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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맹약29화

철혈의 맹약

철혈의 맹약

29화: 백운각의 함정

종로구 평창동 깊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백운각’은 높다란 돌담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고급 한옥 요정이었다. 정재계의 거물들만이 출입하는 이곳은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삼엄한 경비와 감시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밤 10시, 굵은 빗줄기가 기와지붕을 때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가운데, 백운각의 가장 깊숙한 안채 사랑방.

금성그룹 비서실장 김도윤과 한명은행 여신담당 이사 오정필이 정갈한 한상차림을 앞에 두고 잔을 나누고 있었다.

“오 이사님, 이번 최진상 실장의 일은 개인의 탈세 혐의로 말끔히 정리되었습니다. 한명은행 차명 계좌의 보안등급을 한 단계 더 올려주셔야겠습니다.”

김도윤이 차분하게 말하자, 배가 불룩 나온 오정필 이사가 기름진 얼굴로 허허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김 실장님. 우리 한명은행이 금성그룹과 맺은 맹약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미 세탁된 자금은 홍콩의 유령 회사를 거쳐 안전하게 오 회장님의 개인 신탁 계좌로 입금되었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실물 장부와 OTP 카드 보안 키를 넘겨드리죠.”

그들이 안심하고 잔을 들이키려던 찰나였다.

쿠콰쾅-!

백운각의 외곽 돌담 너머에서 정체 모를 굉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정원의 경보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경비원들의 당황한 고함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습격이다! 후문 쪽이다!”

사랑방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가죽 코트를 입은 빅토르 최가 들어섰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김 실장, 여기서 꼼짝 말고 대기해라. 바깥의 쥐새끼들을 처리하고 오겠다.”

빅토르 최는 권총을 치켜들며 바람처럼 방을 나섰다.

김도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후문 쪽에 연막탄과 폭음을 터뜨린 박마동과 임창수의 미끼 작전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빅토르 최는 부하 경비원들을 거느리고 후문 방향의 소나무 숲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 시각, 백운각의 정문 옆 담장 그늘.

한정훈이 소형 전파 방해 장치를 작동시키자, 백운각 내부의 모든 감시 카메라 화면이 일제히 지지직거리며 정지 화면으로 바뀌었다.

“형님, 길을 열었습니다.”

정훈이 신호를 보내자, 어둠 속에서 강태형이 절뚝거리는 다리로 지팡이를 짚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정비된 한옥 복도를 따라 신속하게 안채로 향했다. 문을 지키고 있던 김도윤의 직속 경호원 두 명이 다가오려 했으나, 정훈이 기민하게 달려들어 전기충격기로 첫 번째 놈의 목덜미를 지졌고, 태형은 들고 있던 지팡이 끝으로 두 번째 놈의 명치를 찔러 단숨에 숨통을 막아버렸다.

두 명의 경호원이 비명 한 자락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태형은 쓰러진 적들을 내버려 둔 채 사랑방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문을 밀어젖혔다.

스르륵-.

방 안에서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던 김도윤과 오정필의 시선이 일제히 문가로 향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사내는, 3년 전 최진상의 배신으로 파멸했던 금성파의 실질적 2인자이자, 지금은 지옥에서 돌아온 복수귀인 강태형이었다.

“……강태형.”

김도윤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그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짙은 경계와 당혹감이 스쳤다.

옆에 앉아 있던 한명은행 오정필 이사는 숟가락을 떨어뜨리며 뚱뚱한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너, 너…… 강태형? 네가 어떻게 이곳에…… 빅토르! 빅토르는 어디 갔나!”

태형은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와 그들의 맞은편 상석에 앉았다. 정훈은 문을 굳게 닫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두 사람을 겨누었다.

태형은 눈앞의 잘 차려진 음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 이사님. 러시아 킬러를 찾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제 부하들과 밤공기를 마시며 숲속을 헤매고 있거든요.”

태형의 깊은 눈동자가 김도윤의 눈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도윤아. 오만수의 금고 열쇠를 넘겨라. 한명은행 차명 계좌의 장부와 보안 키, 지금 여기서 받아 가겠다.”

방 안의 공기가 숨 막힐 듯 팽팽하게 긴장했다. 오만수의 그림자 김도윤과, 그 그림자를 지워버리려는 강태형의 본격적인 두뇌 싸움이자 외통수가 마침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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