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48화: 왕좌의 몰락
수요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 금성그룹 본사 60층 대회의실.
긴박감이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깨고, 이사회 의장석에 앉은 부사장 오성준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사진 여러분. 아버님의 부재중 일어난 주가 불안과 임시 혼란을 신속히 수습하기 위해, 저를 신임 회장으로 추대하는 이사회 결의안을 상정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면 즉시 서명…….”
“이의 있소.”
회의실 문이 크게 열리며 부회장 권영태가 비서진들을 거느리고 당당히 들어섰다. 오성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비웃었다.
“권 부회장님. 아픈 노인네는 집에 가서 요양이나 하시지 왜 여길 나오셨습니까? 이미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이 저의 회장 취임에 합의했습니다.”
“합의라…… 이 서류들을 보고도 그 소리가 나올지 궁금하군.”
권영태의 손짓에 비서들이 회의 테이블 양옆의 이사진과 계열사 대표들 앞에 일제히 파란색 기밀 폴더를 하나씩 배포했다. 오성준의 앞에도 서류 뭉치가 내팽개쳐졌다.
오성준은 코방귀를 뀌며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첫 장을 넘기자마자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
서류에는 오성준이 부사장 직위를 이용해 KH 건설과 금성 캐피탈의 비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고, 정재계 고위 인사들에게 직접 뇌물을 상납한 계좌 거래 내역서와 친필 서명 장부 복사본이 아주 상세하게 첨부되어 있었다.
회의실 안은 순식간에 이사들의 경악 서린 수군거림과 고함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 부사장! 이게 사실인가? 횡령에 비자금 상납이라니!”
“아버지가 잡혀 들어간 지 이틀 만에 아들까지 법정에 서게 생겼잖아! 우리 회사를 아주 망하게 할 작정인가!”
오성준은 사시나무 떨듯 떨며 일어섰다.
“이, 이것은 조작된 서류입니다! 부회장 이 노인네가 날 음해하기 위해 조작한 장부라고요! 당장 경비원 불러!”
오성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으나, 회의실 문이 다시 한번 활짝 열렸다.
이번에 들어선 인물들은 검은색 가죽 가방을 든 검찰 수사관들과 특수부 한강현 검사였다. 한 검사는 정장 품속에서 붉은 직인이 찍힌 영장을 꺼내 오성준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금성그룹 부사장 오성준 씨. 당신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공무원 뇌물 공여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철컥-.
회의실 안의 모든 이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성준의 손목에 차가운 은빛 수갑이 채워졌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회장 왕좌를 꿈꾸던 오만수의 아들이, 아버지가 누워 있는 구치소 옆방으로 실려 가게 된 비참한 몰락의 순간이었다.
“권영태…… 이 늙은 여우 같은 새끼가 날 함정에 빠뜨렸어! 안 돼! 놔라!”
오성준이 비명을 지르며 수사관들에게 끌려 나갔고,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복도를 하얗게 뒤덮었다.
이사회 회의실 안에는 싸늘한 침묵과 함께 상석인 회장석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권영태는 천천히 걸어가 오만수와 오성준이 앉았던 그 가죽 회장석 의자에 앉아 거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같은 시각, 성북동 안전가옥 안.
소희가 노트북 화면의 주식 거래량과 뉴스 속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오성준이 현장에서 즉각 체포되었어요. 권영태 부회장이 긴급 이사회를 통해 임시 회장으로 추대되었고요.”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 머리를 만지며 창밖의 비 내리는 밤하늘을 보았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승리의 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거성을 지탱하던 두 개의 기둥이 완전히 으스러졌다.”
태형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제 금성그룹의 밤은 우리 철혈단의 것이다. 권영태가 약속을 이행하는지 예리하게 감시해라.”
오만수와 오성준 부자의 몰락과 함께, 철혈단은 드디어 금성그룹의 밑바닥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거대한 칼자루를 손에 쥐게 되었다. 복수의 핏빛 2막이 마침내 완벽한 승리로 그 막을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