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4화: 감정소의 빈틈
귀환 차량이 협회 임시 진료소 앞에 멈췄다.
브레이크가 걸리는 충격에 태성의 옆구리가 시트에 눌렸다. 갈비뼈 안쪽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그는 신음 대신 배낭끈을 더 세게 쥐었다.
찢어진 안감 속에 코어가 있었다. 겉으로는 젖은 돌과 점액낭 조각이 든 낡은 배낭일 뿐이었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붉은 덩어리 하나가 그 안에서 열을 뿜고 있었다.
상태가 좋으면 천만 원 가까이 갈 물건이었다. 치료비와 밀린 월세가 떠올랐지만 다음 게이트를 효자손 하나로 버틸 수는 없었다.
맞은편의 한민규가 안전벨트를 풀었다.
“내리면 배낭부터 맡겨.”
태성은 창밖을 봤다. 진료소 입구 앞에는 협회 안전요원 둘이 서 있었다. 한쪽에는 소지품 보관함이 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휴대용 감지기가 붉은 불을 깜빡이고 있었다.
“치료가 먼저 아닙니까?”
“그래서 진료소에 온 거다.”
한민규의 시선은 배낭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치료 받고 확인한다. 보스방에서 나온 물건은 팀 정산과 협회 보고를 거쳐야 해.”
“제가 보스 시체에서 꺼낸 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확인하면 끝날 일이군.”
말투는 차분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문제는 확인이 끝난 뒤였다.
코어가 나오면 그것을 자신의 몫이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효자손의 존재까지 드러나면 증명할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었다.
차량 문이 열렸다.
공용 장비 상자가 발치에서 덜컹거리며 앞으로 밀렸다. 반쯤 열린 뚜껑 틈으로 낡은 장갑과 랜턴이 쏟아졌다. 그 사이에서 금 간 주방용 칼이 바닥을 굴렀다.
태성의 시선이 칼에 붙었다.
자른다.
가른다.
필요 없는 것을 떼어 낸다.
품 안의 코어가 옆구리를 덥혔다.
[신규 촉매 인식]
[C급 보스 코어: 쇠갑 늑대왕의 코어]
[합성 후보 탐색 가능]
태성은 허리를 숙이는 척하며 주방용 칼을 집었다. 손잡이에 눌어붙은 기름때가 손바닥에 묻었다. 칼날은 휘었고 끝은 조금 무뎠다.
그래도 현대 물품이었다.
“그건 왜 집어?”
한민규가 물었다.
“상자 밖으로 굴러 나왔습니다.”
태성은 칼을 그대로 공용 상자 위에 올렸다. 지금 챙기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그가 문턱에 발을 내딛자 옆구리의 상처가 당겼다. 피와 점액이 굳은 조끼 안쪽에서 살갗이 뜯기는 느낌이 들었다.
태성은 배를 움켜쥐고 몸을 구부렸다.
“세척실부터 써도 됩니까? 피가 너무 묻어서요.”
의료 담당이 가까이 다가와 조끼를 살폈다. 상처 주변의 붉은 얼룩과 검푸른 핏줄을 본 여자가 바로 손을 들었다.
“오염 물질이 남았어요. 세척 먼저 합니다. 동행은 한 명만.”
“제가 가겠습니다.”
한민규가 한 발 나섰다.
의료 담당은 고개를 저었다.
“보호구 없으면 안 됩니다. 대기하세요. 감염성 점액인지 확인도 안 됐어요.”
한민규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었다.
태성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배낭은 밖에 두겠습니다. 대신 누가 손대는 건 기록으로 남겨 주세요.”
“당연히 남긴다.”
한민규가 배낭을 받아 들었다. 손은 조심스러웠지만 무게를 재듯 한 번 들어 올렸다.
태성은 모르는 척 세척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잠금장치를 걸었다.
좁은 공간에는 세면대와 오염 물품 수거함뿐이었다. 천장 모서리의 카메라는 출입문 쪽을 향해 있었다.
태성은 숨을 고르며 효자손을 꺼냈다.
연분홍 플라스틱은 점액과 피로 더러워져 있었다. 손끝의 투명한 갈고리는 빛을 잃었지만 태성이 손잡이를 쥐자 얇은 붉은 선이 안쪽에서 살아났다.
“이번에는 옷감이다.”
[마력 포획의 손 활성화]
[포획 대상 탐색]
효자손 끝을 배낭의 찢어진 안감에 댔다. 갈고리가 실밥 사이로 파고들었다. 태성은 힘을 주지 않고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쭉.
엉킨 실이 풀리며 안감이 벌어졌다.
그 틈에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고급 촉매 인식]
[마력 파동 주의]
태성은 코어를 집었다.
손바닥이 바로 화끈거렸다. 보스의 목 안쪽에서 뽑혀 나온 물건은 차갑게 식어 있지 않았다. 안에 갇힌 짐승의 숨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세면대 물을 틀어도 열은 가시지 않았다. 태성은 모르는 마력 물질을 물에 담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태성은 응급 상자에서 냉각팩 하나를 꺼냈다. 사용 기한이 지난 물건이었지만 팩을 꺾자 안쪽에서 차가운 액체가 퍼졌다.
코어를 수건 조각으로 감싼 뒤 냉각팩 위에 올렸다. 그 위로 슬라임 점액이 묻은 효자손 끝을 댔다.
“흐르는 것만 붙들어.”
투명한 갈고리들이 코어 표면에서 피어나는 붉은 선 몇 가닥을 걸었다. 태성은 당기지 않았다. 갈고리를 서로 가까이 모아 선들이 한곳에서 맴돌게 했다.
[비생체 마력 선 포획]
[포획 유지 시간: 12초]
붉은빛이 코어 밖으로 번지는 대신 안쪽으로 눌렸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손가락 사이로 새던 열기가 조금 잦아들었다.
태성은 조끼 안쪽의 금속 보강대를 만졌다. 게이트 작업용 조끼에는 얇은 철판이 두 겹 들어가 있었다. 충격을 막기엔 형편없지만 코어 하나를 끼울 틈은 있었다.
그는 찢어진 붕대 조각을 길게 찢었다. 냉각팩과 수건에 싼 코어를 철판 뒤로 밀어 넣고 붕대로 단단히 묶었다.
왼팔을 움직일 때마다 역류 후유증이 저려 왔다. 매듭은 몇 번이나 풀렸다.
[포획 유지 시간: 3초]
“알아. 길게 못 가.”
마지막 매듭을 조이자 효자손의 빛이 꺼졌다.
태성은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골랐다. 코어는 몸에 있었고 감지기에 걸릴 가능성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배낭에 있지 않다는 차이는 남았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진태성 씨. 괜찮으세요?”
“나갑니다.”
태성은 수돗물로 얼굴의 피를 대충 닦았다. 효자손은 조끼 바깥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냉각팩의 남은 포장지는 수거함에 버리지 않았다. 코어의 온기가 남아 있다면 그 흔적도 누군가에게는 질문거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포장지를 주머니에 넣고 문을 열었다.
복도 끝의 임시 접수대 앞에서 한민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안전요원과 의료 담당이 서 있었다. 배낭은 투명 보관 봉투 안에 들어가 있었다.
“확인해도 되지?”
한민규가 물었다.
태성은 배낭을 봤다. 안감은 이제 빈 천이었다. 하지만 효자손을 보고도 평범한 물건으로 넘길 수 있을지는 별개였다.
“확인은 하시죠. 대신 목록을 나눠서 적어 주세요.”
“뭘 나눠?”
“팀 지급 장비와 제 개인 물건요. 제가 들고 들어간 생활 장비까지 팀 자산으로 적히면 곤란하니까요.”
안전요원이 태성을 보았다.
“개인 장비가 뭡니까?”
태성은 조끼 주머니에서 효자손을 꺼냈다. 점액이 말라붙은 연분홍 손바닥이 축 늘어졌다.
“이거요. 시장에서 산 등긁이입니다.”
안전요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한민규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에 그걸 들고 들어왔다는 거야?”
“등이 가려우면 일이 안 됩니다.”
태성은 효자손을 접었다 폈다. 힘을 잃은 갈고리는 평범한 플라스틱 손가락처럼 보였다.
의료 담당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삼켰다.
한민규는 웃지 않았다.
“그게 안에서 빛난 물건은 아니겠지.”
“점액이 묻은 플라스틱이 빛나면 바로 버리겠습니다.”
“네가 안에서 본 것도 보고해야 한다.”
“그건 하겠습니다.”
태성은 한민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보스방에서 살아 나온 짐꾼의 등긁이까지 압수할 규정은 없을 겁니다.”
안전요원이 휴대 단말을 몇 번 넘겼다.
“개인 생활 물품은 기록 후 반환입니다. 오염 검사는 해야 하고요.”
“검사하세요.”
태성은 손을 내밀었다. 안전요원이 효자손에 간단한 마력 측정기를 댔다. 화면에는 미약한 잔류 반응만 떴다. 게이트 안을 굴렀다면 이상하지 않은 수치였다.
한민규의 입가가 굳었다.
태성은 다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아까 차량에서 나온 칼도 하나 있습니다.”
“그 고물?”
“공용 상자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폐기 예정이면 제가 가져가도 되죠?”
안전요원이 공용 장비 상자에 붙은 목록을 확인했다. 금 간 주방용 칼 옆에는 검은 글씨로 ‘폐기’가 찍혀 있었다.
“팀 지급 장비는 아니네요. 폐기 물품 인수로 처리하면 됩니다.”
한민규가 끼어들었다.
“굳이 그걸 왜 가져가려고 하지?”
태성은 칼을 받아 들었다. 휘어진 날을 손가락으로 살폈다.
“집에 칼이 하나뿐이라서요. 아직 쓸 만합니다.”
안전요원은 인수 확인란을 내밀었다. 태성은 떨리는 손으로 이름을 썼다. 한민규는 그 과정을 끝까지 지켜봤다.
배낭 검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통 하나.
찢어진 점액낭 조각.
돌가루가 든 작은 주머니.
피 묻은 붕대.
코어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한민규가 찢어진 안감을 들춰 보았다. 비어 있는 천 조각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게 전부야?”
“팀장님이 보신 그대로입니다.”
“보스방에서 나온 뒤에 누가 네 배낭에 손댄 적은?”
“없습니다.”
태성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 말도 틀리지 않았다. 배낭에 손댄 건 세척실 안의 자기뿐이었다.
한민규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배낭 안쪽을 끝까지 훑었다.
태성이 숨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진료소 출입구 옆 감지기가 날카롭게 울렸다.
삐이이익!
붉은 불빛이 태성의 가슴 앞에서 빠르게 점멸했다.
[미신고 고등급 마력 반응]
복도 안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태성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코어는 철판 뒤에 있었다. 효자손으로 흐름을 묶어 둔 효과는 이미 끝났다.
한민규가 한 발 다가왔다.
“부상자한테서 고등급 반응이 나온다고?”
태성은 조끼를 붙잡았다. 지금 여기서 코어를 꺼내면 끝이었다. 반대로 감지기를 피하려 도망쳐도 끝이었다.
그는 왼팔을 들어 보였다.
검푸른 핏줄이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도드라져 있었다. 보스방에서 마력 역류를 맞은 흔적이었다.
“안에서 마력에 쓸렸습니다.”
“그걸로 이런 반응이 나?”
“저도 처음입니다. 그래서 치료받으러 왔고요.”
태성은 안전요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식 감정 예약 잡아 주십시오. 부상 반응인지 물건 반응인지 확인해야 할 거 아닙니까.”
한민규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협회 안전요원 앞에서 부상자를 강제로 뒤지는 건 다른 문제였다.
안전요원이 단말을 확인했다.
“오늘은 응급 감정 인원이 없습니다. 내일 오전 첫 순번으로 잡겠습니다. 그전까지 고등급 반응 물품을 추가로 소지하거나 이동시키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태성은 대답했다.
내일까지.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코어를 팔아 버리기에도 모자라고 합성을 시도하기에도 빠듯한 시간.
안전요원이 예약표를 출력했다. 종이 위에 태성의 이름과 반응 기록이 찍혔다.
‘미신고 고등급 마력 반응.’
붉은 글자가 유난히 선명했다.
한민규가 그 종이를 힐끗 봤다.
“내일 감정소에 나도 간다.”
“팀장님 마음입니다.”
“네가 뭘 숨겼는지 확인할 때까진 내 일이야.”
태성은 대꾸하지 않았다.
조끼 안쪽의 코어가 다시 미지근하게 열을 냈다. 붕대 아래의 주방용 칼 손잡이도 손가락에 닿았다.
[합성 후보 탐색 가능]
[마력 안정 부족]
[권장: 외부 간섭 없는 장소 확보]
태성은 예약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름이 남았다.
한민규의 시선도 남았다.
그래도 코어와 칼은 아직 자기 손 안에 있었다.
그는 진료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일 감정소 문이 열리기 전까지 이 둘의 값을 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