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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맹약27화

철혈의 맹약

철혈의 맹약

27화: 러시아에서 온 사신

인천항 3부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거대한 화물선 한 대가 서서히 정박하고 있었다. 비릿한 짠내와 부두의 기름 냄새가 빗물과 뒤섞여 공중에 무겁게 내려앉은 밤이었다.

부두 한구석, 전조등을 끈 채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세단에서 금성그룹 비서실장 김도윤이 내렸다. 그는 우산을 쓴 채 화물선에서 내리는 하선 통로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화물선 콘테이너 사이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낡은 검은색 가죽 코트 깃을 바짝 세운 채, 한 손에는 낡은 더플백을 들고 있었다. 모자 아래로 드러난 얼굴은 칼로 깎은 듯 날카로웠고, 두 눈동자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파충류의 그것처럼 서늘하고 탁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만수의 부름을 받고 입국한 고려인 3세 킬러, ‘사신’ 빅토르 최였다.

빅토르 최가 김도윤의 앞에 멈춰 섰다.

“오만수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시네. 강태형의 흔적을 찾는 게 첫 번째 임무다.”

김도윤이 나직하게 말하자, 빅토르 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덜미에는 기괴한 흉터와 함께 러시아 감옥의 무법자들을 상징하는 푸른색 문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편, 부두 뒤편의 폐기 컨테이너 그림자 속.

빗물 속에서 숨을 죽인 채 망원렌즈로 이들의 만남을 촬영하고 있는 임창수와 한정훈이 있었다. 태형의 지시에 따라 김도윤의 동선을 감시하던 중, 빅토르 최의 입국 현장을 포착한 것이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나직하게 울렸다.

“창수 형, 저놈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훈이 망원렌즈를 통해 빅토르 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걷는 자세나 무게 중심이 완벽하게 잡혀 있어요. 몸 전체가 흉기나 다름없습니다.”

“겁먹지 마라, 정훈아. 우리도 산전수전 다 겪은 놈들이다.”

창수가 나이프 손잡이를 꽉 움켜쥐며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이마에서도 미세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빅토르 최가 뿜어내는 살기는 부두의 차가운 바닷바람보다도 매서웠다.

그때였다.

갑자기 빅토르 최의 고개가 창수와 정훈이 숨어 있는 컨테이너 방향으로 획 돌아갔다. 그의 탁한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고 정확히 그들의 위치를 포착했다.

“앗, 들켰습니다! 움직이십시오!”

정훈이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카메라를 챙겼다.

동시에 빅토르 최는 손에 들고 있던 더플백을 던져버리고 품속에서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뽑아 들었다.

픽, 픽, 픽-!

소름 끼치는 가벼운 총성과 함께 컨테이너 철판에 구멍이 뚫리며 불꽃이 튀었다. 창수와 정훈은 바닥을 구르며 사격을 피했다.

빅토르 최는 빗속을 미끄러지듯 엄청난 속도로 좁혀왔다. 그의 사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창수와 정훈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정훈아! 차로 뛰어!”

창수가 고함을 지르며 허리춤에서 단검 세 자루를 동시에 투척했다. 은빛 칼날이 빗방울을 가르며 빅토르 최의 목과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빅토르 최는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고개만을 꺾어 단검 두 자루를 피하고, 남은 한 자루는 들고 있던 권총 손잡이로 쳐내 버렸다. 깡 하는 맑은 금속성과 함께 단검이 빗물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빅토르 최의 차가운 손이 창수의 멱살을 낚아채며 반대편 손에 쥔 나이프로 창수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창수는 황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으나, 빅토르 최의 칼날이 창수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스윽-!

붉은 핏방울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창수는 고통을 참고 뇌까리며 빅토르 최의 명치를 팔꿈치로 가격하려 했으나, 빅토르 최는 가볍게 이를 받아치고 창수의 어깨를 걷어차 바닥으로 메쳐버렸다.

“창수 형!”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던 은색 스타렉스가 굉음을 내며 빅토르 최를 향해 돌진했다. 정훈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스타렉스의 후미를 돌려 빅토르 최의 진입을 막아섰다.

빅토르 최는 돌진하는 차를 피하기 위해 뒤로 가볍게 점프하며 착지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정훈이 조수석 문을 열어젖혔다.

“타십시오!”

바닥에서 구른 창수가 황급히 스타렉스 조수석으로 뛰어들었다. 정훈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차량을 급발진시켰다.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스타렉스가 부두를 탈출했다.

빅토르 최는 멀어지는 스타렉스를 향해 다시 한번 차분하게 권총을 겨누었으나, 김도윤이 그를 만류했다.

“그만두게. 쫓아갈 필요 없다. 우리의 존재를 알렸으니 놈들도 움직이겠지.”

빅토르 최는 권총을 거두고, 자신의 가죽 장갑에 묻은 창수의 핏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소름 끼치는 엷은 실소가 그려졌다.

부두를 벗어나는 스타렉스 안.

뺨에서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움켜쥔 창수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길…… 진짜 괴물이 왔군.”

창수가 이를 갈았다. 오만수가 보낸 러시아의 사신 빅토르 최. 그 존재는 철혈단이 마주한 가장 위협적이고 치명적인 죽음의 그림자였다. 복수의 길 위에, 피비린내 나는 폭풍우가 다시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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