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25화: 지옥의 문을 두드리다
강남구 역삼동의 한 지하 유흥업소.
겉보기에는 화려한 회원제 바였으나, 무거운 방화벽을 두 개나 통과해야만 들어설 수 있는 지하 2층에는 금성그룹의 핵심 현금줄이자 정재계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비밀 사설 카지노가 숨겨져 있었다. 하루에만 수십 억의 판돈이 오가는, 오만수 회장의 비공식 화수분 중 하나였다.
밤 11시, 카지노 내부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칩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도박꾼들의 욕망 가득한 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이, 마 사장. 오늘 물이 아주 좋구만.”
카지노를 총괄하는 금성파의 중견 간부, 마칠성이 시가를 물고 거만하게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최진상이 체포되어 조직 전체에 비상이 걸렸지만, 그는 자신들의 지하 왕국만큼은 안전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때, 카지노의 견고한 강철 방화벽 너머로 둔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쿵-. 쿵-.
마칠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부하에게 눈짓했다.
“야, 나가서 무슨 일인지 보고 와. 경비 새끼들 졸고 있나?”
부하 두 명이 방화벽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선 순간이었다.
파각-!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부하들이 복도 안쪽으로 쓰러졌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은 임창수가 손가락 사이로 나이프를 돌리며 걸어 들어왔다. 그 뒤로 거대한 바위 같은 박마동이 묵직한 쇠망치를 어깨에 얹은 채 입장했고, 차량 탈출조인 한정훈은 카지노의 메인 전원 통제 장치를 태블릿으로 차단해 버렸다.
탁-!
순식간에 카지노 내부의 화려한 샹들리에와 테이블 조명이 일제히 꺼지며 암흑이 찾아왔다.
“뭐, 뭐야! 정전이야?”
“비상 발전기 돌려! 빨리!”
도박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비상용 붉은색 유도등만이 희미하게 켜졌다. 그 핏빛 조명 아래로, 복도 끝에서 지팡이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때리는 차가운 금속성 마찰음.
붉은 조명 속에서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는 사내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강태형이었다. 그의 깊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강…… 강태형?”
마칠성이 시가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놈이 어떻게 여기를……! 얘들아! 당장 쏴 죽여!”
마칠성의 비명에 그의 직속 행동대원 열댓 명이 품에서 삼단봉과 사시미칼을 꺼내 들고 태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동아, 정훈아. 판 쓸어라.”
태형의 나직한 명령과 함께 철혈단의 야수들이 움직였다.
“흐읍-!”
마동이 포효하며 쇠망치를 휘둘렀다. 첫 번째 경호원의 가슴에 쇠망치가 박히며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놈이 대리석 기둥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기둥이 쩍 갈라지며 경호원이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 마동은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세 놈의 멱살을 한꺼번에 움켜쥐고 그대로 카지노 테이블 위로 메쳐버렸다. 테이블이 반으로 쪼개지며 칩과 돈다발이 공중으로흩날렸다.
동시에 창수와 정훈은 기민한 움직임으로 적들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창수의 나이프가 빗줄기처럼 허공을 가르며 경호원들의 무릎 힘줄과 손목을 정확하게 베어 넘겼고, 정훈은 개조한 테이저건과 삼단봉을 이용해 적들의 진형을 완벽하게 와해시켰다.
사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 신음이 빗소리처럼 카지노 안을 가득 채웠다. 단 3분 만에 마칠성이 자랑하던 정예 병력들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뒹굴었다.
마칠성은 겁에 질려 권총을 꺼내려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스윽-.
하지만 태형의 지팡이 끝이 마칠성의 턱밑을 매섭게 겨누었다. 지팡이 끝에서 날카로운 강철 침이 튀어나와 마칠성의 목덜미 가죽을 얇게 찔러 핏방울이 맺히게 했다.
“총에 손대는 순간, 네 목줄기가 날아갈 거다, 칠성아.”
태형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마칠성은 스르륵 손을 내리며 두 손을 들었다.
“태, 태형아…… 아니, 태형 형님. 살려주십시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태형은 지팡이 끝을 조금 더 밀어 넣었다. 마칠성의 목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려 와이셔츠 깃을 적셨다.
“옛정? 네놈이 3년 전 내 부하들을 배신하고 오만수 밑으로 기어들어 가 그들의 손가락을 자를 때, 옛정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었나?”
태형의 눈 속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복수의 불꽃이 마침내 푸르게 타올랐다.
“오늘부로 역삼동 카지노는 철혈단이 접수한다.”
태형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마동아, 금고 털어라. 그리고 마칠성이 요놈은 정훈이 차에 실어라. 오만수에게 보낼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형님.”
마동이 금고를 부수고 자루 가득 현금다발과 장부를 쓸어 담는 동안, 창수와 정훈은 기절한 마칠성을 끌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수라장이 된 비밀 카지노의 붉은 유도등 불빛 아래, 태형은 바닥에 흩어진 금성그룹의 표식을 지팡이 끝으로 짓밟아 뭉개버렸다. 거대 기업 오만수의 왕국에, 마침내 철혈단이라는 거대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복수의 핏빛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