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혈의 맹약

19화: 덫과 사냥
하늘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장대비가 다시 인천 만석동 앞바다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거센 바닷바람이 낡은 함석판 철문을 요란하게 흔드는 폐선박 정비창 외곽. 빗물과 바닷물에 젖어 눅눅한 진흙바닥을 짓밟는 은밀한 군홧발 소리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 흘러나왔다. 얼굴과 목줄기 전체에 핏물이 허옇게 배어 나오는 흰색 화상 붕대를 미라처럼 칭칭 감은 흉측한 몰골의 사내가 선두에 서 있었다. 오피스텔 폭발의 화염 지옥 속에서 기적적으로 기어 나와, 오직 강태형의 숨통을 끊겠다는 증오와 광기 하나로 고통을 참아내며 헐떡이는 구자명이었다.
구자명은 한쪽 눈꺼풀만 간신히 드러낸 안경 너머로 GPS 수신기를 노려보았다. 연소희가 사용하던 해킹 서버의 미세한 신호 잔향을 물귀신처럼 역추적해 찾아낸 좌표의 종착지가 바로 이 버려진 선박 정비창을 가리키고 있었다. 온몸의 화상 흉터가 비바람을 맞을 때마다 칼로 찌르듯 쑤셔왔지만, 최진상이 내린 살인 명령과 실패 시 찾아올 오만수 회장의 죽음의 그림자가 그의 척추를 매섭게 채찍질하고 있었다.
구자명의 뒤로는 최진상이 비밀리에 수하에 둔 최정예 무장 킬러 30여 명이 검은 비옷을 눌러쓴 채 야구배트, 쇠파이프, 그리고 번뜩이는 날 선 사시미 칼을 손에 꽉 쥔 채 어둠 속에서 조용히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그들의 살기 띤 눈빛에는 밤의 이리들이 도망자들을 사냥해 찢어버리겠다는 잔인한 탐욕만이 서려 있었다.
“포위해라.”
구자명이 붕대 틈새로 갈라진 쉰 목소리로 나직하게 명령했다.
사내들이 정비창의 출입구와 환기구, 그리고 후문 주변을 뱀처럼 둥글게 에워쌌다. 구자명은 칼자루를 고쳐 쥐고, 잠금장치가 뜯긴 셔터 문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쿵-!
“들어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킬러들이 함성을 지르며 어두운 정비창 내부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갔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카운터와 철골 더미 사이를 이 잡듯 뒤졌다.
그러나 정비창 내부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사내들이 정비창 한가운데의 낡은 나무 탁자 부근까지 진입했을 때였다.
지 지직-.
정비창 천장에 거대하게 매달려 있던 수십 개의 산업용 고광도 서치라이트가 일제히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켜졌다.
파아아앗-!
수십만 촉광의 강력한 백색 광선이 사방에서 폭발하듯 뿜어져 나와 어둠에 적응해 있던 킬러들의 시야를 정면으로 덮쳤다.
“악! 내 눈!”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갑작스러운 눈부심에 킬러들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플래시 불빛은 사방으로 흔들렸다. 강태형은 놈들이 자신들의 해킹 신호를 쫓아 역추적해 올 것을 이미 예상하고, 이 정비창을 거대한 사냥용 덫으로 설계해 놓았던 것이었다.
“쳐라!”
어둠 속에서 강태형의 서릿발 같은 단호한 명령이 떨어졌다.
“와아아아악! 죽여라!”
정비창 벽면의 거대한 철골 기둥 뒤와 녹슨 선박 부품 더미 속에서 매복해 대기하고 있던 철혈단 대원 20여 명이 굶주린 이리 떼처럼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덮쳐들었다. 시야가 마비되어 비명을 지르던 킬러들을 향해 단단한 쇠파이프와 무거운 손도끼, 그리고 날카로운 칼날들이 자비 없이 날아들었다.
퍼억-! 콰직! 끄우우학!
눈 먼 개싸움에 가까운 핏빛 난전이 지하실 내부를 삽시간에 피비린내와 절규로 가득 채웠다.
박마동은 거대한 멧돼지처럼 대열의 최선봉에서 날뛰며 공간을 파괴했다. 으스러져 변형된 오른손 손바닥에 가죽 끈으로 칭칭 동여맨 묵직한 쇠망치가 무서운 궤적을 그리며 웅웅 소리를 낼 때마다, 무장 킬러들의 머리와 어깨뼈가 처참하게 박살 나며 분홍빛 피안개가 허공으로 질퍽하게 퍼졌다. 마동의 괴물 같은 무식한 완력에 가슴을 정면으로 정통당한 사내들은 뼈가 흉하게 구겨진 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진흙바닥으로 쳐박혀 기절했다.
임창수 역시 낡은 선박 엔진 부품들과 선체 프레임 사이를 서커스 묘기하듯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도살 극을 벌였다. 그의 왼손에 쥔 길쭉한 쇠사슬이 허공을 뱀처럼 날아가 가드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감아쥐었고, 사슬을 강하게 끌어당겨 정비창의 H빔 기둥 모서리에 사내들의 두개골을 메쳐 갈아버렸다. 동시에 오른손에 쥔 예리한 전투용 단검은 가드들의 방어 틈새를 정교하게 파고들어 목동맥과 쇄골 사이를 자비 없이 파헤쳤다. 창수의 신형이 번뜩일 때마다 빗물 가득한 바닥으로 붉은 선혈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정비창 내부의 빗물 고인 바닥은 순식간에 킬러들이 흘린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갔다.
“강태형! 이 개새끼!”
광기 어린 절규와 함께, 붕대를 감은 흉측한 얼굴의 구자명이 사시미 칼 두 자루를 역수로 움켜쥔 채 빗물이 고인 바닥을 박차고 태형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해왔다. 붕대 사이로 번뜩이는 뱀 같은 외눈은 복수심과 막다른 길에 다다른 도망자의 극한 공포로 미쳐 있었다.
“네 놈 대가리를 잘라서 회장님께 바치고 내가 살겠다!”
구자명이 빗줄기를 가르며 차가운 칼날을 태형의 목덜미를 향해 대각선으로 거칠게 내리쳤다.
태형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의 관절이 망가져 무너지기 쉬운 상태였기에, 기동에 의지한 회피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대신 태형은 정비창 천장의 크레인 빔에서 바닥으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던 굵은 철제 지탱 와이어를 왼손으로 단단히 낚아챘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은 왼다리를 축으로 몸의 무게중심을 와이어의 흔들림에 완전히 맡기며 공중으로 번개처럼 비틀어 솟구쳤다.
스으윽-!
구자명이 모든 체중을 실어 휘두른 매서운 사시미 칼날이 태형의 검은 가죽 코트 밑자락만 허무하게 찢어발기며 빗속의 공기를 갈랐다. 몸을 공중에서 비틀어 그네처럼 회전하며 착지하는 짧은 찰나, 태형은 양손으로 강철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회전 운동이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원심력과 자신의 체중 전체를 실은 지팡이의 둔탁한 상단부 헤드가 구자명의 왼쪽 쇄골 뼈를 정면으로 내리찍었다.
콰직-!
“끄아아아악!”
쇄골이 통째로 으스러져 함몰되며 구자명이 단발비명을 지르고 진흙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발악하려는 순간, 태형은 흔들림 없이 착지하여 지팡이 끝으로 사시미 칼을 멀리 쳐냈다. 그리고 엎드린 구자명의 등 위로 가차 없이 파고들어, 그의 오른손 손목을 꺾어 비틀어 움켜쥐었다.
우드득-! 콰직!
“아아아악! 내 손목! 내 손목이이익!”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여 분쇄되며 구자명의 찢어지는 비명이 정비창을 뒤덮었다. 3년 전 최진상이 골프채로 자신을 짓밟았을 때 뼈마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느꼈던 그 지옥 같은 절망과 고통을, 태형은 자신의 손으로 완벽하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정비창 내부의 난전은 이미 종막을 고하고 있었다. 철혈단 대원들의 파괴적인 기습과 마동, 창수의 활약에 최진상의 정예 킬러 30여 명은 대부분 바닥에 피떡이 되어 쓰러졌거나 신음하고 있었다. 정비창 안은 빗물과 피비린내가 섞여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태형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바닥에서 고통으로 신음하는 구자명의 목덜미를 지팡이 끝으로 지긋이 내리눌렀다. 강철 지팡이가 목울대를 죄어오자 구자명의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의 숨이 턱 막혔다.
“컥…… 커헉…….”
“최진상 지금 어디 있나.”
태형의 목소리는 너무나 낮고 차가워서 빗소리조차 지워버릴 것 같았다.
“말해라.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아.”
지팡이에 체중이 실리자 구자명의 목뼈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죽음의 공포가 붕대 틈새로 보이는 구자명의 단 하나의 눈동자를 잠식했다. 최진상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거대한 공포 앞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자, 영종도…… 영종도 남단이다……!”
구자명이 핏물을 퉤 뱉으며 쌕쌕거리는 숨통으로 겨우 불었다.
“최진상 실장이…… 오늘 밤 새벽 3시…… 영종도 남단의 비밀 해안 선착장에서 은밀히 들어오는 밀항선을 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정재계 백이 다 끊겨서…… 검찰 수사망이 좁혀오니 해외로 튀려는 거다……! 진, 진짜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살려줘…….”
태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한 정보 고맙다, 자명아.”
그리고 태형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내 오피스텔을 불태우고 내 부하들을 고문한 죄는 치러야지.”
태형은 지팡이를 높이 쳐들어 구자명의 관자놀이를 향해 가차 없이 내리찍었다.
빡-!
구자명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흰자위를 보이며 바닥으로 고꾸라져 완전히 혼절했다. 다시는 밤의 거리에서 주먹을 쓰지 못할 처참한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이었다.
태형은 코트 자락에 묻은 피를 거칠게 털어내며 지팡이를 짚고 바로 섰다.
주변에는 철혈단 대원들이 빗물 섞인 피바다 속에서 거친 안광을 빛내며 대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이미 전쟁의 광기와 흥분이 가득했다.
“창수야, 마동아. 그리고 철혈단 대원들 모두 들어라.”
태형이 피 묻은 지팡이를 굳게 쥐며 지옥의 목소리로 지시했다.
“예, 형님!”
정비창 안에 가득 도열한 사내들이 주먹을 쥐고 일제히 외쳤다. 그들의 가슴속에 깃든 야수의 맥박이 고동치고 있었다.
“영종도로 간다. 배신자가 바다 너머로 비겁하게 도망쳐 숨기 전에, 그 더러운 목을 잘라 여기 괭이부리말 비린내 나는 바다에 던져 노 영감님의 영전에 바쳐라.”
정비창의 거대하고 녹슨 철제 문이 좌우로 거칠게 열리고, 검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세 대의 검은색 카니발 차량이 미끄러지듯 도로로 빠져나갔다. 빗방울을 튕겨내며 칠흑 같은 안개로 가득 찬 영종도 서해 대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차량들의 실루엣은, 마치 밤사냥을 시작하는 굶주린 이리 떼처럼 서늘하고도 비장했다.
3년 전에 맺었던 피의 맹약, 그리고 믿었던 동기에게 당한 처참한 배신의 지독한 악연이 이제 서해의 외로운 끝자락 영종도 해안가에서 마침내 최후의 잔혹한 결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