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98화: 기획실장의 안식 계획
엘란의 마천루들이 내뿜는 환상적인 조명 아래, 민우는 생전 처음으로 '업무'가 아닌 '개인'을 위한 기획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제목은 [강민우 실장 장기 휴가 및 안식년 계획서].
서울에서 대리로 일하던 시절, 그는 늘 퇴사 후의 삶을 꿈꿨었다.
제주도의 조용한 바닷가 근처에서 작은 카페를 차리거나, 아무도 찾지 않는 시골에서 온종일 잠만 자는 그런 평범하고 소박한 은퇴.
하지만 현실은 늘 새로운 프로젝트와 상사의 갑질, 그리고 끝없는 야근의 연속이었다.
이세계에 와서도 그는 제국의 생존과 마계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단 하루도 편히 쉬지 못했다.
"드디어 이 서류를 올리는 날이 오는군."
민우는 은빛 만년필을 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제국의 역사를 새로 쓴 '영원한 플래너'였지만, 정작 자신의 휴식조차 기획서 양식에 맞춰 작성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 엘란은 이제 그가 없어도 충분히 아름답고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시스템의 완성이 가져다준 최고의 보상은 바로 '자유'였다.
"남쪽 해안가의 별장이라면 조용하겠지. 마력 통신도 끊고, 결재판도 치우고, 그저 파도 소리나 들으면서..."
하지만 '오피스 워커의 눈'은 그의 휴식을 비웃듯, 시스템 하단에 [잔여 업무: 인수인계 및 사후 관리 전략 수립]이라는 메시지를 띄워 올렸다.
민우는 신경질적으로 스크린을 넘기며 휴가 계획서의 '기대 효과' 란에 이렇게 적었다.
- 기획실장의 번아웃 방지 및 조직의 자생적 운영 능력 검증.
- 결론: 즉시 승인 요망.
그는 역사의 집필자 노릇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다.
이제 펜 끝에서 흐르는 것이 숫자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평화이길 바라며 그는 결재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