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짜리 아이템으로 세계 제패

3화: 푸른 틈의 값
[비생체 마력 선 포획]
[안정성 낮음]
[사용자 마력 잔량 위험]
진태성은 효자손 손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돌무더기 사이로 보이는 푸른 틈은 사람을 살려 줄 문처럼 보이지 않았다. 얇고 길게 찢어진 상처였다. 바위와 바위가 서로를 밀어 죽이기 직전의 틈.
손끝의 투명한 갈고리들이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갈고리마다 푸른 선이 걸려 있었다. 생물의 혈관처럼 규칙적이지 않았다. 어떤 선은 천장을 향했고 어떤 선은 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몇 가닥은 돌을 휘감은 채 서로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태성은 숨을 짧게 들이켰다.
“이걸 그냥 당기면.”
바로 옆의 바위가 낮게 울었다.
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당기는 순간 보스 방 천장이 먼저 내려앉을 것이다.
바깥에서 한민규가 소리쳤다.
“진태성! 살아 있으면 손부터 빼! 안쪽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태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빛이 난다는 말은 곧 질문이 나온다는 뜻이었다. 저 빛이 뭔지. 보스는 어떻게 죽었는지. F급 짐꾼이 왜 살아 있는지.
그런 질문은 밖에서 받아도 늦지 않았다.
지금은 이 틈을 살아서 통과하는 게 먼저였다.
태성은 손잡이를 당기는 대신 비틀었다. 효자손 끝이 푸른 선을 짧게 긁었다. 서로 단단히 감긴 선 하나가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미끄러졌다.
바위 하나가 손가락 한 마디만큼 물러났다.
[비생체 마력 선 구조 분석 불가]
[포획 유지 시간: 8초]
“분석은 나가서 해.”
태성은 다시 손목을 꺾었다.
효자손의 본래 용도는 등을 긁는 것이었다. 깊은 곳에 있는 가려운 데를 찾아내고 걸린 것을 끌어낸다.
지금도 비슷했다.
바위를 밀어내는 게 아니다. 바위 사이에 끼어 서로를 잡아당기는 마력의 가시를 하나씩 긁어내는 것.
푸른 선 두 가닥이 갈고리에 걸렸다. 태성이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자 얽혀 있던 선이 풀리며 바위 틈이 조금 더 벌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쨍!
왼쪽 팔꿈치에서부터 손끝까지 얼음물을 부은 듯 차가워졌다. 푸른 마력이 팔을 타고 역류했다. 피부 아래에서 핏줄이 검푸르게 도드라졌다.
[마력 역류]
[포획 유지 시간: 5초]
태성은 이를 악물었다. 손을 놓으면 틈은 다시 닫힌다. 다시 잡을 마력은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깨진 마석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발끝으로 조각을 끌어와 밟았다. 바삭 소리와 함께 가루가 튀었다. 태성은 허리를 숙여 그 가루를 효자손 손잡이에 문질렀다. 이미 붙어 있던 슬라임 점액과 피가 가루를 눌러 붙였다.
[임시 촉매 잔재 흡수]
[마력 공급량 극미]
“극미면 할인 폭도 극미냐?”
손잡이 안쪽의 붉은 선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팔을 짓누르던 냉기가 아주 조금 물러났다. 딱 한 번 더 움직일 만큼이었다.
태성은 갈고리를 가장 굵은 푸른 선에 걸지 않았다. 그 선은 바닥과 천장을 함께 묶고 있었다. 잘못 건드리면 방 전체가 접힐 것이다.
대신 그 옆에서 잘게 갈라져 나온 선들을 골랐다.
한 가닥.
또 한 가닥.
효자손 끝이 짧게 긁힐 때마다 바위가 손바닥 너비만큼 어긋났다. 돌가루가 머리 위로 쏟아졌다. 어깨에 작은 돌이 떨어져도 태성은 피하지 못했다.
[포획 유지 시간: 1초]
“지금이다.”
태성은 효자손을 힘껏 옆으로 훑었다.
푸른 선들이 한꺼번에 튕겨 나갔다. 돌무더기 안쪽에서 낮은 마찰음이 길게 이어졌다. 서로 맞물렸던 바위들이 비틀리며 벌어졌다.
사람 한 명이 옆으로 누워 지나갈 만큼의 틈.
그와 동시에 효자손의 빛이 꺼졌다.
태성의 팔이 툭 떨어졌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보스 방 뒤쪽에서 천장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태성! 빨리 나와!”
한민규의 목소리가 이번에는 가까웠다.
태성은 품 안을 먼저 더듬었다.
찢어진 배낭 조각에 감싼 쇠갑 늑대왕의 코어가 아직 거기 있었다. 손바닥만 한 붉은 덩어리는 열을 품고 있었다. 이걸 내보이면 보스 드롭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목 안쪽에서 어떻게 꺼냈느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 질문 끝에는 이 효자손이 있다.
태성은 배낭의 뜯어진 안감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코어를 안감과 겉감 사이로 밀어 넣었다. 피와 먼지로 젖은 천을 여러 번 접어 눌렀다.
겉에서 보면 찢어진 배낭일 뿐이었다.
효자손은 더 숨기기 어려웠다.
연분홍 플라스틱 손바닥은 누가 봐도 싸구려였다. 하지만 손끝의 투명한 갈고리와 손잡이 안쪽의 붉은 선은 평범한 물건이 아니었다.
태성은 바닥의 슬라임 점액을 손등으로 쓸어 효자손 위에 문질렀다. 피와 돌가루까지 덧붙이자 붉은 선은 얼룩 속에 가려졌다. 갈고리도 빛을 잃은 채 손가락 사이로 접혔다.
그는 효자손을 허리 뒤에 끼웠다.
누가 물으면 짐꾼이 들고 다니던 등긁이라고 하면 된다. 사실이기도 했다.
천장이 한 번 더 울렸다.
태성은 몸을 옆으로 돌려 틈에 어깨를 밀어 넣었다. 갈비뼈가 바위에 닿자 숨이 멎을 만큼 아팠다. 상처 난 팔이 눌리며 뜨거운 통증이 번졌다.
뒤에서 돌이 무너졌다.
그는 비명을 삼키고 팔꿈치로 바닥을 밀었다. 누군가 틈 바깥에서 손을 뻗어 그의 조끼를 잡았다.
“잡았어!”
한민규였다.
태성은 잡아당기는 힘에 몸을 맡겼다. 다음 순간 바위 틈을 빠져나와 차가운 바깥 공기 위로 굴렀다.
등 뒤에서 쾅 소리가 났다.
방금까지 태성의 다리가 있던 자리를 돌무더기가 메웠다.
한민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놈아. 조금만 늦었으면 깔릴 뻔했잖아.”
“그럼 조금 더 빨리 뚫으셨어야죠.”
태성은 겨우 웃었다. 웃자마자 옆구리가 찢어질 듯 아파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민규는 그 표정을 보더니 욕을 삼켰다. 대신 태성의 팔을 붙잡아 세웠다.
“의무 담당 불러. 팔이랑 옆구리부터 봐.”
팀원 둘이 달려왔다. 한 명은 붕대를 꺼냈고 다른 한 명은 무너진 입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안쪽에 진짜 보스가 죽어 있어?”
“있습니다.”
“혼자서?”
태성은 대답 대신 숨을 골랐다.
질문한 팀원의 시선이 태성의 허리 뒤에 꽂혔다. 점액과 피가 묻은 효자손 끝이 조끼 밖으로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그건 뭐야?”
태성은 아무렇지 않게 효자손을 꺼냈다. 점액 덩어리가 주르륵 흘렀다.
“등긁이요.”
“게이트에 그걸 왜 들고 들어와?”
“짐꾼은 등도 가려우면 안 됩니까?”
팀원이 할 말을 잃었다. 한민규는 웃지 않았다.
그의 눈은 효자손이 아니라 태성의 배낭에 머물러 있었다. 낡은 배낭은 한쪽이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피와 먼지로 젖어 있었다.
“안에서 뭘 봤지?”
“늑대가 절 봤습니다.”
“그 말 말고.”
태성은 쓰러진 보스 방 쪽을 흘끗 봤다. 틈은 이미 다시 막혔다. 그 안에 남은 사체를 확인하려면 붕괴가 멈춘 뒤 장비를 들여야 할 것이다.
시간이 생겼다.
아주 조금.
“목 안쪽이 터지는 건 봤습니다.”
“왜 터졌는데?”
“글쎄요. 브레이크 충격을 보스도 맞았겠죠.”
한민규의 턱 근육이 꿈틀했다.
“안쪽에서 붉은 빛이 났어. 푸른 빛도 났고.”
“게이트가 지금 무슨 색으로 흔들리는지는 팀장님도 보셨잖아요.”
태성은 효자손을 점액 묻은 손으로 한 번 더 닦았다. 평범한 플라스틱이 삐걱거리는 소리만 났다.
한민규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때 복도 전체에 경보음이 울렸다.
[게이트 붕괴 위험도 상승]
[전 인원 즉시 이탈 권고]
“얘기는 나가서 한다.”
한민규가 지시했다.
“부상자부터 이동시켜!”
태성은 의무 담당의 어깨에 기대며 고개를 숙였다. 겉으로는 통증에 지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실제로도 지쳤다.
다만 머릿속만은 이상할 정도로 맑았다.
배낭 안감에 숨긴 코어의 열기가 옆구리에 닿았다. 팔백만 원. 상태가 좋으면 천만 원.
그런데 그 숫자만 떠오르지는 않았다.
쇠갑 늑대왕의 코어는 자신을 잡아당기던 붉은 마력 선의 중심이었다. 그 선을 효자손이 붙잡았고 코어를 뽑아냈다. 시스템은 그걸 신규 촉매라고 불렀다.
새로운 촉매.
태성은 눈을 감았다.
코어를 팔면 당장 치료비와 밀린 월세는 해결된다. 하지만 팔아 버리면 다음번에 저런 괴물이 나타났을 때 손에 남는 건 다시 천 원짜리 효자손 하나다.
그건 너무 싸게 넘기는 장사였다.
게이트 밖으로 나오자 흐린 낮빛이 눈을 찔렀다. 구조 차량과 협회 안전요원들이 출입구 주변을 막고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은 들것에 실려 나가거나 멀리서 무너지는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성은 구조 차량 뒷자리로 밀려 들어갔다.
한민규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의 갑옷에는 돌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표정은 정리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팀장을 대하는 표정이 아니라 손실 장부를 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진태성.”
“네.”
“보스방에서 나온 전리품이 있으면 신고해야 한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게이트 브레이크 현장이다. 팀 자산인지 개인 획득인지도 확인해야 하고.”
“제가 보스 시체에서 뜯어낸 건 없습니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뜯어낸 건 효자손이었다.
한민규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그럼 네 배낭은 왜 그렇게 무거워 보이지?”
태성은 찢어진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렸다. 안에는 물통과 빈 점액낭 조각과 돌가루가 든 주머니가 뒤섞여 있었다. 코어는 안감 안쪽에 눌려 있어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젖은 돌이 좀 들어갔나 보죠.”
“감정소에서 열어 보자.”
그 말이 떨어지자 태성의 손가락이 배낭 끈을 꽉 쥐었다.
한민규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오해하지 마. 네가 살아 나온 건 다행이야. 하지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보고해야 한다. 보스 사체도 회수해야 하고 네 물건도 확인해야 해.”
다행이라는 말은 부드러웠다.
그 뒤에 붙은 하지만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태성은 고개를 들어 한민규를 봤다.
“팀장님도 제가 안에서 뭘 했는지 모르시잖습니까.”
“그래서 확인하는 거다.”
“확인하다가 제 개인 장비까지 가져가진 마세요.”
한민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차량이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바퀴 충격에 공용 장비 상자 하나가 앞으로 밀려왔다. 뚜껑이 반쯤 열리며 안의 잡동사니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낡은 장갑.
찌그러진 랜턴.
그리고 손잡이에 금이 간 작은 주방용 칼.
태성의 시선이 거기에서 멈췄다.
누군가 버린 물건이었다. 날은 조금 휘었고 손잡이에는 오래된 기름때가 배어 있었다. 그래도 칼은 칼이었다.
자른다.
가른다.
필요 없는 것을 떼어 낸다.
품 안에서 코어가 뜨거워졌다.
[신규 촉매 인식]
[C급 보스 코어: 쇠갑 늑대왕의 코어]
[합성 후보 탐색 가능]
태성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저 칼과 코어를 합치면 무엇이 나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 가진 효자손 하나만으로 다음 위기를 버티는 것보다는 나을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감정소였다.
한민규가 배낭을 가리켰다.
“도착하면 그거부터 맡겨.”
태성은 바닥의 주방용 칼을 집어 들었다. 금 간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눌렀다.
“화장실은 들를 수 있죠?”
한민규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태성은 아픈 사람처럼 배를 움켜쥐었다.
“죽을 뻔했더니 배가 아프네요.”
그는 고개를 숙였다.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 않도록 힘을 줬다.
천 원짜리 효자손으로 겨우 살아남았다.
다음 장사는 조금 더 비싸게 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