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38화: 비밀 금고의 잠금을 풀다
토요일 자정이 가까운 시각, 서울 강남의 최고급 60층 주상복합 빌딩인 금성 펜트하우스.
거센 바람과 함께 가랑비가 몰아치는 가운데, 빌딩의 지하 4층 VIP 전용 주차장에 은색 스타렉스 차량이 소리 없이 멈춰 섰다. 차 안에서 한정훈이 김도윤 비서실장에게 빼앗은 골드 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했다.
삐리릭-.
“오만수의 개인 전용 엘리베이터 보안망 해제했습니다. 이 카드로 승인하면 60층 펜트하우스까지 논스톱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정훈이 태형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깁스를 한 임창수가 그 옆에서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점검하고 있었다. 박마동은 폐창고에서 부상을 치료 중이었기에, 이번 잠입조는 태형, 정훈, 창수 세 사람으로 구성되었다.
“가자.”
태형의 짧은 명령과 함께, 세 사람은 어둠을 틈타 VIP 전용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는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여 마침내 60층 펜트하우스 내부 로비에 도달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이탈리아제 고급 대리석 바닥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는 넓은 펜트하우스 거실이 나타났다. 김도윤이 미리 알려준 덕분에 경호원들의 순찰 동선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었다. 오만수 회장은 현재 평창동 별장에서 빅토르 최의 경호를 받으며 머물고 있었기에, 펜트하우스 내부에는 경비원이 단 두 명뿐이었다.
창수가 바람처럼 복도를 파고들어 거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 한 명의 명치를 팔꿈치로 강타하고 목덜미를 베어 기절시켰다. 동시에 정훈은 CCTV 제어 장치를 우회시켜 감시 화면을 마비시켰다.
“안채 서재입니다, 형님.”
정훈이 앞장서며 오만수의 비공식 서재 문을 밀어젖혔다. 서재 안쪽 벽면에는 거대한 참나무 책장이 우뚝 솟아 있었다. 정훈이 책장 가운데 꽂혀 있던 특정 가죽 수첩 책을 잡아당기자, 스르륵 소리와 함께 책장 전체가 옆으로 밀려나며 두꺼운 강철 금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성그룹의 최고 기밀들이 보관된 독일제 특수 금고였다.
정훈이 신속하게 금고 손잡이에 정밀 해킹 장비를 연결하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띠띠띠띠-.
“보안 프로토콜이 복잡합니다. 해독하는 데 최소 5분은 걸릴 것 같습니다.”
태형은 지팡이를 짚은 채 서재 창가로 다가가 유리창 너머로 번쩍이는 강남의 야경을 굽어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폭우 속의 바다처럼 깊고 고요했다.
그 시각, 평창동 오만수 회장의 별장 로비.
“뭐라고? 펜트하우스의 김도윤 전용 카드가 사용됐다고?”
경호실장으로부터 다급한 무전 보고를 받은 오만수 회장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김 실장 녀석, 휴대폰도 꺼져 있더니 기어코 강태형에게 입을 열었구나! 내 펜트하우스 금고를 노리고 있어!”
오만수는 기겁을 하며 옆에 서 있던 빅토르 최를 밀쳤다.
“빅토르 최! 당장 강남 펜트하우스로 달려가라! 금고 안에 든 붉은 다이어리를 뺏기면 우린 끝장이다! 놈들을 현장에서 전부 도살해 버려!”
빅토르 최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알겠다.”
빅토르 최는 즉시 권총을 챙겨 별장 밖으로 뛰쳐나가 대기 중이던 검은색 세단에 시동을 걸었다. 굉음과 함께 차가 빗길 도로 위를 찢어발기며 강남을 향해 광포하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시 강남의 오만수 펜트하우스 비밀 서재.
정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내렸다. 노트북 화면의 보안 해제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 85%…… 90%…… ]
“형님, 조금만 더 있으면 열립니다.”
하지만 그 순간, 창수의 무전기에서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소희의 비장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형님! 빅토르 최의 차량이 강남 빌딩 진입로로 진입하고 있어요! 놈이 눈치챘습니다! 시간이 없어요!
태형은 눈동자를 굳혔다.
“정훈아, 서둘러라.”
“예! 95%…… 완료되었습니다!”
철커덕-.
무거운 강철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맑은 금속 소리와 함께 금고문이 천천히 열렸다. 금고 내부에는 달러 뭉치들과 함께 오만수의 모든 비밀 살인 지시가 기록된 가죽 재질의 붉은 다이어리와 녹음용 파일이 담긴 암호화 USB가 놓여 있었다.
태형은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그 비밀 다이어리와 USB를 낚아챘다.
마침내 오만수의 심장을 겨눌 최후의 무기가 그들의 손에 쥐어졌으나, 펜트하우스 문밖 복도 너머에서 요란한 엘리베이터 도달 벨소리와 함께 무자비한 사신 빅토르 최의 구두 굽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는 사선(死線)의 충돌이 눈앞에 박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