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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맹약23화

철혈의 맹약

철혈의 맹약

23화: 독사의 목을 조르다

양재동에 위치한 금성 캐피탈 사옥 빌딩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5층짜리 유리 빌딩이었으나, 실상은 삼엄한 감시 카메라와 비밀 통제 장치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폭우를 뚫고 달린 은색 스타렉스가 빌딩 뒷골목의 한적한 그늘에 멈춰 섰다. 차 안에서 연소희가 태블릿 PC를 두드리며 빌딩의 도면을 띄웠다.

“정문과 주차장 진입로는 잠겼어요. 하지만 배태식이 불어준 비상 통로 비밀번호라면 조용히 들어갈 수 있어요. 강희찬은 지금 5층 대표 집무실에서 마지막 장부를 챙기고 있어요. 시간이 없어요.”

태형은 말없이 지팡이 손잡이를 쓸어내렸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 위로 창밖 가로등의 희미한 주황빛이 스쳐 지나갔다.

“창수야, 조용히 길을 열어라.”

“맡겨만 주십시오, 형님.”

창수가 차가운 이빨을 드러내며 미소를 지은 뒤, 슬며시 차 문을 열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3분 뒤, 빌딩의 비상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창수가 손짓을 했다. 복도 구석에는 이미 무력화되어 의식을 잃은 경비원 두 명이 벽에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 태형은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지팡이로 단단히 지탱하며 천천히 로비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동이 그의 든든한 그림자처럼 그 뒤를 지켰다.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작동하여 5층에 도착했다.

띵-.

문이 열리자마자 넓은 회의실과 복도가 나타났다. 복도 끝, ‘대표이사 강희찬’이라고 새겨진 중후한 참나무 문 틈새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쪽에서는 팩스기와 문서 세쇄기가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태형은 눈짓을 보냈다. 마동이 말없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거대한 통나무 같은 다리로 문손잡이 부위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쾅-!

잠금장치가 박살 나며 두꺼운 참나무 문이 맥없이 안쪽으로 튕겨 나갔다.

방 안에서 서류 가방에 서류 뭉치를 마구 쑤셔 넣고 있던 강희찬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의 곁을 지키던 덩치 큰 경호원 세 명이 즉시 품속으로 손을 뻗었다.

“어떤 새끼야!”

하지만 마동이 먼저 방 안으로 돌진했다. 마동은 가장 가까이 있던 경호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대로 책상 위로 꽂아버렸다. 유리 책상이 와장창 깨지며 경호원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굴렀다.

동시에 창수가 바람처럼 파고들어 두 번째 경호원의 팔목을 나이프로 베어내고, 그 기세를 몰아 세 번째 경호원의 명치에 묵직한 하이킥을 꽂아 넣었다. 단 몇 초 만에 강희찬의 최후 보루였던 경호원들이 바닥에 뒹굴며 신음했다.

비서실 안에는 비명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강희찬과, 문가에 서 있는 강태형만이 존재했다.

태형은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절뚝거리는 그의 걸음걸이는 느렸지만, 강희찬에게는 마치 저승사자의 발걸음처럼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다가왔다.

“강…… 강태형 형님…….”

강희찬의 목소리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뺨의 흉터가 파르르 경련했다.

“오랜만이다, 희찬아. 3년 동안 뱀처럼 교묘하게 잘도 숨어 다녔더구나.”

태형은 강희찬의 책상 맞은편 가죽 의자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지팡이를 무릎 사이에 세워 쥐고, 그 위에 두 손을 포갠 채 강희찬을 응시했다.

강희찬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손을 모았다.

“형님! 전 진짜 오 회장님과 최 실장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전 밑바닥에서 돈이나 굴리던 놈 아닙니까! 살려만 주시면 금성 캐피탈의 모든 차명 계좌와 비밀 장부를 형님께 넘기겠습니다!”

태형은 나직하게 비웃었다.

“배태식이 쥐고 있던 장부는 이미 우리 손에 있다. 네가 쥐고 있는 건 진짜 오만수의 개인 비자금 세탁용 차명 장부겠지.”

강희찬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태형이 그의 가장 깊은 비밀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것은…….”

“망설일 시간은 없다, 희찬아.”

태형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오만수를 배신하고 내 밑으로 들어와 사죄를 하든, 아니면 최진상처럼 으스러진 두 다리로 평생을 감옥에서 썩든. 선택은 네 몫이다.”

태형의 눈빛은 한 치의 거짓도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서늘했다. 강희찬은 깨달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시간을 끌면, 자신의 무릎뼈 역시 박살이 날 것이라는 것을.

강희찬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형님! 장부는 여기 금고 안에 있습니다! 오만수 회장이 매달 정재계 의원들과 검찰 간부들에게 뿌린 뇌물 송금 내역서와 차명 계좌 비밀번호도 전부 넘기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그는 허겁지겁 벽면에 액자를 치우고 금고를 열어 두꺼운 가죽 장부와 하드디스크를 꺼내 태형 앞에 올려놓았다.

태형은 만족스러운 듯 하드디스크를 챙겼다.

“희찬아. 넌 이제부터 내 사냥개다.”

태형이 일어서며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오만수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고해라. 조금이라도 딴마음을 먹는 순간, 네 뺨의 흉터가 목 밑까지 이어질 줄 알아라.”

“예!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강희찬이 머리를 조아렸다.

태형은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왔다. 양재동의 어두운 밤하늘 위로 비바람이 여전히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으나, 태형의 손에는 이제 오만수의 심장을 찌를 날카로운 칼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복수의 톱니바퀴가 더욱 빠르게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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