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89화: 장엄한 작별
화요일 오전 9시,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한강현 검사가 지휘하는 수십 명의 수사관들이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한만길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 지검장실을 동시에 급습했다.
“한만길 의원님. 당신을 대기업 금성그룹으로부터 수십억 원의 뇌물을 수수하고 사법부 수사를 부당하게 압박한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수사관들이 한만길 의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 끌어내리는 장면과, 전직 지검장과 대법관들이 고개를 숙인 채 호송차에 올라타는 모습이 뉴스 채널의 실시간 속보창을 하얗게 도배했다.
- [단독: 법사위 위원장 한만길 의원 및 전·현직 법관들 전격 긴급 체포]
-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패 스캔들…… 사법부 총사퇴 촉구 여론 폭발]
오만수와 최진상이 심어둔 거대한 부패의 카르텔이자, 철혈단의 마지막 정재계 걸림돌들이 한강현 검사의 매서운 칼날 아래 단 하루 만에 완벽하게 단죄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강남 철혈 코퍼레이션 본사 15층 대표 집무실.
태형은 단정하게 양복 단추를 채우고 검은색 오버코트 깃을 세운 뒤, 테이블 위에 놓인 세 장의 완결된 명의 이전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임창수, 박마동, 한정훈, 연소희의 이름 아래 법적으로 완벽하게 승계가 완료된 깨끗한 양지의 자산들이었다.
태형은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일어섰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세 형제와 소희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눈가에는 차오르는 눈물이 빗물처럼 고여 있었다.
“……형님.”
창수가 목이 메어 소리쳤다.
태형은 말없이 창수의 어깨를 꽉 쥐었다가, 이어 마동과 정훈, 그리고 소희의 어깨를 차례로 토닥여주었다.
“고생 많았다, 내 형제들아.”
태형의 갈라진 목소리가 조용한 집무실 안에 나직하게 울렸다.
“성벽은 완성되었다. 이 강남의 화려한 제국은 이제 완전히 너희의 것이다. 어두운 과거의 피 묻은 흉터는 내가 전부 지고 들어갈 테니, 너희는 끝까지 양지에서 당당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라. 만약 미래에라도 누군가 우리 철혈의 영토를 침범하려 든다면, 오늘 밤 우리가 맺은 철혈의 규칙을 잊지 마라.”
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태형을 향해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보육원 시절부터 목숨을 나눴던 형제들의, 피보다 진한 진짜 작별의 순간이었다.
태형은 지팡이로 바닥을 딛으며 천천히 집무실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탁-. 탁-. 탁-.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때리는 나직한 지팡이 마찰음이 복도를 따라 울려 퍼졌고, 문이 닫히며 형제들의 시야에서 강태형의 거대한 등덜미 실루엣이 완전히 사라졌다.
태형은 홀로 로비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지상 1층으로 내려갔다. 빌딩 입구 밖 도로변에는 한강현 검사가 보낸 두 명의 특별수사관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태형은 빗속을 뚫고 지팡이를 짚으며 호송차 뒷좌석으로 조용히 탑승했다.
비록 복수귀 강태형은 스스로 철창 속으로 걸어 들어갔으나,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철혈의 왕국은 서울의 밤하늘 위로 영원히 꺾이지 않을 철혈의 기상을 드높이며 빛나고 있었다. 복수의 장엄한 결말이자 4막 ‘피의 결산’의 최후의 피날레가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