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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맹약54화

철혈의 맹약

철혈의 맹약

54화: 올가미에 걸린 새

목요일 밤 10시, 세무조사단이 철수하고 습격했던 깡패들이 물러난 철혈 코퍼레이션 본사 빌딩은 고요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로비의 부서진 유리를 치우는 미화원들의 비질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연소희는 메인 서버의 해킹 복구 장비를 챙긴 뒤, 홀로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밤새 찌든 담배 연기와 매연 냄새 속에, 그녀의 피곤한 눈동자가 자신의 은색 세단 차량을 향했다.

그녀가 차 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스윽-.

주차장의 기둥 그늘 속에서 정체 모를 차가운 그림자가 바람처럼 솟아올랐다.

“……!”

소희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허리춤의 고성능 전기충격기를 뽑아 들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사내의 칼로 깎은 듯 날카로운 얼굴과 한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를 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빅토르 최였다.

“소리 지르는 순간, 목줄기가 날아간다.”

빅토르 최의 서늘한 고려인 음성이 주차장의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소희는 침을 삼키며 전기충격기의 스위치를 켰다. 파지직하는 푸른 스파크가 튀자, 빅토르 최의 눈가에 엷은 비웃음이 스쳤다. 소희는 비명을 지르며 충격기를 뻗었으나, 빅토르 최의 권총 손잡이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내리쳤다.

빡-!

“아윽!”

손목뼈가 저리며 전기충격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빅토르 최는 곧바로 소희의 목덜미를 휘감아 쥐며 그녀의 경동맥을 강하게 압박했다. 산소 공급이 차단된 소희의 시야가 급격히 흐려졌고, 그녀는 버둥거리던 손을 늘어뜨린 채 의식을 잃고 주저앉았다.

빅토르 최는 소희의 거구를 한 팔로 가볍게 들어 올려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번호판 없는 검은색 SUV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소희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들었다.


같은 시각, 15층 대표이사 집무실.

태형은 지팡이를 짚은 채 창밖 강남의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로비의 소란은 정리되었고, 박원식의 구속으로 한시름 놓은 타이밍이었으나 그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젖어 있었다.

지리리링-.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태형의 개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연소희’였다.

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소희야. 안전하게 가옥에 도착했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소희의 것이 아니었다. 갈라지고 서늘한, 뱀의 숨소리 같은 사내의 음성이었다.

태형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빅토르 최.”

뚝-.

전화가 가차 없이 끊어졌다.

태형은 폰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폰 액정 화면 위에 미세한 금이 갈 지경이었다.

옆에서 부러진 어깨를 주무르며 서류를 정리하던 정훈이 놀라 다가왔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태형은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문을 향해 절뚝거리며 걸어 나갔다.

“소희가 납치됐다. 빅토르 최가 나보고 인천으로 혼자 오라고 하더구나.”

“안 됩니다, 형님! 놈의 명백한 덫입니다! 저와 창수 형이 무장을 하고 뒤를 밟겠습니다!”

태형은 가만히 손을 들어 정훈을 만류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푸른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 안에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지독한 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빅토르 최는 사냥꾼이다. 조금이라도 미끼에 잔상이 섞이면 소희의 목을 벨 놈이지. 내가 혼자 간다.”

태형은 지팡이를 딛고 어두운 사무실 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사신이 파놓은 지옥의 둥지를 향해, 강태형의 거침없는 핏빛 발걸음이 깊은 밤공기를 뚫고 인천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건 최후의 대결이 눈앞에 박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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