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파 약초꾼이 죽질 않음

3화: 오해의 시작
도윤은 산문을 지나 연무장까지 단숨에 달렸다.
아침 수련을 막 시작하려던 외문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도윤의 도포 자락에는 진흙이 튀어 있었고 숨은 짧게 끊어졌다. 늘 반듯하게 묶던 머리도 한쪽이 풀려 있었다.
"대사형은 어디 계십니까?"
목소리가 너무 급했다. 목검을 들고 있던 제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 사형이면 검각에 계시겠지. 무슨 일이냐?"
도윤은 가슴을 한 번 쓸어내렸다.
"백운휘 사제에게 흑풍채 철두가 도끼를 휘둘렀다. 그런데 도끼가 목에서 부러졌다."
잠깐 고요가 흘렀다.
곧 연무장 한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침부터 잠꼬대를 하느냐?"
"목이 쇠로 되었단 말이냐?"
"철두가 누구한테 도끼를 빼앗긴 거겠지."
도윤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 넣어 둔 천 조각을 풀었다. 안에서 검은 쇳조각이 나왔다.
반으로 깨진 도끼날이었다.
그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날의 너비는 손바닥보다 컸고 두께도 손가락 두 마디는 되었다. 쇠붙이에는 아직 마른 흙과 검붉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웃던 제자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저게 철두의 도끼라고?"
"내 눈으로 봤다. 심덕구 의원도 함께 있었다. 철두와 부하 둘은 백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운휘가 뭘 했는데?"
도윤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배낭을 붙잡고 서 있었다."
그 말이 더 이상했다.
도윤은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아직도 떠올랐다. 도끼가 목덜미에 닿던 순간의 쇳소리. 하늘로 튀어 오르던 검은 파편. 그리고 자기 목이 아니라 찢어진 옷깃을 걱정하던 백운휘의 얼굴.
"그는 도끼가 무른 쇠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게 말이 돼?"
"나도 안다. 안 되지."
검각 문이 열렸다.
백향란이 계단을 내려왔다. 수련복 위에 걸친 겉옷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제자들은 곧장 길을 비켰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도끼날을 집어 들었다. 손목을 돌려 빛에 비춰 보고 깨진 면을 엄지로 쓸었다.
흑풍채 철두의 도끼라면 이름만 험한 산적의 장난감이 아니었다. 백향란도 몇 해 전 하산길에서 그 도끼를 본 적이 있었다. 두꺼운 참나무를 한 번에 쪼개던 물건이었다.
"누가 봤지?"
"심덕구 의원과 저입니다."
"철두가 직접 휘둘렀고?"
"예. 목을 노렸습니다."
연무장의 공기가 가라앉았다.
백향란은 파단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강한 내력이 부딪혔다면 쇠 안쪽에 그을음이나 뒤틀린 결이 남는다. 검기가 스쳤다면 날 끝부터 깨져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 도끼는 단단한 벽에 정면으로 박힌 듯 가운데가 갈라져 있었다.
무공의 흔적은 없었다.
그녀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운휘의 단전은 빈 항아리였다. 기초 심법을 열 번 돌려도 기운 한 줄기 붙잡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의 목에서 도끼가 부러졌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아무도 이 일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백향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연무장 끝까지 또렷했다.
"화산의 제자가 산적을 물리친 일이다. 괜한 말이 붙으면 흑풍채가든 다른 놈들이든 운휘부터 찾을 거다."
제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향란은 도윤을 향해 손짓했다.
"약방으로 가라. 운휘가 돌아오면 붙잡아 둬. 내가 직접 보겠다."
"예."
도윤은 대답하고도 망설였다.
"사형. 백운휘 사제가 정말 무공을 못 쓰는 게 맞습니까?"
백향란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러 간다."
약방 앞마당에서는 석 노인이 말린 황련을 뒤집고 있었다. 햇살이 약재 위에 얇게 내려앉았다.
그때 산문 쪽에서 경쾌한 발소리가 들렸다.
백운휘는 새 가마솥을 품에 안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낡은 배낭은 한쪽 어깨에 걸쳤고 찢어진 옷깃은 서툴게 꿰맨 자국이 보였다.
"석 노인. 솥을 샀습니다."
그는 아이처럼 환한 얼굴로 솥을 내려놓았다.
"두께를 보십시오. 손잡이도 튼튼합니다. 이번에는 약물이 새지 않겠습니다."
석 노인은 솥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운휘의 목덜미에 붙어 있었다.
"도끼를 맞았다더니 정말이냐?"
"맞긴 맞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먼저 깨졌습니다."
"네 목이 아니라 도끼날이?"
"예. 쇠가 조악했나 봅니다. 산적도 나무를 패려면 좋은 도끼를 써야 할 텐데요."
운휘는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고는 새 솥 안쪽을 헝겊으로 닦기 시작했다.
석 노인은 그의 목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상처는 없었다. 붉은 줄 하나 없었다. 목깃 사이에 남은 것은 검은 쇳가루 몇 점뿐이었다.
"아프지도 않았느냐?"
"간지러웠습니다."
"도끼가 닿았는데?"
"쇳가루가 묻으니 좀 그랬습니다."
석 노인은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화산에서 약초를 다루며 평생 독과 상처를 보았지만 이런 대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운휘는 배낭을 열었다. 말린 황련과 자소엽을 차례로 꺼내 선반에 올렸다. 맨 아래에서는 검푸른 잎이 든 작은 꾸러미가 나왔다.
석 노인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그걸 아직도 들고 다니느냐?"
"귀면초입니다. 탕약에 잎 하나만 넣으면 속이 편합니다."
"그 풀은 한 잎만 잘못 써도 속이 뒤집혀 피를 토한다."
"그래서 조금만 넣습니다."
"조금 넣는다고 약이 되는 게 아니다."
운휘는 귀면초를 빛에 비춰 보았다. 잎맥이 선명하고 끝이 마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좋은 물건입니다. 버리면 아깝습니다."
"너는 독초를 볼 때마다 왜 아깝다는 말부터 하느냐."
"약초도 제철을 놓치면 서운할 테니까요."
석 노인은 더 말할 기운이 없었다.
"백운휘."
문간에서 백향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휘가 반갑게 돌아봤다.
"사형. 솥 보러 오셨습니까?"
"네 몸을 보러 왔다. 안으로 들어가."
"목은 멀쩡합니다."
"들어가라."
그 한마디에 운휘는 새 솥을 내려놓고 진료방으로 들어갔다. 백향란은 문을 닫은 뒤 잠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도윤의 목소리와 도끼날의 감촉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방 안에서 운휘는 의자에 앉아 목깃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옷깃 수선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내려가서 수선집에 맡길 생각입니다."
"손목 내놔."
백향란의 손가락이 그의 맥을 짚었다.
운휘는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사형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이번에는 농담을 줄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향란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가느다란 내력이 손목을 따라 스며들었다.
운휘의 맥은 고르다. 심장은 힘차게 뛰고 기혈은 막히지 않았다. 그런데 단전으로 향하는 길목은 예전과 똑같이 비어 있었다.
내공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 더 깊게 기운을 밀어 넣었다.
기운은 운휘의 피부 아래로 들어가 뼈와 살 사이를 스쳤다. 그러다 마치 아침 안개가 햇빛에 풀리듯 흔적 없이 흩어졌다.
반발하지도 않았다.
막아내지도 않았다.
그저 사라졌다.
백향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사형?"
운휘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나쁜 겁니까?"
백향란은 얼른 손을 뗐다.
"아니다."
그녀는 다시 목덜미를 살폈다. 손가락으로 눌러 보고 귀 뒤와 쇄골까지 더듬었다. 뼈에는 금이 가지 않았고 살갗은 부드러웠다.
도끼가 닿았다는 자리에 상처가 없다는 사실만 선명했다.
"철두의 도끼가 말 목도 찍어 넘긴다는 물건이다."
"말은 목이 길어서 위험하겠군요."
운휘의 대답은 너무 진지했다.
백향란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운휘의 눈에는 숨기는 사람의 흔들림이 없었다.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는 기색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무공을 감춘 고수라면 기운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단전까지 텅 비게 보이도록 속일 수 있을까. 도끼가 부러진 일을 자기 목이 아니라 옷깃의 손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녀는 답을 알지 못했다.
"오늘부터 혼자 하산하지 마라."
운휘의 눈이 커졌다.
"약재를 팔러 가야 합니다. 새 솥값도 아직 다 못 냈습니다."
"솥값은 내가 낸다."
"정말입니까?"
운휘의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백향란은 속이 복잡한데도 헛웃음이 날 뻔했다.
"대신 이상한 걸 입에 넣기 전에는 내게 먼저 보여라."
"그건 약초꾼에게 꽤 어려운 부탁입니다."
"백운휘."
"알겠습니다. 되도록 보여드리겠습니다."
되도록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백향란은 더 다그치지 못했다. 우선은 눈앞에 둘 생각이었다.
그녀는 진료방을 나와 마당에 모인 외문 제자들을 둘러봤다. 도윤도 그 틈에 서 있었다.
"들었겠지. 운휘에게 도끼가 닿았고 멀쩡했다."
제자들이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걸 떠들고 다니는 놈은 내가 직접 연무장 백 바퀴를 돌릴 것이다. 운휘를 떠보려고 검이나 주먹을 들이대는 놈도 똑같다."
한 제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백 사형. 백운휘 사제가 정말 은세고수입니까?"
백향란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그 아이는 화산파 제자다. 그거면 됐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그러나 사람의 입은 산바람보다 빨랐다. 약방 담장 너머에서 누군가가 낮게 속삭였다.
도끼가 목에서 부러졌대.
외문에 은거한 고수가 있대.
백향란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붙잡지 못했다.
운휘는 소문과 상관없이 약방 선반 앞에 섰다. 귀면초 꾸러미를 어디에 둘지 고민하던 그의 눈이 옆 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 잎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잎 끝에는 하얀 설탕가루 같은 서리가 앉아 있었다.
흑설초였다.
석 노인이 약재를 정리하다가 그 시선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건 손도 대지 마라."
운휘는 검은 잎 끝에서 나는 달큰한 향을 맡았다.
"입가심으로 괜찮겠는데요."
석 노인의 손에서 약재 바구니가 툭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