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2화: 법정의 기만과 나락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강태형이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얀 천장과 그 아래로 위태롭게 흔들리는 링거 병이었다. 온몸이 쇠사슬로 묶인 것처럼 무거웠다. 특히 오른쪽 다리는 감각이 마비된 듯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뼈를 깎아내는 듯한 둔탁한 통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신이 드나, 강태형 씨?”
낮고 건조한 목소리. 태형이 고개를 돌리자, 침대 옆에 서 있는 안경 쓴 남자가 보였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가슴에는 검사 배지가 빛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임도현 검사였다. 그리고 침대 주변에는 두 명의 형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태형의 손목과 침대 프레임을 연결하는 차가운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내…… 다리가…….”
태형이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임 검사는 서류철을 툭툭 치며 차가운 눈빛으로 태형을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무릎 관절과 대퇴골이 산산조각 났더군. 의사 말로는 평생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할 거라더군. 뭐,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지. 본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슬슬 자백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
“자백……? 내가 뭘 했다고.”
태형이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쇠사슬 같은 수갑과 무릎의 맹렬한 통증이 그를 다시 침대로 짓눌렀.
“태산파 두목 배창식 살해 혐의. 그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에 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상해. 증거는 차고 넘친다. 배창식의 시신에서 나온 흉기에서 자네 지문이 검출되었고, 결정적으로 자네의 의형제라는 최진상 실장의 진술이 있었지.”
태형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최진상.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진상이가…… 뭐라더냐?”
“강태형 씨가 배창식과 이권 다툼을 벌이다가 홧김에 칼을 휘둘렀고, 자신은 그것을 말리려다 겨우 도망쳐 나왔다고 하더군. 아주 일관되고 상세한 진술이야. 현장에서 도망치던 부하 조직원들도 자네가 배 회장을 찔렀다고 한목소리로 증언하고 있어.”
하하…… 하하하.
태형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 배신. 완벽한 덫이었다. 최진상과 오만수 회장은 처음부터 태형을 버릴 카드로 낙인찍고 있었던 것이다. 밤의 세계에서 그토록 신뢰했던 동생들이, 직접 키워낸 녀석들이 모두 진상의 발아래 엎드려 거짓을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찌르지 않았다. 최진상 그놈이…… 배창식을 죽이고 나한테 누명을 씌운 거야. 내 다리도 그놈들이……!”
태형이 수갑을 흔들며 거칠게 울부짖었지만, 임 검사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그저 귀찮은 잡범을 보는 듯한 한심한 눈빛으로 태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강태형 씨. 현실을 봐. 조폭들의 전형적인 핑계는 법정에서 안 통해. 몸조리 잘하고, 재판 준비나 해라. 어차피 네 인생은 여기서 끝났으니까.”
임 검사가 뒤를 돌아 병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태형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고립되었다.
한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1형사부 법정.
법정 안은 방청객과 기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 조폭 금성파의 2인자가 벌인 살인 사건은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였다.
강태형은 죄수복을 입은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한쪽 다리를 쇠 지지대로 고정한 채, 목발에 의지해 겨우 걸어 들어온 그의 모습은 과거 밤거리를 호령하던 포식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상처 입고 다리를 저는 비참한 들개에 불과했다.
“피고인 강태형은 피해자 배창식과 금성파의 이권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던 중, 미리 준비한 흉기로 피해자의 흉부를 수차례 찔러 살해하였으며…….”
검사의 논고가 이어지는 동안, 태형의 시선은 증인석으로 향했다.
그곳에 최진상이 서 있었다. 검은색 맞춤 정장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진상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과 고뇌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론과 판사 앞에서는 아주 훌륭한 시민이자, 친구의 타락을 안타까워하는 충직한 의형제의 연기였다.
“증인 최진상.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판사의 말에 진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태형이는…… 제 오랜 친구이자 형제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직의 합법화 사업과 정계 진출 문제로 오 회장님과 의견 대립이 심했습니다. 태형이는 과거의 폭력적인 방식만을 고집했고, 결국 태산파의 배창식 회장님과의 독대 자리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저는 그것을 말리려 했으나, 태형이의 광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진상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흐느꼈다. 그 모습에 법정 안의 방청객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위선자. 더러운 사기꾼.
태형은 주먹을 피가 나도록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흘러내렸지만, 육체의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증오와 분노가 온몸의 신경을 태워버릴 것 같았다.
“최진상! 네놈이 배창식을 죽였잖아! 오만수 개새끼랑 같이 나한테 누명을 씌운 거잖아!”
태형이 벌떡 일어나 증인석을 향해 소리쳤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법대를 넘어가려 하자, 경위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그를 바닥에 짓눌렀다.
“피고인, 정숙하십시오! 계속해서 법정을 모독하면 퇴정 조치하겠습니다!”
판사의 호통 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바닥에 엎드린 채 태형은 고개를 들어 진상을 바라보았다.
흐느끼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던 최진상이 아주 잠깐, 머리카락 틈새로 눈을 들어 태형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비열하고 잔인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잘 가라, 태형아’라고 말하는 듯한 조롱 섞인 눈빛이었다.
태형의 국선 변호사는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켰다. 이미 금성그룹의 거액의 돈에 매수된 뒤였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피고인 강태형은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고, 범행 잔혹성이 극에 달하며, 수사 기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인 강태형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쿵. 쿵. 쿵.
법봉이 세 번 울렸다. 징역 15년.
태형은 경위들의 손에 끌려 법정을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최진상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오만수 회장의 비서와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태형은 차가운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그는 스스로의 심장에 칼을 꽂듯 맹세했다.
‘15년이든, 150년이든 상관없다. 살아서 나간다. 살아서 너희들의 목구멍에 내가 흘린 피를 그대로 들이부어 주마.’
호송차는 차갑고 어두운 지옥, 청송 제2교도소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