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88화: 거래의 결말
월요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검사실.
한강현 검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지검의 조용한 검사실 소파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들이키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상부의 외압으로 인해 철혈 코퍼레이션에 대한 내사가 사실상 무기한 유예된 상태였기에, 그의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르륵-.
검사실 문이 열리며, 비서관의 제지 없이 강태형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들어왔다. 태형은 가만히 지팡이를 옆에 둔 채 한 검사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한 검사가 차갑게 물었다.
“강 대표. 이번엔 또 무슨 거래를 하러 여기에 직접 온 건가? 당신의 그 더러운 장부 덕에 내 수사는 이미 꽁꽁 묶였어.”
태형은 말없이 품속에서 푸른색 가죽 파일 폴더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한 검사님. 당신의 수사를 막아선 그 법사위 위원장들과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의 해외 스위스 비공식 비자금 계좌 이체 장부 원본입니다. 신재현과 한만길이 직접 서명한 실물 파일도 들어있습니다.”
한 검사의 동공이 급격하게 확장되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는 거지? 당신을 비호해 주던 그 거대 방패들을 직접 잘라버리겠다는 뜻인가? 이들이 구속되면 당신의 철혈 코퍼레이션 수사도 재개될 거다.”
태형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구속될 때쯤이면, 철혈 코퍼레이션 산하의 모든 물류, 카지노, 경호 자산은 내 동생들(임창수, 박마동, 한정훈, 연소희)의 개인 소유 합법 법인으로 완벽하게 명의 이전 승계가 끝날 겁니다. 한 검사님이 아무리 털어도 단 한 푼의 불법 비자금 흐름도 찾아내지 못할 완벽한 양지의 기업들이죠.”
태형이 지팡이 머리를 지긋이 쓸어내렸다.
“그리고 장부의 최종 소유주인 나는, 3년 전 구자명 변호사 손목 타격과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한 검사님께 즉시 자수할 겁니다. 내가 모든 기획 횡령과 특수 상해 혐의를 기꺼이 짊어지고 구치소로 들어가 3년 동안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한 검사는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지었다. 강태형은 자신의 파멸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사법적 죗값을 스스로 정의하고, 형제들의 미래를 완벽하게 지키기 위한 최종 판을 짜온 것이었다.
“……스스로 감옥으로 걸어 들어오겠다라. 그게 자네의 법의 죗값 치르기인가?”
“예. 내 다리를 부러뜨린 배신자들을 제 손으로 찢어발겼으니, 법의 규칙에 따라 몇 년 동안 쉬다 오는 건 공평한 처사입니다. 단, 내 형제들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그게 내 조건입니다.”
한 검사는 한참 동안 강태형의 푸른 눈동자를 응시했다.
비록 복수귀가 제안한 어두운 거래였으나, 이 장부만 있으면 대한민국 사법부를 좀먹던 비리 실세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완벽한 정의의 기회였다.
한 검사는 가만히 푸른 폴더를 끌어당겨 안았다.
“좋다. 거래 성립이다, 강태형.”
한 검사와 태형의 엇갈린 정의의 맹약이 마침내 최후의 타협을 이끌어 냈다. 복수의 4막은 이제 세상의 가장 높은 비리 세력들을 법의 단두대 위에 올려놓고, 강태형 스스로 철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엄하고도 비장한 최후의 결말을 향해 그 마지막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복수의 완성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