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73화: 경매에 나온 영지
제국 경매장에 대법관의 의사봉 소리가 엄숙하게 울리며 파산한 귀족들의 토지 권원 문서들이 매물로 소개되었다.
집무실 밖은 여전히 구시대의 특권을 고수하려는 귀족 세력과의 '장부상의 냉전(Cold War of Ledgers)'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숫자의 전선에서 벌어지는 이 소리 없는 전쟁은 제국의 영토가 혈통의 소유에서 자본의 효율로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세계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겉모습 뒤에 굳건하게 웅크리고 있는 전근대적 토지 소유 체계는 강민우라는 '시스템 디자이너'에게는 시급히 구조조정해야 할 비효율의 결정체일 뿐이었다.
민우의 손가락 사이에서 리드미컬하게 회전하는 은빛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 구습의 부조리를 도려내고 새로운 자산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설계자의 메스와도 같았다.
그는 창밖으로 분주히 이동하는 마차들을 보며, 서울 대기업 기획실에서 부실 자산의 매각과 M&A(인수합병)를 통한 기업 회생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던 노련한 서바이벌 지혜를 떠올렸다.
땅의 가치는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질 인프라와 자본의 선순환에 의해 결정된다.
"영토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민우는 차갑게 식어 가던 마력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며, 집무실의 조명 마법 조도를 최적의 상태로 조절했다.
현재 민우가 정면에 맞닥뜨린 가장 거대하고도 시급한 핵심 행정 과제는 파산한 가문들의 땅을 경매에서 강제 매입하여 황실 자산과 대중 주식회사의 소유로 귀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오피스 워커의 눈(Office Worker's Eye)'을 활성화했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국정 재정 정밀 모니터링 시스템]
- 프로젝트: 부실 영지 자산 매각 및 국유화/민영화 프로젝트
- 현재 통합 행정 및 금융 프로세스 효율성 지표: 70.70%
- 제국 황실 가용 유동 자본금: 881.0백만 골드
- 오피스 워커의 특수 분석: '경매 집행관의 전통적 이권 개입 가능성 포착. 입찰 과정의 투명성을 시스템적으로 보장하고, 중앙은행의 우선 매수권을 발동할 것.'
이윽고 집무실 문이 열리고 경매 집행관이 긴 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민우는 아주 자연스럽고 예의 바른 태도로 그를 맞이하며, 미리 준비해 둔 자산 가치 평가 보고서를 내밀었다.
"바쁘신 와중에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행관님. 하지만 올려주신 경매 기안서는 승인 결재를 해드릴 수가 없군요. 내역이 불분명한 자산 매각 방식은 제 시스템 안에서는 그저 '데이터 오류'일 뿐입니다."
집행관이 가문의 신성한 규칙과 수백 년의 전통을 운운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민우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귀하가 말하는 전통은 제국의 재정 적자를 메워주지 못합니다. 에르윈 공작 가문의 영지는 오늘부로 중앙은행의 담보권 실행에 따라 황실 자산으로 매각됩니다. 합의하지 않으신다면, 오늘부로 귀하와 관련된 모든 중앙은행 예금 계좌는 법률적 권한 하에 즉시 '무기한 동결' 조치될 것입니다."
설계자의 냉혹한 구조조정 플랜이 현실로 투입되자 제국 전체의 영토 지형도가 재편되기 시작했다.
민우는 현대 기업 경영의 전술을 고도로 활용해 성과를 입증한 관리들에게는 승진의 기회를, 태업을 일삼던 세력들에게는 법원 영장이라는 경제적 단두대를 들이밀었다.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원은 기사의 검이 아닌, 한 직장인이 밤을 새워 기안한 엑셀식 기획서와 행정 가이드라인이었다.
자본의 적재적소 재배치라는 행정 마법 앞에서,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귀족들의 영토 독점은 질서 정연한 톱니바퀴처럼 평화의 구도로 정착되고 있었다.
분기 결산 보고서 상단에 기획실장의 전결 인장이 붉게 안착했다.
창밖으로는 중앙은행이 닦아놓은 신식 도로를 따라 새로운 개발 부지로 인력이 투입되고 있었다.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등급 상승을 알리는 완료 메시지를 띄웠다.
귀족들의 사유 토지가 대거 국유화 및 합작 개발 용지로 개편되어 귀족 세력이 경제적으로 소멸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민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띄웠다.
"다음은 신도시 개발의 기획인가. 설계자의 야근은 차원을 넘어도 변치 않는군."
세상을 평화롭게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매일 아침 성실하게 작성되는 서류와 차가운 숫자의 행정이라는 사실을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