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94화: 강남의 성벽
목요일 오후 2시, 강남 테헤란로의 철혈 코퍼레이션 본사 15층 대표이사 집무실.
통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강남의 빌딩 숲은 오색 네온사인과 차량의 행렬로 번화하게 빛나고 있었고, 방안은 은은한 보이차 향이 감돌고 있었다. 강태형은 단정하게 양복 단추를 채우고 회장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3년 만에 자신의 지팡이를 가만히 책상 옆에 기대어 놓았다.
집무실의 가죽 소파에는 창수, 마동, 정훈, 소희가 나란히 앉아 태형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보고서를 한 장씩 설명하고 있었다.
“형님. 철혈 로지스틱스는 한강현 부장검사의 비공식적인 협조와 항만 전산실 보안 모듈 업그레이드를 통해, 인천 남항의 제2 물류창고 부지를 완전한 정식 세관 물류 허브로 승계받았습니다. 이제 인천과 부산을 잇는 국내 최대 규모의 합법 물류 유통 네트워크망이 철혈의 이름 아래 가동되는 셈입니다.”
창수의 목소리에는 이제 과거 밑바닥 해결사 시절의 거친 기색이 완전히 가시고, 건실하고 떳떳한 임원으로서의 품격이 서려 있었다.
정훈이 옆에서 덧붙였다.
“그리고 철혈 파이낸셜은 명동의 사설 대부업 지분을 철저히 정리하고, 정식 등록된 서민 소액 금융 지원 대출 업체로 재편되었습니다. 금성 시절 고금리로 채무자들의 피눈물을 짜내던 방식 대신, 연 5% 미만의 정직한 서민 지원 대출금과 중소상공인 지원 펀드를 가동하여 명동 금융계에서 독보적인 신용도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태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유산이 더러운 범죄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을 돕는 견고한 방패막이가 되어 가고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소희가 태블릿 PC를 보며 마무리 법적 진행 상황을 읊조렸다.
“금성그룹의 남은 기소 재판도 어제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 선고가 내렸어요. 오만수 회장의 암살 지시와 탈세를 도왔던 아들 오성준 부사장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우리를 뒤통수쳐 왕좌를 꿈꾸던 권영태 전 부회장 역시 살인교사 공범과 횡령 혐의로 징역 20년의 확정 선고를 받아 교도소로 이송되었습니다. 금성파의 모든 남은 잔당들과 비리 세력들은 완벽하게 사법 단두대 뒤로 매장되었습니다.”
태형의 깊은 눈동자 속에 희미하지만 서늘한 안도가 스쳤다.
3년 전 교도소의 차가운 독방 바닥에서 다짐했던 복수극의 모든 핏빛 연결고리가, 마침내 사법정의의 완벽한 실현과 철혈단만의 완전한 합법 왕국의 공식적인 출범이라는 위대한 마침표로 수렴해 가고 있었다.
태형은 지팡이 머리를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 많았다.”
태형의 갈라진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이제 우리의 규칙이 이 강남의 높은 성벽을 지배한다.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
철혈단의 사내들이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밤의 왕국 수립을 선언하는 피의 4막은, 이제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영원한 기상을 드높이며 마지막 결말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복수의 완성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