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44화: 사신의 퇴장
쉭-!
빅토르 최의 단검이 빗방울을 가르며 태형의 등덜미를 향해 무서운 궤적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태형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몸의 감각만으로 죽음의 거리를 재고 있었다. 태형은 짚고 있던 지팡이를 뒤로 젖히며, 손잡이의 강철 침으로 단검의 날을 정확하게 받아쳐 쳐내 버렸다.
깡-!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단검의 궤적이 빗나갔다. 하지만 빅토르 최의 반응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그는 parry 당한 반동을 이용해 가볍게 몸을 회전하며 반대편 손목 스냅으로 태형의 목덜미를 다시 한번 겨냥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형님!”
선착장 바닥에 쓰러져 있던 임창수가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창수는 부러진 오른손목 대신 멀쩡한 왼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이프를 낚아채 빅토르 최의 발목 힘줄을 향해 매섭게 찔러 넣었다.
푸욱-!
“……!”
빅토르 최의 얼굴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왼쪽 아킬레스건을 정확하게 꿰뚫린 것이었다. 빅토르 최가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자, 한정훈이 권총을 들어 놈의 오른쪽 어깨를 향해 연사했다.
탕, 탕-!
총탄 두 발이 빅토르 최의 어깨뼈에 박히며 선홍빛 피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사신이라 불리던 사내가 빗물 가득한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태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지탱하며, 지팡이를 짧게 쥐고 구두 굽으로 바닥을 밀며 빅토르 최의 가슴을 향해 지팡이 끝의 강철 침을 매섭게 찔러 넣었다.
퍽-!
“크헉-!”
강철 침이 빅토르 최의 명치를 깊숙하게 관통했다. 사신의 탁하던 눈동자가 고통과 경악으로 붉게 물들었다. 3년의 피 묻은 복수귀가 휘두른 집념의 칼날 앞에, 불패를 자랑하던 사신 역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그때, 선착장 진입로 너머에서 수십 대의 경찰차와 특수수사대 차량의 붉은 사이렌 불빛이 어두운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폭풍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한강현 검사가 이끄는 검경 합동 특별 체포조였다.
빅토르 최는 흘러내리는 피를 움켜쥔 채, 멀리 몰려오는 사이렌 불빛과 눈앞의 강태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선 순간, 빅토르 최는 망설임 없이 몸을 굴려 거칠고 사나운 검은 바다를 향해 뛰어내렸다.
첨벙-!
차가운 포말과 함께 빅토르 최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시커먼 서해 바다의 파도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선착장 바닥에는 어깨와 손목뼈가 으스러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는 오만수 회장만이 비참하게 남겨져 있었다.
태형은 지팡이 끝에 묻은 피를 빗물에 씻어내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의 발밑에서 한때 밤의 황제라 불리던 거성이 진흙탕을 구르며 비참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마침내 2막의 핏빛 싸움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