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1화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조선의 천재 발명가는 은퇴하고 싶다

시놉시스

현대의 카이스트 기계공학 박사이자 신약 연구원 출신인 신도진. 조선 초기 세종대왕의 절대적인 과학기술 연구기관 ‘상의원’의 천재 별좌 ‘한소은’으로 빙의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백성을 향한 훈민정음 창제와 온갖 기계 발명에 미쳐 신하들을 24시간 풀가동하는 전설의 워커홀릭 세종대왕의 지독한 야근 압박이었다! 3일 밤낮을 자지 못하고 자격루 부품을 깎다 과로사 직전에 이른 소은은, 살기 위해 사망 위장약을 먹고 궁궐을 탈출한다. 충청도 깊은 산골짜기 냇가 마을에 숨어 낚시나 하며 소박하게 살려던 계획과 달리, 그가 심심풀이로 만든 무동력 양수기, 매연 정화 온돌 구들, 나무로 만든 냉방 선풍기 등이 선비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신의 도구로 입소문이 난다. 은퇴한 천재를 다시 궁궐 야근실로 끌고 가려는 임금 세종과, 자유를 지키려는 소은의 유쾌하고 포근한 조선 대체역사 발명 힐링물.

1화: 상의원 별좌, 궁궐을 탈출하다

사각, 사각, 사각…….

칠흑 같은 어둠이 짓눌러온 한양의 경복궁, 그 귀퉁이에 자리 잡은 왕실 과학 무기 및 기구 제작소인 상의원(尙衣院)의 골방.
촛불이 눈물처럼 녹아내리는 책상 위에 한 청년이 제도의 칼날을 대고 정밀하게 구리 톱니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한소은. 장영실의 수제자이자 상의원의 실무 책임을 도맡은 천재 기술 관료였다.

그의 눈 밑은 먹을 칠해 놓은 듯 짙은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와 있었고, 깃펜을 쥔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 별좌 경, 전하께서 오늘 한글 자음 활자의 오차가 0.1푼 생겼다며, 금속 조판 전체를 다시 배열하라고 하셨소. 오늘 밤 안으로 말입니다.”

“한 경! 주상 전하께서 북방 사군 육진에 보낼 신형 화차의 화약 분사 각도를 전면 수정하라 하십니다! 내일 조회 전까지 도면을 올리라십니다!”

“경! 세자 저하께서 자격루 물통의 흘러내리는 소리가 너무 크다 하셔서 수로 배관 설계를 다시…….”

매일 밤 쏟아지는 임금 세종의 억지 요구와 야근 지시.
도진은 깃펜을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던졌다. 머릿속이 쇠붙이처럼 차갑게 마비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세종대왕님…… 백성들에겐 성군이실지 몰라도 신하들에겐 악마 직장 상사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에 2시간만 자고 5년 동안 기계를 만듭니까?’

지구의 카이스트 연구원 시절에도 이 정도로 혹독한 야근은 겪어보지 못했다.
조선 시대의 과학 혁명은 백성들의 피와 땀뿐만 아니라, 상의원 관료들의 뼛가루를 비벼 만든 기적임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다간 훈민정음이 반포되기도 전에 과로사로 개똥밭에 구를 판이었다.

소은의 시선이 책상 한구석, 붉은 매화 무늬 약병에 멈췄다.
암시장의 왜인 상인에게 가솔을 털어 구한 비약, ‘가사(假死)의 삼일약’이었다.
마시면 정확히 사흘 동안 호흡과 심장이 완전히 멈추어 의원과 대궐 어의조차 완전한 사망 판정을 내리게 만드는 기적의 물건.

소은은 나직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한소은은 오늘 상의원에서 자격루 바퀴를 깎다 과로로 돌연사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세종이 하사한 상의원 별좌 인장과 제도 붓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붉은 약병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알싸하고 쓴 기운이 전신을 돌자, 이내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며 차가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짹짹짹, 짹짹…….

맑고 청명한 참새의 지저귐 소리.
그리고 뺨을 매만지는 맑고 따뜻한 흙 내음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소은은 가슴을 크게 부풀리며 눈을 떴다.
사방은 조용하고 아름다운 충청도 산골짜기의 냇가 숲속이었고, 그의 몸뚱이는 짚더미 위에 평화롭게 누워 있었다. 삼일 약효가 끝나 안전하게 한양에서 백 리 떨어진 시골 변두리 냇가에서 깨어난 것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어 있던 어깨와 허리 관절을 풀었다.
더 이상 궁궐의 차가운 돌바닥도, 어두운 촛불도, 밤마다 도면을 가져오라 외치는 임금의 가혹한 전령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이 구름처럼 가벼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탈출…… 성공이다.”

소은은 가죽 주머니를 뒤적였다.
도망치기 전 숨겨두었던 나무 조각칼 한 자루, 무쇠 집게 하나, 그리고 주머니 속의 쇠 단추 몇 닢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대조선 상의원의 천재 관료 한소은이 아닌, 평범한 시골 냇가 대장장이 ‘레온’으로서의 첫걸음이었다.

그는 물방앗간이 달린 낡은 빈 집을 얻어 조그만 연장 공방을 차렸다.
나무 판자를 깎아 거친 먹물로 간판을 달았다.

[소은의 연장 공방]

대나무 낚싯대를 냇가에 드리우며 소은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루에 가마솥 칼이나 호미 한두 개나 벼려주고, 밤에는 맑은 물에 감자를 삶아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며 마음껏 잠을 자는 평화로운 여생. 소은은 그것만으로도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끼이익-.

그때, 대장간의 허술한 사립문이 밀려 열렸다.
가게 문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낡은 베 삼베옷을 입고, 허리가 기역 자로 꺾인 채 울상이 된 이웃 마을의 늙은 농부였다.

“……저기, 대장장이 총각. 내 밭에 물을 댈 무쇠 바가지 수선도 해 주나? 허리가 아파 비탈길을 오를 수가 없어서 말이네…….”

눈물이 그렁그렁한 늙은이의 얼굴을 보며, 소은은 조각칼을 내려두고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위대하고 유쾌한 조선 시골 대장간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