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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4화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4화: 줄을 세우는 영주

“여기서 먹지 말라니까!”

리아의 목소리가 던전 입구의 찬 바람을 갈랐다.

삼각김밥을 산 모험가들이 AZA 24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은빛 포장지를 무릎 위에 펼쳤고 누군가는 나무상자에 등을 기댔다. 바람을 탄 빈 포장지 조각은 부서진 울타리와 신발 사이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 사이로 피 묻은 갑옷을 입은 두 사람이 동료를 부축한 채 달려왔다.

“비켜! 다리 다쳤다!”

앉아 있던 모험가 하나가 황급히 일어서다 포장지를 밟았다. 발이 미끄러진 그는 부상자의 어깨를 붙잡을 뻔했다.

리아가 검집을 바닥에 내리쳤다.

“통로를 비워라. 지금 당장!”

사람들은 겨우 양옆으로 물러났다. 부상자는 AZA 24 문턱 앞에서 이를 악물고 주저앉았다. 종아리에는 짐승 발톱이 길게 지나간 자국이 있었다.

진우는 빈 냉장고를 힐끗 봤다. 핫나인은 한 캔도 남지 않았다.

“상처는 물로 씻고 붕대로 압박해. 리아, 물통 있어?”

“있습니다.”

리아가 바로 움직였다. 진우는 부상자 곁에 쪼그려 앉아 붕대가 풀리지 않게 잡아 주었다. 조금 전까지 삼각김밥 맛을 떠들던 모험가들은 말없이 그 모습을 보았다.

핫나인이 있었다 해도 상처는 낫지 않았다. 진우는 그 사실이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

부상자가 야영지 쪽으로 옮겨진 뒤에도 매장 앞은 엉망이었다. 진우는 사람 하나 겨우 비켜 지나간 좁은 문 앞과 넓게 비어 있는 빈터를 번갈아 봤다.

‘손님을 받았으면 손님이 서고 앉고 나갈 자리도 만들어야지.’

손님이 몰린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손님이 한곳에 엉키는 순간 좋은 일은 사고가 된다.

그는 부서진 울타리 조각과 빈 나무상자 쪽으로 걸었다.

“리아. 저거 쓸 수 있겠지?”

“저 썩은 상자 말입니까?”

“썩은 건 버리고 멀쩡한 것만. 문 앞에 사람을 쌓아 둘 수는 없잖아.”

리아는 빈터를 한 번 훑었다. 그제야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통로가 없으면 부상자를 옮길 때마다 같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오늘 안에 만든다.”

바드가 어깨의 붕대를 고쳐 매며 다가왔다.

“상자는 내가 옮기지. 팔 하나는 아직 멀쩡하오.”

“무리하지 마. 아픈 쪽 들면 다시 앉혀 놓는다.”

“영주가 아니라 간병인 같군.”

바드는 웃었지만 상자를 들 때는 멀쩡한 쪽 팔만 썼다. 그 모습에 주변 모험가 몇 명도 말없이 나무 조각을 집어 들었다.

오르딘은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내 바람 마법이면 이 쓰레기와 상자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다.”

“포장지를 던전 안까지 날려 보낼 생각이야?”

“그건 조금 곤란하군.”

“불꽃 마법도 금지. 마른 나무에 불 붙으면 오늘 만든 휴식 공간이 내일 재가 돼.”

오르딘은 시무룩하게 지팡이를 내렸다.

“마법은 대단한데 쓸 데가 까다롭군.”

“그래서 사람을 써야 할 때가 있는 거지.”

진우는 땅에 발끝으로 긴 선을 그었다.

“여기부터 문까지는 통로. 부상자랑 던전에서 막 나온 파티가 먼저 지나간다. 이쪽은 구매 대기 줄. 저 상자 넷은 식사 자리다.”

“그럼 누가 어디에 앉을지 누가 정합니까?”

모험가 하나가 물었다.

진우는 망설이지 않고 리아를 가리켰다.

“리아가 정해.”

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줄 세우는 건 네가 제일 무섭게 잘하잖아.”

“칭찬으로 듣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리아는 검집 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구매 대기자는 이 선 뒤에 선다. 식사 자리는 물건을 산 사람만 쓴다. 통로에 짐을 두는 자는 줄 맨 뒤로 간다.”

“아직 팔 것도 없는데 줄부터 세우오?”

바드가 묻자 진우가 빈 냉장고를 가볍게 두드렸다.

“재고는 다시 채우면 돼. 길 막힌 건 손님 오고 나서 고치면 늦어.”

리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재고가 없다고 할 일을 멈추는 게 아니라 다음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한다. 그것이 진우의 방식이었다.

바드와 모험가들이 상자를 나르자 빈터의 모양이 달라졌다. 상자 네 개는 매장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놓였다. 부서진 울타리 조각 두 개는 통로 양쪽에 세워졌다.

진우는 길쭉한 나뭇가지로 울타리 조각에 글자를 썼다.

부상자 통로

글자를 아는 모험가는 적었지만 방향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리아가 울타리 앞에 돌무더기 두 개를 놓아 길을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어두워도 발을 헛디디지는 않겠군요.”

“표지판 감각 좋은데?”

“표지판이 아니라 방해물입니다.”

“손님 입장에서는 같은 말이야.”

진우는 바람에 굴러온 은빛 포장지 하나를 집었다. 삼각김밥을 먹은 손님이 남긴 흔적이었다.

“그리고 이건 여기.”

그는 바닥이 뚫리지 않은 나무통을 식사 자리 옆에 세웠다.

“빈 포장지를 이 통에 가져오면 동화 한 닢 돌려준다. 그냥 버리고 가면 못 받는다.”

“포장지에도 값이 있소?”

바드가 물었다.

“깨끗한 마당에는 값이 있어. 다음 손님이 밟고 넘어지지 않는 값.”

리아가 나무통을 유심히 봤다.

“동화 한 닢이면 손해 아닙니까?”

“통로 막혀서 손님 하나 놓치는 것보다 싸. 그리고 포장지를 줍는 손님이 생기면 우리 둘이 밤새 허리 굽힐 일도 없고.”

리아는 계산하듯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나무통 옆에 작은 돌을 올려두었다.

“포장지 반환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젖거나 피가 묻은 것은 따로 둡니다.”

“그것까지 생각했어?”

“영지의 기사입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리아의 손길은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이상한 지구 물건을 경계하던 손이 이제는 그것을 안전하게 쓰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한참 뒤였다.

심연의 아가리 쪽에서 피곤에 찌든 파티가 나왔다. 그들은 문 앞에 짐을 내려놓으려다 새로 세운 울타리 조각을 발견했다.

“여긴 통로인가?”

“그래. 짐은 식사 자리 뒤에.”

리아가 대답했다.

전사 하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배낭을 내려놓았다.

“내가 잠깐 둔 건데.”

그때 종아리에 붕대를 감은 부상자가 동료에게 기대어 통로로 들어왔다. 전사는 그를 보고 말없이 배낭을 끌어당겼다.

“알겠소. 막으면 곤란하겠군.”

그는 배낭을 식사 자리 뒤로 옮겼다. 길이 비자 부상자를 부축한 두 사람이 멈추지 않고 야영지까지 지나갔다.

바드가 낮게 말했다.

“전에는 저쯤에서 한 번씩 발이 묶였을 거요.”

“그러니까 통로는 물건보다 먼저 팔아야 해.”

“통로를 판다고?”

“안전하게 지나갈 시간. 그런 것도 손님이 받는 서비스지.”

바드는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시간은 은화보다 비쌀 때가 많았다.

식사 자리에 앉은 정찰꾼은 마지막 은빛 포장지를 나무통에 넣었다. 리아가 동화 한 닢을 내밀자 그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정말 돌려주는군.”

“규칙은 장식이 아닙니다.”

리아의 대답은 딱딱했지만 어딘가 당당했다.

“그럼 바람에 날아간 것도 주워 오면 되나?”

“깨끗한 것만. 다른 사람 것이라고 속이면 다음번 구매 순서에서 제외한다.”

“기사님이 직접 확인한다는데 누가 속이겠소.”

웃음이 퍼졌다. 하지만 모험가들은 실제로 주변의 포장지를 주워 통에 넣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던 은빛 조각은 하나씩 사라졌다.

진우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손님을 쫓아내지 않고 자리를 내주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줄이 생기자 사람들은 자기 차례를 알았고 통로가 생기자 부상자는 밀리지 않았다.

작은 상자 네 개와 나무통 하나.

그게 던전 앞에서는 제법 근사한 시설이었다.

무너진 성벽과 빈 창고만 남은 영지에서 진우가 손에 넣은 것은 대단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제 문을 막지 않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누군가 다치면 비켜설 줄도 알았다.

진우에게는 그 변화가 은화 몇 닢보다 먼저 보였다. 가게는 물건을 놓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곳이었다.

[띠링!]

[현장 운영 문제가 해결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임시 휴식 구역이 등록됩니다.]
[획득 포인트: 150P]
[다음 시설 조건: 부상자 보급 수요를 확인하십시오.]

진우는 상태창을 읽고 미간을 좁혔다.

“부상자 보급 수요?”

시스템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던전 안쪽에서 사람들의 고함이 터졌다.

“치료약! 치료약 있는 사람 없어?”

통로 쪽에 있던 모험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얼마 뒤 두 사람이 다른 한 명을 들것도 없이 끌고 나왔다. 사내의 팔은 피와 흙으로 엉망이었다.

리아는 검집을 움켜쥐었다.

“도련님, 아까보다 심합니다.”

진우는 빈 핫나인 진열대를 봤다. 기운을 깨우는 캔은 팔았지만 피를 멎게 할 물건은 없었다.

“리아. 통로 비워.”

“예.”

“그리고 식사 자리 하나 비워. 이번에는 앉을 자리가 아니라 치료할 자리가 필요해.”

리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가 검집 끝으로 상자를 가리키자 모험가들은 스스로 자리를 옮겼다.

새로 만든 길이 부상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우는 피 묻은 붕대를 보며 속으로 재주문 창을 떠올렸다.

‘다음에는 기운만 파는 걸로 안 된다.’

AZA 24는 처음으로 손님이 쉴 자리를 얻었다.

이제는 그 자리에서 죽지 않게 할 물건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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