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58화: 몰린 쥐의 발악
성북동의 한옥 안전가옥 안.
태형은 상의를 탈의한 채 침대에 앉아 있었고, 야전 의사 백 노인이 그의 왼쪽 어깨와 옆구리에 붕대를 꼼꼼하게 감고 있었다. 어깨를 깊게 찔렀던 단검의 흔적이 시퍼런 실밥과 함께 흉터로 남아 있었다.
“자네 몸뚱이는 쇳덩이로 만들었나? 심장 옆을 칼로 찔리고 어깨뼈가 뚫렸는데도 어떻게 걸어 다녔는지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네. 당분간 무조건 안정이네.”
백 노인이 혀를 차며 약통을 챙겨 나갔다.
태형은 말없이 검은색 셔츠를 고쳐 입고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섰다. 곁에서 상처를 보며 미안해하던 소희가 태블릿 PC를 들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박원식 의원의 긴급 체포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요. 특수부 한강현 검사에게 압박을 받은 박 의원이 자신의 뇌물 상납과 차명 계좌 관리를 전부 구치소에 있는 최진상이 설계했다고 불기 시작했어요. 검찰이 최진상에게 살인 교사 및 뇌물 공여 혐의로 추가 영장을 발부하려 움직이고 있어요.”
옆에서 팔에 깁스를 한 창수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비죽이 미소를 지었다.
“흐흐, 최진상 그 교활한 새끼, 드디어 제 무덤에 제 발로 기어 들어가게 생겼군요.”
하지만 태형은 창밖 대나무 숲을 바라보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진상이는 그렇게 쉽게 죽을 놈이 아니다. 놈은 자신이 완전히 몰릴 경우를 대비해, 평생 자신을 비호해 줄 수 있는 최후의 카드를 숨겨두었을 거다.”
소희가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자, 최진상의 과거 행적 관련 기밀 파일이 나타났다.
“형님 말씀이 맞아요. 최진상이 금성파 기획실장 시절, 정계뿐만 아니라 법조계 고위 법관들과 영장 전담 판사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한 ‘법조계 뇌물 장부’의 실물이 존재해요. 놈은 그 장부를 이용해 담당 판사와 검사들을 협박하여 형집행정지 기간을 계속 늘리고 해외 도피를 위한 영장 기각을 유도하려 할 거예요.”
“그 장부가 어디 있나.”
태형이 나직하게 물었다.
“최진상이 예전에 개인적으로 관리하던 강남의 한 회원제 고급 금고 대여점 ‘골든 데포’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최진상의 직속 변호사 역할을 하는 ‘법무법인 세양’의 송무 팀장, 구자명이 내일 오전 중에 그 장부를 찾아 구치소로 전달할 예정이에요.”
태형의 깊은 눈동자 속에 푸른 불꽃이 녀석을 스쳤다.
“구자명이 골든 데포에서 장부를 손에 쥐는 순간, 우리가 가로챈다.”
태형이 지팡이를 고쳐 잡으며 돌아섰다.
“진상이가 쥔 마지막 구원의 동아줄을 잘라버린다. 창수야, 정훈아. 내일 아침 골든 데포 주변의 퇴로를 확보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사냥꾼들의 칼끝은 이제 최진상의 마지막 방패를 조준하고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최진상과, 그 마지막 동아줄을 끊어내려는 철혈단의 소리 없는 두뇌 싸움이, 강남의 화려한 빌딩 숲 뒤편에서 다시 한번 피비린내를 풍기며 조용히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복수의 결말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