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71화: 흔들리는 동맹
화요일 오전 11시, 금성그룹 회장 집무실.
오만수와 오성준 부자가 감옥으로 실려 가고 청와대 실세 신재현마저 파멸한 지금, 이방의 새로운 주인이 된 권영태 회장은 실크 수트 깃을 만지며 가만히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 오만수 밑에서 부회장이라는 껍데기만 쥐고 눈치를 보던 늙은 여우가, 마침내 금성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왕좌를 차지한 것이었다.
스르륵-.
비서의 안내 없이 집무실의 무거운 문이 열리며, 검은색 정장 차림의 강태형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의 어깨와 옆구리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으나, 그가 풍기는 서늘한 분위기는 오만수가 앉았던 그 무거운 방 전체를 단숨에 압도했다.
권영태는 즉시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오, 강 대표! 어제 그 대단한 청와대 비서실장 습격 사건을 아주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고 들었네. 역시 대단해. 이제 우리를 가로막을 거대한 산들은 전부 날아갔네!”
태형은 말없이 권영태가 건네는 샴페인 잔을 사양한 채, 맞은편 가죽 소파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무릎 사이에 세워 쥐고, 깊고 고요한 눈동자로 권영태를 쏘아보았다.
“권 회장님. 축하는 이쯤 해두고, 약속하신 지분 승계 마무리를 지읍시다.”
태형이 테이블 위에 서류 한 장을 툭 던져놓았다.
“금성로지스가 소유한 인천 부두 창고 부지와, 금성레저 산하의 명동 지점 부동산 명의 이전 서류입니다. 당장 법무팀을 시켜 서명 결재해 주십시오.”
권영태의 입가에 감돌던 웃음이 미세하게 경련했다. 그는 샴페인을 한 모금 들이키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하…… 강 대표. 마음이 너무 급하군. 아시다시피 지금 대검찰청 특별수사팀이 금성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장부를 다 들여다보는 중이 아닌가? 이 시점에 갑자기 거액의 부동산 명의를 철혈 코퍼레이션으로 승계하면, 한강현 검사가 이를 기획 횡령으로 의심해 수사 방향을 우리에게 돌릴 수 있네. 조금만 시간을 주게. 한 달만 흐르면 말끔히 처리해 주지.”
비열한 핑계이자 교묘한 시간 끌기였다.
권영태는 오성준을 끌어내리기 위해 태형의 손을 잡았지만, 정작 자신이 왕좌에 앉자 태형에게 금성의 노른자위 지하 지분을 떼어주는 것이 아까워진 것이었다. 무엇보다, 강태형이라는 살기 어린 사내가 자신의 밑바닥 통제권을 쥐고 흔드는 한, 자신은 영원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태형은 가만히 지팡이를 들어 올려 권영태의 책상 앞 대리석 테이블 위를 가볍게 툭 내리쳤다.
빡-! 하는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권영태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권영태.”
태형의 목소리가 에어컨 바람보다도 서늘하게 깔렸다.
“당신이 짚고 앉은 그 회장 자리가 누구 손끝에서 만들어졌는지 잊지 마십시오. 내가 장부를 쥐고 있는 한, 널 그 의자에서 끌어내려 차가운 구치소 바닥에 처박는 건 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보다 쉬운 일입니다.”
태형이 절뚝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내일 아침까지 이전 서류에 승인 도장이 찍히지 않으면, 권 회장 당신의 차명 뇌물 장부 2차 파일을 대검찰청 기자실로 발송하겠습니다. 내 인내심은 오늘 밤까지입니다.”
탁-.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권영태의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붉게 달아올랐다. 그가 손에 쥔 샴페인 잔을 바닥에 내던져 박살 냈다.
쨍그랑-!
“이 다리 병신 같은 깡패 새끼가 감히 날 협박해……?”
권영태가 이를 갈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이미 동맹을 깨고 배신을 감행하려는 지독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어이, 황 비서. 지금 당장 금성파 잔당들의 머리 역할을 하던 해결사 놈들을 비공식적으로 소집해라. 강태형 그 다리 병신 새끼의 머리를 따와야겠다.”
왕좌를 지키려는 늙은 여우 권영태의 숨겨진 발톱이 마침내 강태형을 겨냥해 미끄러져 나오기 시작했다. 3막의 후반부, 동맹의 균열(Crack)이 핏빛 소리 소문 없이 파열음을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복수의 종착지를 향한 최종 전쟁의 서막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