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86화: 형제들의 이정표
목요일 밤 10시, 강남 철혈 코퍼레이션 본사 15층 대표 집무실.
자욱한 보이차 연기가 피어오르는 탁자 주변에 강태형을 필두로 임창수, 한정훈, 그리고 박마동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복수극의 모든 사선을 넘나들며 사지를 뚫고 나온 세 사내의 온몸은 피 묻은 흉터와 상처 자국으로 채워져 있었으나, 그들의 눈빛만큼은 피비린내 없는 정갈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태형은 책상 서랍에서 세 장의 비밀 양도 계약서와 인감 명의 양도서를 꺼내 그들의 앞에 한 장씩 가만히 밀어 놓았다.
“이게 뭡니까, 형님?”
창수가 지장 도장이 찍힌 서류를 들여다보며 찌푸린 얼굴로 물었다.
“창수 넌 명동 카지노와 강남의 사설 대출 업체를 합법으로 법인 등록한 ‘철혈 파이낸셜’의 명의를 넘겨받아라. 정훈이 넌 인천 부두 물류 창고와 선박 유통망을 쥔 ‘철혈 로지스틱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마동이 넌 대한가드 인수를 통해 확보한 ‘철혈 시큐리티’를 운영해라.”
태형의 나직한 명령에 세 사내의 얼굴이 굳어졌다.
“형님! 그 말씀은…… 형님은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마동이 쇠망치를 움켜쥔 손을 떨며 소리쳤다.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를 쓸어내렸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대검찰청 한강현 검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 검사는 비리를 모르는 꼿꼿한 칼날이지. 언젠가 그가 우리 철혈 코퍼레이션의 숨통을 법적으로 죄어올 때, 내가 최종 대표이사로서 모든 법적 횡령과 특수 폭행 혐의를 짊어지고 구치소로 들어갈 거다. 너희는 내가 넘겨준 깨끗한 합법 회사의 주인으로서 평생 어둠을 벗어나 양지에서 먹고살아라.”
태형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형제들의 가슴을 찌르는 칼자루 같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고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또 한 번 스스로 지옥의 방패막이가 되려는 형님의 잔인하도록 숭고한 결단이었다.
“안 됩니다, 형님!”
창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리가 보육원 시절부터 피로 맺은 의형제였고, 최진상의 배신에 복수를 다짐할 때도 같이 지옥으로 들어갔습니다! 형님이 감옥을 가신다면, 우리도 기꺼이 그 옆방으로 기어 들어갈 겁니다! 절대 혼자 다 짊어지게 두지 않겠습니다!”
정훈 역시 묵묵히 서류를 태형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형님. 철혈의 깃발은 우리가 같이 올렸습니다. 끝까지 형님의 등 뒤를 지키는 게 우리의 맹약입니다.”
마동 역시 단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깊고 푸른 눈으로 세 사내를 응시했다. 3년의 피 묻은 세월을 거쳐, 그들의 맹약은 이제 복수를 넘어 영원히 깨지지 않는 하나의 강철 고리가 되어 있었다.
태형은 가만히 찻잔을 들어 올렸다.
“좋다. 형제가 같이 가자.”
챙-! 하는 찻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네 사내의 눈빛에는 그 어떤 바람보다도 단단하고 시린 승리의 맹약이 빛나고 있었다. 밤의 왕국 수립을 선언하는 피의 4막은, 이제 세상의 법과 제도마저 비웃으며 그들만의 완전한 철혈의 시대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복수의 결말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