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6화: 교도소의 지배자
장필두가 양팔이 꺾인 채 실려 나간 이후, 교도소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진상이 사주한 간수들은 직무유기와 뇌물 수수 혐의가 드러날까 두려워 입을 닫았고, 죄수들 사이에서 강태형은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괴물’로 통했다.
그는 이제 단순한 수감자가 아니었다. 청송 제2교도소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였다.
야간 운동 시간, 강태형은 마두식과 함께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태형에게 도전했다가 박살이 났던 ‘독사’ 임창수가 얌전하게 서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태형 형님, 담배 구했습니다. 필터 짱짱한 놈으로다가 어렵게 빼돌렸습니다.”
임창수가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건넸다. 태형은 묵묵히 담배를 받아 물었고, 임창수는 재빨리 라이터 불을 붙였다. 태형은 매캐한 연기를 뱉어내며 말했다.
“창수야.”
“예, 형님! 말씀만 하십시오!”
임창수가 바짝 긴장하며 허리를 굽혔다.
“최진상이 바깥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넌 출소일이 언제지?”
“저, 저는 반년 뒤면 만기 출소입니다.”
“나가면 내 발이 되어라. 먼저 서울로 올라가서 흩어진 동생들 중 진상이 밑으로 안 기어 들어간 놈들부터 파악해 놔. 준비할 수 있겠나?”
임창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최진상과 금성파는 거대한 공룡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강태형은 그 공룡의 목을 뜯어낼 사나운 이빨이었다. 임창수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뜻이라면 지옥이라도 가겠습니다. 제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 바깥에서 제대로 갚겠습니다.”
태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그를 물러나게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두식이 껄껄 웃었다.
“칼잡이 놈 하나는 제대로 길들였군. 하지만 태형아, 주먹만으로는 오만수와 최진상을 무너뜨릴 수 없다. 그놈들은 이제 깡패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쥔 기업인들이야. 그놈들을 무너뜨리려면 놈들의 젖줄인 ‘돈줄’을 끊어야 해. 그러려면 머리 쓰는 놈이 필요하지.”
태형도 동감하고 있었다. 금성파는 ‘금성그룹’으로 세탁하여 양지의 대기업처럼 굴러가고 있었다. 놈들의 복잡한 자금 흐름과 정재계 카르텔을 파헤치기 위해선 지독한 브레인이 필요했다.
마두식은 운동장 저편에서 혼자 쭈그려 앉아 모래바닥에 숫자를 적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남자를 가리켰다.
“저놈이다. 김민철. 일명 ‘김 교수’라고 부르지. 삼류 대학 경영학과 교수 출신인데, 대기업 비자금 세탁과 주가조작을 전담하던 천재다. 오만수 밑에서 일하다가 비자금 장부 하나를 빼돌려 숨겨두고 독박을 써서 들어왔지. 최진상이 저놈을 회유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하고 있지만, 김 교수는 입을 다물고 버티는 중이다.”
태형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절뚝거리는 다리로 김 교수에게 다가갔다.
사각사각. 김 교수는 모래 바닥에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 태형의 그림자가 그림 위에 드리워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의 눈에는 극도의 경계심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구십니까? 저한테 또 장부 행방을 물으러 오신 거라면 번지수 잘못 찾으셨습니다.”
김 교수의 목소리는 칼칼했다.
태형은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장부 따위엔 관심 없다. 나는 최진상의 목을 원한다.”
그 이름에 김 교수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태형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최진상이 네 아내와 딸이 있는 캐나다 거처를 알아내려고 사람을 풀었다더군. 널 압박해서 장부를 찾아내고,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네 가족과 너까지 깔끔하게 지워버릴 생각인 거지. 놈은 그런 놈이다.”
김 교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태형의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태형이 그의 손목을 가볍게 제압했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최진상이 내 가족을……!”
“내가 바깥에 연줄이 좀 있거든. 김 교수, 나와 손을 잡아라. 내가 네 가족의 신변을 안전한 곳으로 빼돌려 주마. 대신 넌 내 머리가 되어라. 금성그룹을 공중분해 시킬 금융 병기가 되어달란 뜻이다.”
김 교수는 태형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광기 어린 복수심과 함께, 상대를 압도하는 기묘한 신뢰감이 서려 있었다. 최진상이라는 괴물에 맞서기 위해선, 더 강한 괴물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김 교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정말…… 내 가족을 구해주실 수 있습니까?”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하지. 넌 최진상에게 장부를 넘기지 말고 버티기만 해라. 나머지는 내가 해결한다.”
김 교수는 젖은 침을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제 가족만 안전하게 지켜주신다면, 금성그룹의 심장인 비자금 세탁 통로와 주식 카르텔을 완전히 찢어발겨 드리겠습니다.”
태형의 입가에 묵직한 미소가 걸렸다.
무력의 독사 임창수, 그리고 지략의 김 교수. 감옥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강태형의 복수를 위한 거대한 톱니바퀴가 마침내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