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32화: 목을 죄는 덫
금성그룹 본사 60층 회장 집무실.
평소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던 오만수 회장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그의 손에 쥔 고급 크리스탈 양주잔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뭐라고? 계좌가 묶여?”
오만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넓은 방안을 울렸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듯 서 있는 김도윤 비서실장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예, 회장님. 한명은행 여신담당 오정필 이사가 실종된 직후, 오 이사의 전결 권한으로 우리 KH 건설의 용산 재개발 입찰 보증금 1,000억 원 계좌가 ‘금융 사고 의심 계좌’로 일시 동결 처리되었습니다. 현재 은행 전산망의 보안 락이 걸려 출금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
오만수가 양주잔을 대리석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하는 파편음과 함께 술이 바닥에 핏빛처럼 튀었다.
“당장 한명은행장한테 전화해! 내일 아침 10시까지 입찰 보증서가 법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가 지난 3년간 쏟아부은 수천억 원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락을 풀어!”
“이미 행장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은행 전산실 보안 락은 금융감독원의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어 오정필 이사의 실물 OTP 코드와 서명 승인 없이 강제로 풀 경우 즉시 검찰 특별수사부로 경보가 전송된다고 합니다.”
김도윤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오만수는 거칠게 호흡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난 3년간 최진상을 사냥개 삼아 숱한 사람의 피를 빨며 모아둔 돈이었다. 그것이 한순간에 묶여 버린 것이었다.
“강태형…… 그 개새끼가 내 목줄을 쥐고 흔드는구나.”
오만수의 눈빛에 극에 달한 살기가 끓어올랐다.
“김 실장, 행장에게 압박을 더 넣어. 그리고 행장의 약점이 든 비공식 파일들을 전부 전산실장에게 보내라. 내일 오전 9시까지 무조건 락을 풀라고 협박해!”
“알겠습니다. 바로 이행하겠습니다.”
김도윤이 서둘러 집무실을 빠져나가 한명은행 본점을 향해 차를 달렸다. 그의 곁에는 차가운 그림자처럼 빅토르 최가 동행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종로의 한 한적한 카페 앞 차 안.
임창수와 박마동은 한명은행 본점 빌딩 정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비는 그쳤으나 서울의 밤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창수 형, 김도윤의 차가 본점 주차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빅토르 최 그놈도 같이 내렸고요.”
뒷좌석에서 노트북을 보던 정훈이 보고했다.
“역시 락을 풀려고 행장과 전산실장을 압박하러 온 거겠지.”
창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그때, 연소희의 목소리가 무선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형님, 오만수가 행장과 전산실장에게 가한 협박 전화 통화 내역과 3년 전 오만수가 한명은행 간부들에게 전달한 뇌물 세탁 리스트의 1차 파일을 언론사와 금융감독원 내부 고발 게시판에 익명으로 배포했어요. 이미 메이저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들이 한명은행 본점 로비로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태형은 비밀 가옥에서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좋다. 오만수가 권력으로 은행을 압박하려 해도, 카메라 불빛이 비치는 상황에선 한명은행장도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다. 락을 강제로 푸는 순간, 본인도 공범이 되어 구속될 테니까.”
태형의 예측은 정확했다.
한명은행 본점 로비에는 이미 수십 명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이었고, 전산실장과 행장은 언론의 눈을 피해 김도윤과의 면담을 피하고 있었다.
오만수가 쌓아 올린 견고한 돈줄의 성벽이, 태형이 던진 정보의 폭탄 아래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용산 지구 재개발 입찰 마감 시간인 내일 오전 10시까지 남은 시간은 단 10시간. 오만수의 숨통은 실시간으로 조여들고 있었다. 복수의 첫 번째 체크메이트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