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기획실장으로 살아남는 법

47화: 금전의 침묵
전선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하지만 민우의 집무실 스크린 속에서는 초단위로 적의 파멸이 기록되고 있었다.
마왕군의 보급 마차 수백 대가 멈춰 선 것은 단순히 길이 막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보급의 동력원인 '신용'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이세계의 환상적인 마법도 배고픈 병사들의 위장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민우는 금융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대륙 전체를 옭아매고 있었다. 골드가 흐르지 않는 곳에는 오직 죽음과 같은 침묵만이 남았다.
"돈이 흐르지 않는 군대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민우는 집무실의 조도를 낮추며, 과거 서울의 빌딩 숲에서 목격했던 기업 부도의 현장을 기억해냈다.
어제까지 찬란했던 사옥이 단 한 장의 어음 부도로 인해 유령 건물이 되던 순간. 자본의 철수는 어떤 마법보다도 파괴적이었다.
민우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마왕군의 보급 대원들을 향해 '금융적 회유'라는 낚싯바늘을 던졌다.
마왕이 주지 못하는 은화 대신, 발두르 중앙은행이 보증하는 지폐를 제시한 것이다.
[라피아 홀딩스 & 제국 재정 정밀 시스템]
- 작전명: 보급망 마비 및 대원 탈영 유도
- 보급 대원 귀순율: 62.4%
- 마왕군 전방 기지 가동률: 급감 (보급품 전무)
- 분석가 의견: '물류의 혈맥이 막혔다. 적의 심장은 곧 멈출 것이다.'
마인 보급대장은 민우 앞에서 바르르 떨며 서류를 움켜쥐었다.
민우는 그를 향해 차가운 홍차를 내밀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긍지는 배를 채워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지폐는 당신 가족의 생명을 보장하죠. 선택은 이미 숫자가 내렸습니다."
민우의 만년필은 마치 맹수의 발톱처럼 장부 위의 허점들을 찢어발겼다.
보급 마차가 멈춘 날, 마왕군의 패배는 전장이 아닌 기획실의 장부 위에서 먼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