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79화: 밤의 황제
토요일 저녁 8시, 강남의 한 고급 호텔 비밀 VIP 라운지.
라운지 입구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철혈단 경비 대원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었고, 은밀한 원목 홀 테이블 주변에는 서울 각 구역을 주름잡는 주요 하부 조직의 보스 10여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시사철 피비린내를 풍기며 거리를 지배하던 어둠의 우두머리들이었으나, 오늘 이 방에서만큼은 순한 양처럼 눈치를 살피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스르륵-.
라운지의 문이 열리며,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를 짚은 강태형이 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뒤로, 깁스를 풀고 어깨에 상처 자국을 품은 임창수와 한정훈, 그리고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해 거대한 몸집으로 쇠망치를 들고 서 있는 박마동이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었다.
태형이 상석에 가만히 주저앉으며 지팡이를 옆에 기대놓았다.
“다들 모였군.”
태형의 나직하고 조용한 한마디에 홀 안은 단숨에 얼어붙듯 정적이 찾아왔다.
태형이 눈짓하자, 소희가 지장 도장이 찍혀야 할 10여 장의 새로운 강남 및 명동 지구 이권 승계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나열했다.
“서명하십시오.”
태형의 명령에 영등포파의 두목이 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 대표님…… 오만수 회장님 밑에서 오랫동안 해오던 하부 시장 수수료 몫을 이번에 전부 거두어가시면, 저희 식구들도 먹고살기 곤란합니다. 조금만 양해해 주시면…….”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 끝을 가만히 매만지더니, 나직하게 읊조렸다.
“양해라…….”
그 순간, 마동이 휠체어에서 일어나 다가가 그 보스의 대리석 테이블 위를 쇠망치로 강하게 내리쳤다.
콰광-!
테이블의 대리석이 쩍 갈라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영등포 보스는 소스라치게 놀라 의자 뒤로 나자빠졌다.
“우리는 깡패 조직이 아닙니다.”
태형의 눈동자가 깊고 고요하게 번뜩였다.
“이제 강남의 유통망과 밤의 수수료는 우리 철혈 코퍼레이션의 합법적인 규칙 아래 관리됩니다. 내 규칙을 따르는 자들은 금성 시절보다 더 많은 몫을 쥐게 될 것이고, 내 규칙을 거스르는 자들은 영등포 앞바다에 뼈 한 마디 남기지 않고 묻힐 겁니다.”
태형의 차가운 선언에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보스는 없었다.
보스들은 떨리는 손으로 인장 인주를 묻혀 차례로 이권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다. 서울 전체의 밤거리를 쥐락우락하던 모든 지하 권력들이, 마침내 강태형이라는 서늘한 거장 아래 완벽하게 굴복하여 무릎을 꿇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네 사내가 잔을 들어 술을 나누는 동안, 태형의 무릎 위에 놓인 지팡이는 어둠 속에서 차가운 밤의 제왕의 왕관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만수와 최진상, 권영태를 넘어 마침내 서울의 진짜 어둠을 통째로 움켜쥔 복수귀 강태형. 3막 ‘균열과 전면전’의 최종 핏빛 아크가 그 거대한 승리의 결말로 완성되었고, 그들 앞에는 이제 배신의 모든 연결고리를 완전히 잘라내고 철혈의 시대를 선언할 최후의 4막 ‘피의 결산’이 피비린내 없는 조용한 어둠 속에서 웅장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왕국의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