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33화: 무너지는 제국
금요일 오전 9시 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입찰실.
재개발 사업 입찰 마감을 불과 10분 앞두고, 입찰실 내부는 수십 명의 취재진과 건설 대기업 관계자들로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단상 위 대형 모니터에는 입찰 마감 카운트다운 시계가 붉은 숫자로 째깍거리며 줄어들고 있었다.
입찰실 뒤편, 금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KH 건설의 임원진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며 연신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한명은행에서 보증서 발급받았어요? 네? 전산망이 아직도 묶여 있다고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비서실장 김도윤의 다급하고도 찌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안 된다! 한명은행 본점 로비에 기자들이 수십 명 깔려 있어서 행장도 락을 풀지 못하고 있어! 지금 금융감독원 감사팀까지 들이닥쳤다! 일단 시간을 최대한 끌어봐!
“시간을 끈다니요! 마감 5분 전입니다! 보증서 없이는 입찰 대행서 제출 자체가 안 됩니다!”
KH 건설 임원의 절규에 가까운 고함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시간은 흘러만 갔다.
오전 9시 58분.
경쟁사인 SG 건설과 KH 건설의 라이벌 업체들이 차례로 입찰서류 가방을 투찰함에 넣는 모습을 바라보며, KH 건설 직원들은 절망적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오전 10시 정각.
삐이이-.
날카로운 전자음과 함께 법원 집행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용산 지구 재개발 사업의 입찰을 마감합니다. 지금부터 투찰함 봉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안 돼…….”
KH 건설 임원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만수 회장이 합법적인 건설 대기업으로 우뚝 서기 위해 지난 3년간 온갖 로비와 불법 자금을 쏟아부었던 수천억 원 규모의 야심작이, 단 1,000억 원의 보증금을 내지 못해 허망하게 입찰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금성그룹 회장 집무실.
통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화려한 서울 시내를 응시하고 있던 오만수의 귀에, 비서실의 다급한 보고가 전해졌다.
“회장님…… KH 건설 입찰 실패했습니다. 보증서 미제출로 입찰 자격이 박탈되었습니다.”
보고를 들은 오만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거대한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거대한 분노에 오히려 이성이 마비된 듯했다.
천천히 몸을 돌린 오만수의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했고, 두 눈은 붉은 핏발로 가득 차 있었다.
“……김 실장.”
“예, 회장님.”
김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법이고 나발이고 없다.”
오만수의 목소리는 소름 돋도록 차분했다.
“강태형 그 새끼가 내 평생의 꿈을 짓밟았다. 내가 무너지면 너희도 끝이야. 빅토르 최를 불러라.”
오만수가 책상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콰광 하는 소리와 함께 대리석 책상 위에 미세한 금이 갔다.
“러시아 사냥개한테 말해. 오늘 밤 안으로 강태형의 목을 내 앞에 가져오라고. 놈이 숨어 있는 은신처를 찾아내서 전부 불태워버려!”
“알겠습니다. 빅토르 최가 이미 해킹 전파의 발신지를 추적하여 강북의 한 공업지대로 이동 중입니다. 놈들의 둥지는 오늘 밤 안으로 가루가 될 겁니다.”
김도윤이 차갑게 대답했다.
오만수의 무자비한 사냥 지시와 함께, 사신 빅토르 최의 피 묻은 칼날이 마침내 철혈단의 비밀 안전가옥을 향해 매섭게 좁혀들기 시작했다. 피비린내 나는 폭풍우가 강북의 어두운 하늘 위로 불길하게 몰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