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59화: 최후의 동아줄을 가로채다
금요일 오전 10시, 강남의 최고급 빌딩 지하 3층에 위치한 회원제 사설 대여 금고 서비스 ‘골든 데포’.
철저한 홍채 인식과 이중 보안 인증 카드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는 이곳에, 세련된 양복을 입은 대형 로펌 ‘세양’의 송무 팀장 구자명 변호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삼엄한 통제 구역을 빠져나왔다. 그의 손에는 정갈한 검은색 가죽 서류 가방이 가볍게 들려 있었다. 가방 안에는 최진상이 일평생 비밀리에 모아둔 고위 법관들과 부장판사들의 비밀 정기 상납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된 ‘법조계 뇌물 장부’ 실물이 들어있었다.
구자명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둔 자신의 메르세데스 세단 차량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이 장부만 구치소의 최 실장에게 전달되면, 형집행정지와 구속영장 기각은 시간문제다.”
구자명이 안도하며 차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끼이익-!
굉음과 함께 낡은 은색 스타렉스 차량 한 대가 전속력으로 후진하여 구자명의 세단 앞머리를 가로막으며 정차했다.
“뭐, 뭐야!”
구자명이 기겁을 하며 세단 안으로 몸을 던져 문을 잠그려 했다.
하지만 스타렉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깁스를 한 임창수가 빗발치듯 내렸고, 뒤따라 내린 한정훈이 망치 모양의 비상용 글래스 브레이커로 세단의 운전석 옆 유리창을 단숨에 내리쳤다.
와장창-!
날카로운 파편음과 함께 강화유리가 박살 나 주차장 대리석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구자명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는 사이, 정훈은 깨진 창틀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차량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나오시죠, 구 변호사님.”
창수가 왼손으로 구자명의 멱살을 움켜쥐고 차량 밖 진흙바닥 위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구자명이 들고 있던 가죽 서류 가방이 허공에 날아갔다가 정훈의 손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이, 이 강도 새끼들이 누군 줄 알고 이래! 난 법무법인 세양의 변호사다! 이 가방 안에 든 게 뭔지 알고 가로채는 거냐! 이거 법조계 전체를 뒤흔들 장부야! 이거 건드리면 대한민국 사법부가 네놈들 뼈마디를 통째로 씹어 먹을 거다!”
구자명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악을 쓰며 협박했다.
그때, 스타렉스의 뒷좌석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전조등의 불빛을 등지고, 어둠 속에서 절뚝거리며 강태형이 걸어 나왔다. 지팡이로 바닥을 딛을 때마다 툭, 툭 하는 나직한 마찰음이 주차장에 메아리쳤다.
태형은 구자명의 코앞에 멈춰 서서 지팡이 끝으로 그의 턱밑을 차갑게 겨누었다.
“구 변호사.”
태형의 깊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아 소름 돋도록 서늘했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우리를 씹어 먹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장부로 법조계의 목덜미를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태형은 정훈이 챙긴 서류 가방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가져가라.”
“예, 형님!”
창수와 정훈은 구자명을 바닥에 내버려 둔 채 신속하게 스타렉스에 나누어 탑승했다. 스타렉스는 굉음을 내며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와 밝은 강남 대로 위로 폭풍처럼 질주해 나갔다.
주차장 바닥에 남겨진 구자명 변호사는 박살 난 유리 파편 위에서 멍하니 멀어지는 스타렉스의 붉은 후미등을 바라보며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최진상의 마지막 생명줄이자 사법부를 향한 유일한 방패가, 단 3분 만에 철혈단의 손에 완벽하게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복수의 핏빛 결말이 이제 최종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