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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5화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5화: 피를 멎게 하는 진열대

“치료약! 치료약 있는 사람 없어?”

고함과 함께 두 모험가가 사내 하나를 부상자 통로로 끌고 들어왔다.

새로 다져 둔 흙길 위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창을 든 사내의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길게 찢겨 있었다. 가죽 장갑과 소매가 피와 흙으로 한 덩어리가 됐다.

진우는 식사 자리로 쓰던 나무상자 하나를 비웠다.

“여기 눕혀. 통로 한가운데 말고 상자 위로.”

리아가 검집 끝으로 선을 그었다.

“대기자는 뒤로 물러나라. 지금부터 이 자리는 부상자 처치 자리다. 길을 막으면 다음 순서는 없다.”

사람들이 물러나는 사이 부상자의 동료가 진우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푸른 철통 비약을 주시오. 마력이 바닥난 마법사도 벌떡 일어났다던데. 데론은 야영지 치료소까지 못 버팁니다.”

“핫나인은 없어.”

진우는 단호하게 그의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있어도 그 상처는 못 고쳐. 기운을 깨우는 음료지 피를 멎게 하는 치료약이 아니야.”

“하지만 피가 이렇게 나는데 무슨 말이오!”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데론은 대답할 여유도 없이 이를 악물었다. 팔 아래로 흘러내린 피가 상자 틈에 고였다.

리아가 물통과 천 조각을 가져왔다. 그녀는 상처를 살피다 미간을 좁혔다.

“관통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살이 깊게 벌어졌습니다. 이대로 걷게 하면 다시 터질 수 있어요.”

“치료소까지 얼마나 걸려?”

“정상이라면 십오 분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더 걸립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오 분은 짧아 보인다. 피를 흘리는 사람에게는 한 걸음이 한참일 수 있다.

“데론. 들려? 팔 힘 풀어. 리아, 물은 조금씩. 흙부터 걷어 내자.”

차가운 물이 닿자 데론의 몸이 들썩였다.

“젠장. 그냥 붕대로 감아.”

“흙 묻힌 채로 감으면 네 팔이 더 고생해.”

진우가 젖은 천으로 상처 가장자리를 닦았다. 피가 다시 솟자 리아가 접은 천을 눌렀다. 붕대를 단단히 감았지만 하얀 천에는 금세 붉은 자국이 번졌다.

리아가 낮게 말했다.

“압박만으로는 오래 못 버틸 겁니다.”

매장 안을 보는 진우의 시선이 잠깐 멎었다. 빈 핫나인 진열대와 마지막 삼각김밥 하나. 그게 지금 AZA 24가 가진 전부였다.

그때 눈앞에만 보이는 창이 떠올랐다.

[띠링!]

[부상자 보급 수요가 확인되었습니다.]
[응급 보급 상품군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진우는 속으로 창을 열었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초록색 연고 통과 흰 상자 하나가 보였다.

[마데카싹]
세척한 찢김·찰과상·얕은 화상 회복 보조 연고.
절단, 깊은 관통상, 저주, 치명상에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기본 응급키트]
압박붕대, 소독천, 고정끈.
현장 이송 전 처치용입니다.

진우의 눈이 두 줄의 설명에 머물렀다.

상처를 없애 주는 물건은 아니다. 그래도 물과 붕대밖에 없는 지금보다 한 걸음은 앞이었다.

핫나인 재주문에 쓸 여력도 아껴야 한다. 하지만 재고표를 지키겠다고 눈앞의 손님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기운이 아니라 시간이다.’

진우는 선택을 눌렀다.

“리아. 새 보급품을 들인다.”

리아가 붕대를 누른 손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상처에 쓸 수 있는 겁니까?”

“깨끗이 씻은 다음에 바르는 연고야. 출혈이 덜 나게 돕고 상처가 버티는 시간을 만들어. 그래도 치료소로 가야 해.”

“팔을 완전히 낫게 하진 못하고요?”

“못 해. 그건 처음부터 사람들한테 말해 둬야 한다.”

리아는 잠깐 데론의 창백한 얼굴을 봤다. 곧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은 치료소에 도착할 시간을 사는 게 먼저니까요.”

진우가 재주문을 확정하자 계산대 아래가 희미하게 빛났다. 초록색 통 세 개와 흰 상자 두 개가 빈 진열대 위에 가지런히 놓였다.

구경하던 모험가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또 나타났어.”

“저게 치료약인가?”

“손대지 마.”

진우가 초록 통 하나를 들었다.

“마데카싹. 씻지 않은 상처에 바르면 흙을 상처 안에 붙이는 꼴이야. 깊게 찔린 데나 잘린 팔을 붙이는 물건도 아니다.”

데론의 동료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정말 효과가 있소?”

“이송할 수 있게 도울 거야. 그 이상을 약속하면 거짓말이고.”

진우의 말은 신기한 물건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겐 기대보다 작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거짓말보다 필요한 약속입니다. 지금부터 처치합니다. 데론의 팔을 잡을 사람은 남고 나머지는 물러나세요.”

바드가 상자 옆으로 들어왔다. 어깨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지만 멀쩡한 쪽 팔은 단단했다.

“내가 어깨를 잡겠소.”

“무리하지 마.”

“한 팔로도 할 일은 있지.”

진우는 기본 응급키트를 열었다. 넓은 압박붕대와 깨끗한 소독천, 가는 고정끈이 나왔다. 리아가 소독천을 들어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이 얇은 천은 붕대보다 약해 보입니다.”

“피 막는 천이 아니라 닦는 천이야. 상처에 들어갈 걸 줄이는 거지.”

“덧나는 걸 막는다는 뜻이군요.”

“맞아. 그러니까 아끼지 말고 한 번 쓴 건 버려.”

리아는 낯선 천을 다시 내려다봤다. 버리는 물건을 아낌없이 쓰라는 말은 폐허 영지의 기사에게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곧 소독천을 물에 적셨다.

“데론. 팔 빼면 더 아파집니다.”

“이미 충분히 아프거든.”

“그럼 욕은 해도 됩니다. 움직이지만 마세요.”

바드가 데론의 어깨를 고정했다. 진우가 상처 주변의 피와 흙을 닦자 데론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동료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연고는 언제 바르오?”

“지금.”

진우는 리아에게 통을 건넸다.

“두껍게 말고 얇게 펴 발라. 남는다고 좋은 게 아니야.”

리아의 손가락 끝에서 옅은 풀빛 연고가 나왔다. 그녀는 벌어진 상처 가장자리를 피해 조심스럽게 발랐다.

데론의 얼굴이 구겨졌다.

“차갑군.”

“뜨거운 것보단 낫지?”

“지금은 뭐든 낫다.”

리아가 연고를 바른 뒤 새 압박붕대를 감았다. 진우는 붕대가 피로 젖는 속도를 지켜봤다.

한순간에 피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천을 적시던 붉은색이 천천히 번졌다. 데론의 어깨도 조금 덜 떨렸다.

“손가락 움직여 봐.”

데론이 한참 뒤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움직인다.”

“좋아. 창은 오늘 못 든다. 팔은 몸에 붙이고 치료소까지 가.”

오르딘이 사람들 뒤에서 지팡이를 들고 중얼거렸다.

“살을 즉시 붙이지는 않는군. 회복 마법과는 성질이 다르다.”

“그러니까 마법 실험하듯 만지지 마.”

“나는 분석을 하려는 것뿐이오.”

리아의 검집이 오르딘 앞을 가로막았다.

“분석은 손님 뒤입니다. 그리고 이 물건은 중상자에게 먼저 씁니다.”

오르딘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에 줄 뒤에 있던 모험가들이 자기 상처를 슬쩍 감췄다.

하지만 모두가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손등이 길게 긁힌 정찰꾼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내 건 얕소. 그래도 던전 안에서 나흘째 따갑다. 저걸 하나 살 수 있겠소?”

진우는 그의 손등을 살폈다. 피는 멎었지만 상처 가장자리에 마른 흙이 남아 있었다.

“먼저 씻어. 씻고도 열이 나거나 붓기 시작하면 약사한테 가야 해.”

“연고 하나면 되는 거요?”

“마데카싹 한 통은 은화 세 닢. 소독천과 압박붕대와 고정끈이 든 기본 응급키트는 은화 다섯 닢.”

“연고 한 통에 은화 셋?”

“마석은 안 받는다. 이건 분석 포인트 얻으려고 막 쓰는 물건이 아니야.”

정찰꾼이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는 은화 세 닢을 계산대 위에 올렸다.

“사용법도 알려 주겠소?”

“그게 값에 들어 있어.”

진우는 통을 바로 건네지 않았다. 물통 앞에 정찰꾼을 세우고 리아가 상처를 헹구는 것을 지켜보게 했다. 깨끗한 소독천으로 물기를 닦은 뒤에야 연고를 얇게 바르게 했다.

그 모습을 본 모험가들이 웅성거렸다.

“돈만 내면 바로 주는 게 아니군.”

“저렇게 해야 쓸 수 있대.”

“중상자 몫을 빼앗는 것보단 낫지.”

진우는 남은 물품을 세었다. 마데카싹은 두 통. 응급키트는 한 상자. 데론 처치에 쓴 몫은 다시 채워야 했다.

그때 데론의 동료가 남은 연고 통으로 손을 뻗었다.

“돈은 더 내겠소. 우리 파티에 긁힌 놈이 둘 더 있소.”

진우는 통을 집어 들었다.

“안 돼. 그 둘이 여기 와서 상태부터 보여.”

“우린 급한 사람을 데려왔잖소.”

“그래서 데론은 먼저 썼지. 다음 급한 사람 몫까지 한 파티에 넘기면 이 통로를 만든 이유가 없어.”

동료의 표정이 굳었다. 리아가 그 앞에 섰다.

“중상자 우선입니다. 경미한 상처는 본인이 와서 확인받으세요. 상태를 속이거나 물건을 되팔면 다음번엔 구매 순서에서 제외합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데론이 상자 위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냥 가자. 내 팔부터 살려 줬으면 됐어.”

동료는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소.”

바드가 데론의 반대쪽에 섰다.

“야영지 치료소까지 데려가겠소. 내 어깨도 다시 볼 겸.”

“바드. 네 쪽은 무리하지 말고.”

“영주가 자꾸 간병인 흉내를 내는군.”

“손님 다시 받으려면 단골이 멀쩡해야지.”

데론이 피식 웃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걸음을 떼는 힘은 생겼다.

부상자 통로가 열리자 사람들은 말없이 양옆으로 비켰다. 며칠 전 같았으면 짐과 발이 얽혔을 길이었다. 이제 데론 일행은 멈추지 않고 야영지 쪽으로 향했다.

리아는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서 있었다. 그리고 계산대 옆의 남은 물품을 보며 말했다.

“기록하겠습니다.”

“뭘?”

“누가 무엇을 샀는지. 어느 정도 상처였는지. 처치에 연고를 얼마나 썼는지요.”

“벌써 장부까지?”

“다음 부상자가 왔을 때 남은 물건이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물도 마찬가지고요.”

진우는 물통을 봤다. 데론의 상처 하나를 씻는 데도 물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 오늘부터 물통도 재고다. 피 묻은 소독천은 따로 모으고.”

“처치 자리 옆에 버릴 통을 놓겠습니다. 포장지 통과 섞이지 않게요.”

“역시 현장 책임자는 다르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리아의 대답은 딱딱했지만 이번에는 아주 잠깐 입가가 풀렸다.

[띠링!]

[응급 보급품 첫 사용이 기록되었습니다.]
[현장 이송 체계가 보강됩니다.]
[다음 재주문 전 확인 항목: 부상자 수요 / 소독용 물 수급]

진우는 알림을 읽고 남은 연고 통을 진열대 가장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팔린 물건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남아 있는 물건.

이 던전 앞에서는 그게 더 비쌌다.

AZA 24의 진열대에는 처음으로 상처를 버티게 하는 물건이 놓였다.

그리고 진우는 이미 알았다.

심연의 아가리가 사람을 내보내는 한 그 진열대가 비는 날은 오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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