졌지만 속까지 썩지는 않았다. 물살을 받는 날개판 몇 장만 갈아 끼우면 일정한 회전이 나올 터였다. 그는 낡은 문짝을 뜯어 날개판을 만들고 부러진 절구공이를 깎아 축 받침을 보탰다.
끼익. 덜컥. 끼익.
반나절을 씨름하자 물레방아가 조금 덜 서럽게 울었다.
소은은 그 소리를 듣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곡식을 찧는 데도 쓰고 숫돌을 돌리는 데도 쓸 수 있었다. 더 욕심을 내면 풀무를 움직일 수도 있다. 물론 욕심을 내면 안 됐다. 욕심은 곧 발명이고 발명은 곧 소문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엄숙하게 명했다.
“한소은. 앞으로 너는 조선 최고의 천재 기술 관료가 아니다. 동네에서 칼이나 갈아주는 수수한 대장장이다. 절대 튀지 말자.”
그 선언을 마친 소은은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냇가로 나갔다.
찌를 던진 지 반 각도 지나지 않았다.
끼이익.
대장간의 허술한 사립문이 힘없이 밀렸다.
소은은 찌가 한 번 흔들리는 것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손님이 있으면 일해야 한다. 일하면 은퇴가 줄어든다. 그러나 사립문 너머에서 들려온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다.
“저기…… 대장장이 총각.”
허리가 기역 자로 굽은 늙은 농부가 문가에 서 있었다. 낡은 삼베옷은 땀에 젖어 등에 달라붙었고 양손에는 찌그러진 무쇠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바가지를 내밀다가 허리를 펴지 못해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도 고쳐 주나? 구멍만 막아 주면 되네.”
소은은 바가지를 받아 들었다.
바닥은 돌에 찍혀 움푹 들어갔고 옆구리에는 손가락 반 마디만 한 틈이 있었다. 때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쇠 조각을 덧대고 못 두 개만 박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소은의 시선은 바가지보다 노인의 어깨에 먼저 갔다.
멜빵 자국이 살갗을 눌러 놓았다.
“물을 길어 나르십니까?”
“그럼 어쩌겠나.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려 주면 좋겠지만 요즘은 밭이 입을 벌리고 있네.”
“밭이 어디입니까?”
노인은 냇가 위쪽을 가리켰다.
“저 위라네. 멀지는 않아.”
소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조선 백성이 말하는 멀지 않다는 대개 멀었다. 그는 바가지를 내려놓고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냇가에서 비탈밭까지는 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흙사면이었다. 한쪽은 칡넝쿨이 엉켰고 다른 한쪽은 작은 자갈이 굴러 발목을 잡았다. 빈손으로 올라가도 숨이 찼다. 물통을 멘 노인이 매일 이 길을 오르내린다는 사실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비탈 위 밭은 손바닥만 했다.
콩잎은 축 늘어졌고 조 이삭은 마른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밭머리에는 금이 간 물독이 하나 있었다. 바닥에는 진흙이 조금 묻어 있을 뿐 물은 없었다.
“하루에 몇 번 오르내리십니까?”
“젊을 때는 서른 번도 했지. 요즘은 열다섯 번 넘기면 눈앞이 희네. 그래도 안 하면 말라 죽으니 해야지.”
노인은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소은은 밭 아래 냇물을 내려다보았다.
물은 바로 저기 있었다. 차고 맑고 넉넉했다. 다만 사람 허리로는 너무 낮은 곳에 있었다. 자연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필요한 것은 있는데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놓아둔다.
‘바가지만 때워 주면 된다.’
소은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바가지만 때워 주면 이 일은 끝난다. 노인은 고맙다며 돌아갈 테고 소은은 다시 낚시를 할 수 있다. 장치를 만들지 않으면 소문도 나지 않는다. 소문이 나지 않으면 관아도 오지 않는다. 관아가 오지 않으면 한양도 멀어진다.
그런데 노인이 빈 물독 앞에서 허리를 주무르는 모습을 보자 그 완벽한 논리가 조금씩 부서졌다.
소은은 작게 욕을 삼켰다.
“바가지는 안 고칩니다.”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값을 못 치를까 봐 그러는가? 추수하면 콩으로라도…….”
“그 뜻이 아닙니다.”
소은은 냇가의 물레방아를 가리켰다.
“사람이 물을 지고 올라오지 않게 하겠습니다. 물이 제 발로 올라가게 만들 겁니다.”
노인은 한참 동안 소은의 손끝과 냇물을 번갈아 보았다.
“물이 발이 어디 있나?”
“없으니 만들어 줘야지요.”
그 말은 지나가던 아이 둘에게 너무 강렬했다.
“대장장이 아저씨가 물에 발을 달아 준대!”
아이들은 외치고 달아났다.
소은은 그 뒷모습을 보고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은퇴 생활은 시작부터 어딘가 잘못되고 있었다.
공방으로 돌아온 그는 잡동사니를 헤집었다.
참나무 토막 세 개. 대나무 다섯 마디. 낡은 가죽신 한 켤레. 깨진 항아리 조각. 녹슨 못 한 줌. 그리고 물레방아 옆에서 떼어낸 낡은 밧줄.
현대의 공구라면 반나절이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베어링도 없고 고무 패킹도 없고 정밀한 나사도 없었다. 대신 나무는 어디에나 있었고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었다. 가죽은 물을 막을 수 있었고 항아리 조각은 얇고 단단했다.
“조선식이면 조선식으로 가야지.”
소은은 먼저 참나무를 원반 모양으로 깎았다.
큰 바퀴 하나와 작은 바퀴 둘. 큰 바퀴는 물레방아 축에 물리고 작은 바퀴는 줄의 방향을 바꿀 도르래로 쓴다. 칼로 홈을 파고 숫돌로 거친 면을 죽였다. 홈이 비뚤면 줄이 튀고 줄이 튀면 장치는 멈춘다.
다음은 대나무였다.
그는 마디를 뚫고 속을 긁어낸 뒤 불 위에서 천천히 돌렸다. 너무 세게 구우면 갈라지고 덜 구우면 휘었다. 손바닥으로 온도를 재며 곧게 편 대나무 관을 줄지어 놓자 박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물길인가?”
“반은 물길이고 반은 숨길입니다. 물이 올라가려면 안쪽 공기가 말을 들어야 합니다.”
“공기까지 부리나?”
“부린다기보다는 속입니다.”
소은은 낡은 가죽신을 잘라 둥근 판을 만들었다. 그 위에 얇은 항아리 조각을 덧대고 작은 구멍을 냈다. 물이 들어올 때는 열리고 되돌아가려 할 때는 닫히는 문짝이었다. 현대식 이름을 붙이면 판막이지만 박 노인에게는 그런 말이 필요 없었다.
“이건 물이 뒤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문입니다.”
“물도 도망을 치나?”
“힘들게 올린 물은 다 도망치려 합니다. 사람 마음도 비슷하고요.”
박 노인은 뜻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은 작업할수록 말수가 줄었다.
작게 만들 생각이었다. 비탈밭 하나만 살릴 정도로 작고 수수하게. 마을 밖으로 소문이 나지 않을 만큼 투박하게. 그러나 손이 문제였다. 한 번 구조를 보기 시작하자 허술한 부분이 눈에 밟혔다.
도르래 홈을 다시 팠다.
대나무 관의 이음새를 삼베와 송진으로 한 번 더 감았다.
왕복 막대의 길이를 반 치 줄였다가 다시 한 푼 늘렸다.
“이러면 너무 효율이 나오는데.”
소은은 혼잣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효율이 나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동시에 아주 나쁜 일이다. 효율 좋은 장치는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모이면 소문이 생긴다. 소문은 관아의 귀에 들어가고 언젠가 한양으로 간다.
그는 일부러 겉모양을 투박하게 만들었다.
그래 봐야 구조가 이미 이상했다. 물레방아의 회전이 작은 바퀴로 옮겨 가고 도르래가 줄을 당겼다. 줄 끝의 막대는 대나무 관 안쪽의 가죽 판을 오르내리게 했다. 사람 손으로 펌프질하는 일을 냇물이 대신하는 셈이었다.
공방 담장 위로 아이들의 머리가 하나둘 올라왔다.
“진짜 물이 올라가?”
“올라가면 우리 엄마 물동이도 안 져도 돼?”
“저 아저씨 도깨비 아니야?”
소은은 칼등으로 탁자를 톡 쳤다.
“도깨비면 이렇게 땀 흘리며 일하겠냐. 내려가라. 다친다.”
아이들은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더 많은 사람을 불러왔다.
해질 무렵 냇가에는 아낙 둘과 머슴 하나와 근처 밭의 농부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팔짱을 끼고 허황된 구경거리 보듯 했고 누군가는 박 노인의 굽은 등을 보며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
소은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장치를 비탈 아래로 옮겼다.
냇가에는 낮은 받침틀을 박았다. 물레방아 축에서 내려온 줄을 첫 도르래에 걸고 다시 둘째 도르래로 넘겼다. 대나무 관은 비탈을 따라 이어 밭머리의 물독 안으로 들였다. 관 이음새마다 삼베를 감고 송진을 발라 물이 새지 않게 눌렀다.
작업이 끝나자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박 노인은 두 손을 모았다. 허황된 장난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얼굴에 남아 있었지만 눈빛은 밭머리의 빈 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은은 물레방아 옆의 고정목을 붙잡았다.
“자. 안 올라가면 바가지는 공짜로 때워 드리겠습니다.”
몇몇이 웃었다.
박 노인은 웃지 못했다.
소은은 그 얼굴을 보고 더 장난치지 않았다. 그는 고정목을 뽑고 물길을 열었다.
콸르르르.
냇물이 날개판을 밀었다.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큰 축이 삐걱이며 움직이고 옆의 작은 바퀴가 따라 돌았다. 줄이 팽팽해졌다. 왕복 막대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왔다.
대나무 관 속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꿀렁.
누군가 숨을 삼켰다.
꿀렁. 꿀렁.
소은은 귀로 소리를 세었다. 첫 흡입은 약했다. 두 번째에서 공기가 빠졌다. 세 번째는 묵직했다. 관 안에 물이 찬 뜻이었다.
비탈 위 물독 옆에 서 있던 아이 하나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어!”
모두가 그쪽을 보았다.
대나무 관 끝에서 맑은 물방울 하나가 맺혔다. 해질녘 붉은 빛을 받은 물방울은 잠깐 동안 구슬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똑 떨어졌다.
빈 물독 바닥에 작은 소리가 울렸다.
마을 사람들의 웃음이 한순간에 멎었다.
소은은 굳은 얼굴로 물레방아를 보았다. 장치는 이제 막 숨을 고른 참이었다. 다음 박자에는 물방울이 아니라 물줄기가 나올 것이다.
그 순간 박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장이 총각. 지금…… 물이 올라온 겐가?”
소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비탈 위 관 끝이 다시 부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