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의 24시 마트 영주님

3화: 기사님, 그건 도시락입니다
리아는 은빛 포장지를 두 손으로 받든 채 굳어 있었다.
던전 입구의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핫나인을 사 간 모험가들은 하나둘 야영지로 흩어졌고 AZA 24 앞에는 빈 캔 몇 개와 은화 냄새만 남았다.
그런데 리아는 여전히 삼각김밥을 노려보고 있었다.
“안 먹어?”
“도련님.”
리아가 낮게 말했다.
“이 물건은 정확히 어떤 마도구입니까?”
“마도구 아니고 밥.”
“밥이 왜 갑옷처럼 싸여 있습니까?”
진우는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은색 필름에 감긴 삼각형 물체가 리아 눈에는 봉인된 무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먼지 안 묻으라고 싸 둔 거야. 들고 다니다가 배고플 때 바로 먹으라고.”
“바로 먹는 밥이라니요. 밥은 그릇에 담아 앉아서 먹는 것입니다.”
“던전 앞에서는 그런 말 하다가 굶어 죽는다.”
리아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 말만큼은 반박하기 어려웠다. 심연의 아가리 앞에는 식당도 부엌도 없었다. 남은 것은 식어 굳은 빵과 말린 고기뿐이었다. 영지의 창고는 비었고 리아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은 것도 오래전 일이었다.
꼬르륵.
리아의 배가 다시 정직하게 울었다.
진우는 모른 척 포장지 가운데를 가리켰다.
“자. 가운데 숫자 보이지? 거기를 잡고 아래로 쭉 당겨.”
“숫자는 왜 새겨 놓은 겁니까?”
“사람들이 뜯다가 김을 다 찢어 먹어서.”
“김?”
“검은 껍데기. 먹는 거야. 버리면 안 된다.”
리아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검은 껍데기를 먹습니까?”
“그 말만 들으면 이상하긴 한데 맛있어.”
리아는 결심한 듯 숨을 들이켰다. 그녀가 포장지 가운데를 잡고 천천히 잡아당겼다.
사각.
비닐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김 한쪽도 같이 찢겼다.
리아의 얼굴이 굳었다.
“제가 망가뜨렸습니까?”
“아직 괜찮아. 양쪽을 잡아당겨. 살살.”
“전투보다 어렵습니다.”
“전투는 검으로 해결되지만 이건 손끝 감각이 필요하거든.”
리아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을 해체하는 사람처럼 포장지를 벗겼다. 마침내 흰 밥과 붉은 양념이 살짝 비치는 삼각김밥이 드러났다.
고소한 김 냄새와 매콤한 양념 냄새가 바람에 섞였다.
리아의 목울대가 작게 움직였다.
“이 냄새는.”
“전주비빔.”
“전술 비빔입니까?”
“전주. 지명인데 지금 설명하면 길어.”
리아는 삼각김밥을 양손으로 들었다. 기사 작위를 받을 때보다 엄숙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
리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씹는 것을 멈췄다. 머리가 맛을 따라잡지 못한 사람처럼 그대로 굳었다.
“리아?”
“밥이.”
“응.”
“밥이 손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그게 장점이지.”
“겉의 검은 껍데기는 얇은데 바다 냄새가 납니다. 그런데 안쪽은 매콤하고 짭짤합니다. 고기가 없는데도 고기 같은 만족감이 있습니다.”
“맛 표현 갑자기 자세하네.”
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입 더 베어 물었다.
이번에는 조금 컸다.
그녀의 볼이 조용히 부풀었다. 평소라면 영주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을 기사였다. 그러나 리아는 지금 체면을 놓칠 만큼 배가 고팠고 삼각김밥은 그 틈을 정확히 찔렀다.
“천천히 먹어. 목 막힌다.”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진우는 냉장고 쪽을 봤다. 남은 삼각김밥은 아홉 개. 핫나인처럼 반응이 터지면 순식간에 끝날 양이었다.
‘맛은 통한다. 문제는 가격과 우선순위다.’
그때 리아가 마지막 한입을 삼키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왜. 독 같아?”
“아닙니다.”
리아는 은빛 포장지 조각까지 반듯하게 접었다.
“이건 기사 순찰용 보급식으로 쓸 수 있습니다.”
진우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정도야?”
“말린 빵은 오래 씹어야 하고 물이 필요합니다. 말린 고기는 짜고 딱딱해서 전투 직전에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은 한 손으로 들 수 있고 짧은 시간에 먹을 수 있습니다. 냄새도 강하지만 멀리 퍼질 정도는 아닙니다.”
“던전 안에서 몰래 먹기는 애매하지만 입구 대기나 야간 경비에는 좋다?”
“예. 그리고.”
리아가 아주 짧게 망설였다.
“맛이 좋습니다.”
그 말은 인정이라기보다 항복 선언에 가까웠다.
[띠링!]
[신규 고객 후보의 만족 반응을 감지했습니다.]
[상품: 삼각김밥(전주비빔)]
[반응 분류: 보급식 가치 인식]
[단골 후보 조건이 진행 중입니다.]
진우는 웃음을 삼켰다.
“그러면 직원 식사 합격이네.”
“직원이라는 말은 아직 받아들인 적 없습니다.”
“그럼 기사 복지.”
“그 표현은 더 위험합니다.”
리아가 진지하게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방금 그 냄새 뭐요?”
야영지 쪽에서 오르딘이 고개를 내밀었다. 눈은 여전히 핫나인 탓에 반짝였지만 코는 정확히 마트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뒤에서 바드도 어깨에 천을 감은 채 걸어왔다.
“검은 잎으로 싼 흰 덩어리를 봤다. 그것도 비약인가?”
“아니. 밥.”
진우가 짧게 답했다.
“밥이 왜 삼각형이오?”
“먹기 편하라고.”
“밥을 먹기 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오르딘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마나 회로가 다시 돈 것보다 삼각형 밥이 더 이해되지 않는 듯했다.
리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이 물건은 영주님의 보급품입니다. 함부로 몰려들지 마십시오.”
“리아. 팔 거야.”
“예?”
“팔아야 재주문하지.”
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고지식한 기사도 빈 창고에서 보급품이 저절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았다.
진우는 냉장고 앞에 서서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남은 건 아홉 개. 지금부터 구매 대상 제한한다. 던전에서 막 나온 파티, 야간 경비 서는 사람, 부상자를 데리고 야영지까지 가야 하는 사람 우선.”
오르딘이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마법 연구 목적이다.”
“뒤로.”
“학문은 우선되어야 한다.”
“배고픈 사람 다음에.”
바드가 웃으며 오르딘의 로브 깃을 잡아 뒤로 끌었다.
“넌 이미 푸른 철통도 먼저 마셨다.”
“나는 증명자다!”
“그래서 이번엔 구경꾼이다.”
모험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핫나인을 못 산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쉬운 얼굴로 냉장고를 봤지만 진우가 손바닥으로 계산대를 두드리자 줄을 섰다.
“가격은 한 개에 동화 여덟 닢. 하급 마석은 받지 않는다. 이건 밥이지 마석 분석용 비약이 아니야.”
“동화 여덟?”
리아가 낮게 말했다.
“말린 빵 두 개보다 비쌉니다.”
“그 대신 물 없이 바로 먹고 손에 들고 이동할 수 있지. 오늘은 시범 가격이야.”
리아는 계산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구매자는 정찰꾼이었다. 그는 던전 입구와 야영지를 오가느라 입술이 말라 있었다.
진우가 포장지를 잡아 보여 줬다.
“여길 잡고 당겨. 그다음 양쪽. 김은 버리지 말고 같이 먹어.”
“검은 종이를 먹으라고?”
“종이 아니야.”
정찰꾼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한입 베어 물었다. 잠시 뒤 그의 눈이 리아와 똑같이 커졌다.
“어.”
“왜.”
“빵보다 부드러운데 씹을 게 있다. 짭짤해서 물 생각이 나는데 너무 짜지는 않아.”
“움직일 수 있겠어?”
정찰꾼은 남은 것을 두 입 만에 먹어 치웠다.
“야영지까지 뛰어도 되겠는데?”
“뛰다가 체하면 환불 없다.”
두 번째 손님은 포장을 반대로 뜯었다. 밥알이 손바닥에 와르르 떨어지자 주변에서 탄식이 터졌다.
“내 보급식!”
“그러니까 숫자를 보라고 했잖아.”
리아가 즉시 개입했다.
“다음 구매자는 영주님의 설명을 끝까지 들은 뒤 개봉한다. 어길 경우 줄 맨 뒤로 간다.”
“밥에도 규칙이 생기는군.”
바드가 중얼거리자 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던전 앞에서 팔면 뭐든 규칙이 필요해.”
판매는 핫나인보다 느렸지만 반응은 더 오래 남았다.
모험가들은 먹은 뒤 바로 쓰러지듯 앉았다. 누군가는 배를 문지르며 웃었고 누군가는 남은 김 조각까지 손끝으로 찍어 먹었다. 부상자를 데리고 가던 파티는 삼각김밥 하나를 셋이 나눠 먹고 서로 남은 한입을 양보했다.
리아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
핫나인은 사람을 일으켰다. 삼각김밥은 사람을 멈춰 세웠다.
죽지 않기 위해 뛰던 사람들이 아주 잠깐이라도 앉아 숨을 돌리게 만들었다.
“도련님.”
리아가 말했다.
“이 물건은 단순한 식사가 아닙니다.”
“과찬 같은데.”
“여기서는 식사를 제때 하는 것 자체가 사치입니다. 모험가들이 굶은 상태로 던전에 들어가면 판단이 흐려집니다. 경비병이 배고픈 상태로 밤을 새우면 칼보다 먼저 눈이 감깁니다.”
“그러니까 보급이 전투력이라는 거지.”
“예.”
리아는 말하고 나서 스스로 놀란 듯 입술을 다물었다. 방금 자신이 영주의 이상한 물건을 군사적 가치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얼굴이었다.
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럼 기사님 의견으로는 재주문해야겠네?”
리아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재주문이 가능합니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그게 장사고.”
남은 삼각김밥은 두 개였다. 진우는 하나를 집었다가 리아를 봤다.
“하나는 네 몫으로 빼 둘까?”
리아의 얼굴이 엄격해졌다.
“영주의 보급품을 사적으로 빼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사.”
“예?”
“동화 여덟 닢.”
리아는 허리춤의 작은 주머니를 만졌다. 영지 사정이 나빠 녹봉도 제대로 받지 못한 기사에게 동화 여덟 닢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삼각김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리아는 동전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렸다.
“기사 순찰 중 품질 확인을 위해 구매합니다.”
“단골 멘트치고는 딱딱하네.”
“단골이 아닙니다.”
리아는 삼각김밥을 받아 들었다.
[띠링!]
[단골 후보 1명 확보]
[후보명: 리아]
[관심 상품: 삼각김밥(전주비빔)]
[보급식 상품군 해금 조건이 일부 개방됩니다.]
[핫나인 재주문 가능 수량이 갱신됩니다.]
진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라기엔 시스템은 그렇게 보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 말도.”
그때 매장 앞에서 작은 소란이 났다.
삼각김밥을 산 모험가들이 문 앞에 주저앉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부상자 파티가 그 사이를 지나가려다 발이 걸렸다.
“비켜! 사람 지나간다!”
“잠깐만. 이 검은 껍데기가 자꾸 손에 붙어!”
“여기서 먹지 말라니까!”
리아가 검집을 잡고 앞으로 나섰다.
진우는 매장 앞을 봤다. 줄과 앉은 사람과 빈 포장지가 뒤섞여 있었다.
손님은 생겼다.
이제 손님이 머무를 자리가 문제였다.
진우는 부서진 울타리와 빈 나무상자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리아.”
“예.”
“내일부터 밥 먹는 자리부터 만들자.”
리아는 삼각김밥을 품에 단단히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포장지를 버리는 자는 제가 직접 줄 맨 뒤로 보내겠습니다.”
진우는 웃었다.
던전 앞 마트의 두 번째 상품은 사람을 배부르게 했다.
그리고 배부른 손님들은 갈 곳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