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75화: 제국의 황혼
수요일 오전 9시, 서울 강남 금성그룹 본사 빌딩 정문 앞.
대형 버스와 수십 대의 경찰 수사관 차량이 빌딩 로비를 가로막은 채 요란한 사이렌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수십 명의 무장 경찰관들과 대검찰청 특별수사부 수사관들이 대문 로비 안으로 영장을 들고 들이닥쳤다.
회장 전용 집무실 안, 기밀 탈출 통로인 간이 비상문 앞에 여행용 가죽 가방을 들고 서 있던 권영태 회장은, 문이 거칠게 열리며 들어서는 경찰관들을 보며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권영태 회장님. 당신을 한태석 총경에 대한 살인교사 공모 및 비자금 횡령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한강현 검사가 체포 영장을 제시하며 차갑게 고지했다.
“이, 이럴 리가 없다…… 한 총경 그 배신자 새끼가 감히 날 찔러? 나 권영태야! 금성의 회장이라고!”
권영태가 발악하듯 비명을 질렀으나, 수사관들은 그의 비단 소매 위로 차가운 은빛 수갑을 가차 없이 채웠다. 오성준에 이어 권영태마저 왕좌에 앉은 지 단 이틀 만에 수갑을 찬 채 기자들의 플래시 불빛 속으로 끌려 나가는 비참한 몰락의 순간이었다.
이로써 금성그룹을 지배하던 오만수, 오성준, 최진상, 권영태, 그리고 신재현 비서실장까지 모든 정재계 핵심 기둥들이 법의 단두대 아래 완전히 단죄받아 사라져 버렸다. 거대 기업 금성그룹의 왕국은 사실상 주가 폭락과 함께 공중분해 될 파산 절차를 맞이하게 되었다.
같은 시각, 강남의 철혈 코퍼레이션 대표 집무실.
연소희는 노트북 화면의 금성그룹 실시간 주식 차트와 법원 경매 속보를 보며 뺨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형님, 권영태의 체포와 동시에 금성그룹의 메인 계열사 지분들이 법정 관리와 경매 매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확보한 차명 계좌의 1,200억 원 현금과 한명은행의 전결 권한을 이용해, 금성로지스와 금성레저의 잔여 지분 전체를 시장 가격의 3분의 1도 안 되는 헐값에 통째로 인수했어요. 이제 우리는 명실상부한 강남과 서울의 밤거리를 지배하는 유일한 기업이 된 거예요.”
옆에서 깁스를 한 창수가 잔을 들며 웃었다.
“흐흐, 거성의 왕좌가 결국 우리 대표님의 지팡이 아래 완전히 무릎을 꿇었군요. 3년 전 배신의 고통이 이제 완벽한 왕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 머리를 만지며 창밖 테헤란로의 높은 빌딩 숲을 내려다보았다.
어깨와 옆구리의 상처 붕대에서 미세하게 붉은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으나, 그의 깊고 푸른 눈동자에는 세상을 굽어보는 밤의 군주의 매서운 안광이 녀석을 스쳤다.
배신자들은 전부 철창 뒤에 갇혔고, 그들이 누리던 화려한 제국은 철혈단의 깃발 아래 통째로 재편되었다.
태형은 지팡이로 바닥을 딛으며 일어섰다.
“가자.”
태형이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의 밤을 선언한다.”
3막 ‘균열과 전면전’의 피비린내 나는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 철혈단은 드디어 거대 제국 금성을 완전히 집어삼킨 채 최종 결판이자 왕국의 공식 수립을 선언하는 피의 4막 ‘피의 결산’을 향해 비장하게 나아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들의 핏빛 질주는 이제 최종 결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