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72화: 어둠 속의 공모
화요일 밤 9시, 서울 강남의 한 일식집 비밀 룸.
고급스러운 원목 슬라이딩 도어가 굳게 닫힌 룸 내부에는 금성그룹 권영태 회장과 경찰청 정보과 소속 한태석 총경이 마주 앉아 은밀히 잔을 나누고 있었다. 한 총경은 오만수 회장 시절부터 금성의 거액의 뇌물을 받고 뒤를 봐주던 대표적인 비리 경찰이자 정계의 사냥개였다.
“한 총경. 오 회장이 잡혀갔지만 우리 금성은 여전히 건재하네. 단지 강태형이라는 쥐새끼가 눈앞에서 칼춤을 추고 있어서 골치가 아프군.”
권영태가 시가를 태우며 나직하게 속삭이자, 한태석 총경이 기름진 얼굴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권 회장님. 강태형이가 쥐고 있는 비자금 장부 실물이 한강현 검사에게 추가로 넘어가면 저나 의원님들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놈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지워버려야 합니다.”
“합법적으로?”
권영태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가늘어졌다.
“예. 내일 새벽, 마약 유통 및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 강태형의 성북동 사저를 급습하는 긴급 영장을 집행할 겁니다. 제 직속 정보과 형사들과 제가 고용한 사설 해결사들을 합동 체포조로 구성해 투입할 생각입니다. 체포 과정에서 강태형이 격렬하게 저항하다가 총기 오발 사고로 ‘현장 사살’된 것으로 처리하면 깔끔합니다.”
한 총경의 서늘한 구상에 권영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흐흐, 아주 훌륭한 시나리오군. 강태형 그 다리 병신 새끼가 경찰의 정당한 영장 집행에 저항하다가 죽었다면, 세상 어느 누구도 날 의심하지 못하겠지. 바로 진행하게. 수수료는 스위스 계좌로 입금해 두었네.”
추악한 비리 권력과 늙은 여우 권영태의 공모가 안개 속에서 체결되었다.
같은 시각, 성북동의 한옥 안전가옥.
제어실의 컴퓨터 화면을 보던 연소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헤드셋을 통해 도청한 한태석 총경과 권영태 회장의 비밀 통화 데이터를 분석해 태형에게 보고했다.
“형님! 권영태가 비리 경찰 한태석 총경과 손을 잡았어요. 내일 새벽 2시, 마약 및 불법 무기 밀수 혐의로 우리 안전가옥을 특별 급습해 형님을 현장에서 사살하려는 시나리오를 짰어요. 정보과 형사들로 위장한 해결사 팀이 투입될 거예요.”
보고를 들은 창수와 정훈이 발끈하며 일어섰다.
“제길! 권영태 그 늙은 영감탱이, 이사회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구만! 형님, 즉시 대피하셔야 합니다!”
창수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하지만 태형은 창밖 대나무 숲의 대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묵묵히 들으며, 지팡이 끝을 가만히 매만질 뿐이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동요나 공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피하지 않는다.”
태형의 나직한 음성이 어두운 방안을 울렸다.
“한태석과 권영태가 법의 완장을 차고 우릴 덮치려 든다면, 우리는 그 완장이 지옥의 수의(壽衣)가 된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 정훈아, 가옥 마당과 비상계단 진입로에 전술 부비트랩과 연막탄 장치 가동시켜라. 놈들이 이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정당방위라는 합법적인 테두리 아래 한 놈도 남김없이 으스러뜨린다.”
태형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스쳤다.
비리 경찰의 완장을 차고 들이닥치려는 늑대들과, 그 늑대들의 목줄기를 끊어버리기 위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칼을 갈고 있는 철혈단의 사내들.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성북동의 어두운 밤하늘 위로, 피비린내 나는 폭풍우가 다시 한번 불길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복수의 결판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