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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파 약초꾼이 죽질 않음2화

화산파 약초꾼이 죽질 않음

화산파 약초꾼이 죽질 않음

2화: 쇠로 만든 목

새벽 산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백운휘는 약방 앞에서 배낭 끈을 두 번 당겼다. 안에는 말린 황련과 자소엽이 들어 있었다. 맨 아래에는 붉은 버섯 조각과 귀면초 잎을 따로 싼 꾸러미도 있었다.

"흠. 냄새는 아직 괜찮고."

그는 배낭 입구를 묶었다. 밤새 남은 열기가 몸속을 천천히 돌았다. 단전은 여전히 빈 항아리 같았지만 팔다리는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어젯밤 백향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었다.

사람 말 좀 들어라.

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야. 산적을 만나면 사람 말로 좋게 해결해야지."

그가 이해한 경고는 조금 달랐다. 하산길에 흑풍채 산적이 얼씬거린다 했다. 산적이 있으면 길이 막히고 길이 막히면 약재가 눅눅해진다. 그러니 일찍 내려가 약재를 넘기는 것이 가장 좋았다.

새 가마솥값도 벌어야 했다.

운휘는 약방 문을 닫고 산길로 들어섰다. 축축한 흙이 짚신 밑창에 붙었다. 평소라면 배낭 무게가 어깨를 눌렀을 텐데 오늘은 광주리 하나를 빈 채로 멘 기분이었다.

"자양강장제가 제법 들었나 보네."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화산의 하산길은 새벽에 더 험해졌다. 안개가 바위 사이를 덮고 잣나무 그림자가 길을 둘로 셋으로 갈라 보이게 만들었다. 운휘는 익숙하게 왼쪽 비탈을 밟고 내려갔다.

그때 길 아래에서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딱.

운휘는 걸음을 멈췄다.

"짐승인가?"

대답 대신 검은 두건을 쓴 사내 셋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운데 사내는 양손 도끼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도끼날은 사람 얼굴만 했고 한쪽에는 마른 피가 검게 눌어붙어 있었다.

왼쪽 사내는 긴 칼을 뽑았다. 오른쪽 사내는 밧줄을 손에 감았다. 셋은 길을 막고도 웃지 않았다. 길손을 놀리는 잡도둑이 아니라 베어 본 적이 있는 자들의 얼굴이었다.

"화산파 외문 놈이냐."

도끼 든 사내가 물었다.

"예. 화산파 약방에서 내려가는 길입니다."

"그 배낭 내려놓고 은자도 꺼내라."

운휘는 잠시 그를 보았다.

"약재를 사시려는 겁니까?"

칼 든 산적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두목. 이놈 겁을 너무 먹어 머리가 돌아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황련은 좋은 물건이라 그냥 보여드릴 수는 없습니다. 아래 객잔 의원께 먼저 넘기기로 했습니다."

운휘는 배낭을 살짝 뒤로 돌렸다. 약재가 눌릴까 걱정됐다.

도끼 든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느냐."

"처음 뵙습니다."

"흑풍채 철두다."

운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다만 약초값과는 관계가 없었다.

"저는 백운휘입니다."

산적 둘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철두는 웃지 않았다. 그는 이 산길에서 수십 명을 털었다. 겁먹어 얼어붙는 자와 살려 달라 비는 자와 도망치려다 등짝이 갈라지는 자는 보았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맞교환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간덩이가 부었구나."

"몸이 조금 따뜻하긴 합니다."

"네놈 목도 그런지 보자."

철두가 한 걸음 내디뎠다. 도끼 자루가 낮게 내려갔다가 허리 높이에서 튀어 올랐다. 말 목도 한 번에 끊는 흑풍채의 도끼질이었다. 산길 옆 잣나무 껍질이 바람에 긁혀 벌어졌다.

운휘는 배낭 끈을 붙잡았다.

"잠깐. 약재가."

도끼날이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쩡.

쇠가 얼음처럼 깨지는 소리가 안개 속을 찢었다.

도끼날 절반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검은 조각은 두 번 돌고 흙바닥에 박혔다. 남은 절반은 철두의 손에서 떨었다. 자루 끝으로 울림이 전해졌는지 철두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운휘는 눈을 깜박였다.

목덜미가 살짝 간지러웠다. 겨울 마른 가지가 스친 정도였다. 그는 손을 올려 긁었다. 손끝에 쇳가루가 묻었다.

"어?"

피는 없었다. 살갗도 멀쩡했다. 옷깃만 조금 찢어졌다.

운휘는 바닥에 박힌 도끼날 조각을 집어 들었다. 묵직했다. 그는 날 끝을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쇳가루가 부스러졌다.

"이거 쇠가 좀 무른데요."

철두는 말을 잃었다.

"산길에서 쓰는 도구면 단단해야 합니다. 도끼가 이렇게 깨지면 나무도 제대로 못 패겠소."

"두목."

밧줄 든 산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놈 목에 상처가 없습니다."

"나도 본다."

철두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의 도끼는 흑풍채에서 이름난 물건이었다. 사흘 전에도 도망치던 표사를 말째로 찍어 넘어뜨렸다. 그 도끼가 사람 목에서 깨졌다.

내공이 튕겨 낸 흔적도 없었다. 호신강기가 번쩍인 것도 아니었다. 청년은 그저 서 있었다. 서 있는 것만으로 칼날을 부순 셈이었다.

철두의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떠올랐다.

은거 고수.

그것도 경지가 너무 높아 기운을 감춘 자.

운휘는 배낭을 열어 약재를 살폈다. 황련 꾸러미는 무사했다. 자소엽도 눌리지 않았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약재는 멀쩡합니다."

산적 셋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자기 목숨이 아니라 약재를 먼저 걱정한다. 그것은 여유였다. 아니 여유를 넘어선 오만이었다. 철두는 무림에서 진짜 강자들이 가끔 그런 얼굴을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운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 옷깃은 누가 물어줍니까?"

철두의 무릎이 먼저 꺾였다.

쿵.

"대협!"

"예?"

"저희가 감히 태산 같은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운휘는 당황했다.

"아니. 목숨까지 걸 일은 아니고 옷깃하고 솥값만."

"솥값?"

"어젯밤 솥이 깨졌습니다. 하산해서 새로 사야 합니다."

철두는 그 말을 다른 뜻으로 들었다. 절세고수가 피를 보기 싫어 작은 명목으로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 여겼다.

그는 품속의 은자를 꺼내 바닥에 쏟았다. 옆의 산적들도 허겁지겁 전낭을 풀었다. 밧줄 든 산적은 신발 안쪽에 숨긴 동전까지 꺼냈다.

"부디 이걸로 분을 푸십시오."

"분은 안 났습니다."

"예. 대협께서는 분노조차 초월하셨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약재가 상하면 좀 화가 납니다."

산적들은 동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때 아래쪽 길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올라왔다.

"누가 길을 막고 있소?"

수염이 성긴 중년 사내가 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객잔에 붙은 의원 심덕구였다. 그는 새벽마다 산기슭으로 올라와 약재를 직접 살피곤 했다. 뒤에는 화산파 외문 제자 도윤이 작은 약재 상자를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도윤은 운휘를 보고 반가워하려다 굳었다.

부러진 도끼날.

무릎 꿇은 흑풍채 산적.

멀쩡히 목을 긁는 백운휘.

세 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백 사제. 방금 무슨 일이 있었나?"

"도끼가 부러졌습니다."

"어디에?"

"제 목 근처에서요."

도윤의 얼굴이 하얘졌다. 심덕구는 천천히 다가와 바닥의 도끼날을 살폈다. 그는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상처와 병기를 구분할 줄 알았다. 이 도끼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두꺼운 뼈도 가를 물건이었다.

그는 운휘의 목덜미를 보았다.

상처가 없었다.

얇은 붉은 선조차 없었다. 오히려 운휘는 쇳가루가 묻었다며 손으로 털고 있었다.

심덕구는 숨을 삼키고 두 손을 모았다.

"소인이 눈이 어두워 고인을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고인은 돌아가신 분 아닙니까?"

"그 고인이 아니라 높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외문 약방 심부름꾼입니다."

심덕구는 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 겸허함까지."

운휘는 대화가 자꾸 이상한 데로 흐른다고 느꼈다.

도윤은 부러진 도끼날 앞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대려다 말았다. 날이 깨진 면은 매끈했다. 무언가에 맞아 찌그러진 것이 아니라 감당 못 할 힘을 만난 것처럼 통째로 갈라져 있었다.

"백 사제. 혹시 목이 아프지는 않나?"

"조금 간지럽습니다."

"간지럽다고?"

"쇳가루가 묻어서 그렇습니다."

도윤은 입술을 달싹였다. 기초 심법 시간마다 졸던 외문 사제가 목으로 도끼를 부쉈다. 그것도 무공의 기색 하나 없이 해냈다.

그는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나는 먼저 문파로 올라가 보겠다."

"왜요?"

"급히 알릴 일이 있다."

"약재 상자는요?"

도윤은 대답도 하지 않고 산길 위로 뛰었다. 평소보다 훨씬 빠른 걸음이었다. 운휘는 그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침 수련에 늦었나."

심덕구는 약재 꾸러미를 받아 들고 향을 맡았다. 황련은 깨끗했고 자소엽은 잘 말랐다. 무엇보다 방금 목격한 장면 때문에 손이 떨렸다.

그는 약속한 값보다 은자를 더 얹어 내밀었다.

"이건 많습니다."

"산길을 열어 주신 값입니다."

"길은 원래 열려 있었습니다."

"그럼 약재가 훌륭해서입니다."

운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말씀은 맞습니다."

그는 필요한 솥값을 따로 세었다. 산적들이 낸 은자 중에서도 옷깃과 솥값 정도만 챙겼다. 남은 돈을 돌려주려 하자 철두가 기겁하며 두 손을 저었다.

"저희가 어찌 대협께서 내리신 물건을 다시 받겠습니까."

"물건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

"가르침으로 삼겠습니다."

"도끼는 새로 사십시오. 이번에는 좋은 쇠로."

철두는 그 말을 병기와 마음을 모두 새로 벼리라는 고인의 법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산적 둘을 끌고 뒷걸음질쳤다. 세 사람은 숲에 들어서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운휘는 빈 배낭을 정리했다. 새 솥값도 생겼고 약재도 제값보다 조금 더 받았다. 생각보다 좋은 하산길이었다.

다만 목깃이 찢어진 것은 아쉬웠다.

"사형께 들키면 또 잔소리하시겠네."

그는 옷깃을 손으로 눌러 감췄다. 그러고는 객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잣나무 끝에 걸렸다.

운휘가 내려간 뒤에도 심덕구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부러진 도끼날 조각이 흙 속에서 희게 빛났다.

"화산에 저런 분이 숨어 있었다니."

그의 중얼거림은 산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 시각 도윤은 숨이 턱까지 차도록 화산파 산문을 향해 뛰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한 장면만 반복됐다.

도끼가 목에서 부러졌다.

외문 약초꾼 백운휘의 목에서.

화산파의 아침은 아직 그 소문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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