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6화: 첫 번째 의뢰와 영체 고양이
"띠링!"
낙도 만물상의 정적을 깨고 울려 퍼진 우렁찬 알림음은 김철수의 고막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김철수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듀얼 모니터 앞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씻고 새 옷을 입었으나 여전히 수척한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며 천마 플랫폼의 중앙 서버 로그를 호출했다.
"대, 대표님! 진짜 매칭이 잡혔어요! 베타 앱을 배포한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첫 의뢰가 등록된 겁니다!"
"당황하지 말고 상세 내용을 읽어보거라."
독고현은 차를 머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어조는 태산처럼 묵직했으나, 눈동자만큼은 새로 개설한 상단의 역사적인 첫 거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철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에 뜬 한글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었다.
"의뢰인 이름은 박말순. 주소지는 만물상 바로 옆 빌라 201호네요. 의뢰 내용은…… '우리 방울이 좀 찾아주세요. 헌터들이 안 찾아줘요.' 라고 적혀 있습니다. 첨부 사진은…… 어? 이게 고양인가요?"
모니터 화면에는 옅은 푸른빛을 띠는 반투명한 고양이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일반적인 고양이와 달리 형체가 흐릿하고 미세하게 공중으로 아지랑이 같은 영적 연기를 피워 올리는 기이한 영물이었다.
"영체 고양이군요."
만물상 구석에서 배달용 플라스틱 상자를 정리하던 최두식이 고개를 들이밀며 아는 체를 했다.
"낙도구 변두리에 사는 독거노인들이나 영세 상인들이 키우는 일종의 F급 영체 소환수입니다. 전투력은 전혀 없고 그냥 일반 고양이랑 똑같이 애교 부리는 수준인데, 수명이 길고 마력을 조금씩 먹고 살아서 헌터들이 던전에서 포획해다가 헐값에 넘기곤 하죠. 저 방울이라는 고양이가 옆집 박 할머니의 유일한 말동무였을 겁니다."
최두식의 설명에 독고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에서도 영물이나 신수를 가축처럼 키우는 문파들이 있었으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철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런데…… 영체 고양이는 물리적인 형체가 반쯤 없어서 쫓기가 정말 힘들어요. 게다가 F급 소환수 찾기 같은 영세 민원은 헌터 협회나 사설 길드에 신청해도 거절당하기 일쑤입니다. 착수금만 해도 수백만 원을 요구하거든요. 박 할머니 형편에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죠."
그때, 현의 바지춤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기는 작은 손길이 있었다.
"삼촌……."
노란색 유치원 가방을 멘 하은이가 큰 눈망울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 박 할머니네 방울이 알아. 나 유치원 갈 때마다 창문 밖으로 머리 쏙 내밀고 야옹야옹 인사해 줬단 말이야. 방울이 잃어버려서 할머니 어제부터 계속 울고 계셔. 삼촌, 우리 앱으로 방울이 꼭 찾아주면 안 돼?"
하은이의 간절한 목소리가 적막한 만물상 내부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현은 조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세워 철수와 두식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상인에게 있어 첫 거래는 천금과도 같으며, 맺어진 계약은 목숨을 걸고 완수하는 것이 마교의 상도이자 규칙이다. 의뢰의 경중을 금전의 가치로 저울질하는 자는 결코 대업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현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화면 중앙의 [의뢰 수락] 버튼을 거침없이 눌렀다.
"이 의뢰, 본좌가 직접 접수하겠다."
낙도구의 골목길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지하 F급 던전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마력 노이즈가 골목 구석구석을 덮고 있어, 현대식 GPS 추적 장치나 마력 측정기로는 형체가 흐릿한 영체 고양이의 흔적을 찾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독고현에게는 그런 기계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만물상 밖으로 나온 현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곁에서 백 보, 아니 천 보의 범위 내에 흐르는 기운을 읽는다.'
현이 단전에서 진기를 미세하게 끌어올렸다. 그의 주위로 보이지 않는 무형의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낙도구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무림에서 첩자를 쫓을 때 사용하던 극의의 추적술, 만물감응(萬物感應)의 수법이었다.
공기 중에 흩어진 쓰레기 냄새, 녹슨 철판의 기운, 그리고 각성자들의 탁한 마력 흐름 사이로 이질적인 기운이 감지되었다.
차가우면서도 영롱한 음(陰)의 기운.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묻어나는 미세한 불협화음.
"찾았느냐, 삼촌?"
하은이가 현의 손을 꼭 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하은아. 네 동무가 어디로 갔는지 바람이 본좌에게 속삭여 주는구나.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걱정 말거라."
현은 하은이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주위의 행인들이 보기에 그저 조카를 안고 산책하는 평범한 삼촌의 걸음걸이였으나, 현의 발끝은 미세하게 땅을 미끄러지듯 밟고 있었다.
축지법(縮地法)의 기초인 육합보(六合步).
바람 한 점 일으키지 않는 은밀한 신법 덕분에, 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낙도구 구석에 방치된 폐가 구역에 다다랐다.
그곳은 오래전 던전 침공 당시 파괴된 채 재개발이 멈춘 음침한 빌라 단지였다. 골목 안쪽의 차가운 시멘트 벽면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던전 경계 구역 - 출입 금지'라는 경고 문구가 거칠게 적혀 있었다.
"삼촌, 여기 너무 어둡고 무서워……."
하은이가 현의 목덜미를 꼭 껴안았다.
"하은아, 삼촌이 곁에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저 안쪽에 방울이가 있구나."
폐가의 무너진 담벼락 틈새로 푸른빛의 실루엣이 보였다. 박 할머니의 영체 고양이 방울이였다.
방울이는 무너진 싱크대 아래 구석진 곳에 웅크린 채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방울이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어둠뿐만이 아니었다.
찍찍! 찌익!
어둠 속에서 붉은 안광 세 쌍이 번들거렸다.
몸길이가 1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시궁쥐 형태의 몬스터, F급 마수 '그림자 쥐'들이였다. 던전 게이트의 미세한 균열 틈새로 흘러나온 놈들이 영체 고양이가 뿜어내는 마력 냄새를 맡고 사냥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 분명했다.
그림자 쥐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방울이를 향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갔다. 방울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질을 해댔지만, 반투명한 몸체는 마력 오염으로 인해 급격히 흐려지고 있었다.
"삼촌! 나쁜 쥐들이 방울이를 잡아먹으려고 해!"
하은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현은 차가운 안광으로 그림자 쥐들을 쏘아보았다. 강호의 삼류 양아치들만도 못한 하찮은 짐승들이 감히 조카를 겁주고 첫 거래의 납품물을 훼손하려 들다니.
"하은아, 잠시만 눈을 감고 셋을 세어보겠느냐? 삼촌이 요술로 저 더러운 쥐들을 멀리 쫓아내 주마."
"웅! 눈 감았어!"
하은이가 두 손으로 눈을 꼭 가렸다.
현은 하은이가 눈을 가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자유로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를 모아 허공을 향해 가볍게 튕겼다.
탄지신통(彈指神通).
파공음조차 없었다. 현의 손가락 끝에서 응축된 투명한 진기 탄 세 발이 대기를 가르며 빛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퍽! 퍽! 퍽!
"찌익……!"
그림자 쥐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머리통을 관통당한 세 마리의 마수는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완벽한 은형의 살수였다.
"삼촌, 다 셌어! 하나, 둘, 셋!"
하은이가 손가락 틈새로 눈을 빼꼼 떴다.
무서운 마수들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폐가 구석에 남은 방울이만이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와! 삼촌 진짜 대단해! 쥐들이 다 도망갔어!"
"하하, 삼촌이 바람을 불어 멀리 쫓아버렸단다."
현은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싱크대 아래로 걸어가 몸을 굽혔다.
그러나 방울이는 여전히 경계 태세를 풀지 않았다. 주변의 마력 오염에 노출된 탓인지, 눈동자가 붉게 충혈된 채 현을 향해 발톱을 세웠다. 영체 속성의 마수는 흥분하면 주인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기 십상이었다.
"하악……!"
"짐승아. 본좌의 앞에서 털을 세우지 말거라."
현이 나직하게 타이르며 오른손을 천천히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은은하고 청정한 빛을 띠는 태청진기(太淸眞氣)가 흘러나왔다. 도가의 정종 심법에서 비롯된 이 온화한 진기는 현대의 그 어떤 정화 스킬보다도 순수하고 강력한 치유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뜻한 진기가 방울이의 반투명한 몸체를 부드럽게 감쌌다.
사나운 기세로 날을 세우던 영체 고양이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씻겨 내려갔다. 방울이는 이내 멍한 표정을 짓더니, 현이 내민 손가락에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갸르릉 소리를 내며 현의 손바닥에 이마를 부벼대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무력의 정점에 선 자가 베푸는 온화한 기운에 영물이 본능적으로 굴복한 것이었다.
"냐아옹……."
"방울아!"
하은이가 현의 품에서 내려와 방울이를 와락 껴안았다. 반투명한 고양이는 하은이의 품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내뿜으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현은 그 모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 첫 거래의 납품물이 무사하니 어서 의뢰인에게 인도하러 가자꾸나."
"아이고, 방울이! 이 할미가 얼마나 찾았는데!"
낙도 만물상 옆 빌라 201호의 문이 열리자마자, 옆집 박말순 할머니가 방울이를 품에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방울이 역시 할머니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할머니는 몇 번이고 현의 손을 맞잡으며 허리를 굽혔다.
"정말 고마워, 총각. 내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할머니는 낡은 꽃무늬 지갑을 열어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한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현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할머니가 가진 전 재산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이것밖에 없어서 정말 미안하네. 헌터들이라는 사람들은 몇백만 원을 달라고 해서 엄두도 못 냈는데…… 이것이라도 받아주게나."
현은 할머니의 굳은살 박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림의 기준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대금이었다. 천마 플랫폼의 수수료 1%를 떼고 나면 철수의 통장에 들어갈 돈은 백오십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은 할머니가 내민 현금을 부드럽게 밀어냈다.
"할머니, 상도의 규칙에 따라 계약금은 이미 충분히 치러졌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난 돈을 준 적이 없는데……."
현이 싱긋 웃으며 복도에 놓여 있던 작은 플라스틱 반찬통을 가리켰다.
"대신, 할머니께서 며칠 전에 담그셨던 그 시원한 배추김치와 멸치볶음을 대금으로 받겠습니다. 본좌의 조카 하은이가 할머니의 반찬을 몹시 좋아하더군요. 천하의 그 어떤 영약이나 보화도 하은이의 웃음만큼 가치 있지는 않으니, 이것으로 거래는 성사된 것입니다."
박 할머니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현의 깊은 배려를 이해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아이고, 참말로…… 고마운 청년이네. 내 얼른 더 챙겨줄 테니 기다리게!"
할머니는 집 안으로 급히 들어가 김치 한 통과 밑반찬을 가득 담은 봉지를 현의 손에 쥐여주었다.
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 뜬 천마 플랫폼 앱에서 [의뢰 완료] 버튼을 눌렀다.
"띠링! 거래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대금이 정산되었습니다."
청명한 알림음과 함께 첫 거래의 막이 내렸다.
만물상으로 돌아온 현을 맞이한 것은 모니터 앞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김철수였다.
"대, 대표님! 서버에 첫 별점이 등록되었어요! 박말순 할머니 계정으로 별점 5점 만점에 '방울이를 찾아주셔서 눈물 나게 감사합니다'라는 후기가 올라왔습니다!"
"별점이라 함은 무림 상단의 신용도 같은 것이겠지. 첫 걸음치고는 나쁘지 않구나."
현이 김치통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철수의 경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낙도구 주민들 맘카페랑 반상회 단톡방에 할머니가 글을 올리셨나 봐요! '만물상 청년들이 여는 앱에 신청하면 헌터들이 안 해주는 일도 다 해준다'고요!"
철수의 손가락이 바쁘게 칠판을 가리켰다. 서버 모니터링 화면의 접속자 수 그래프가 완만하던 곡선에서 수직으로 꺾여 올라가고 있었다.
"어…… 어? 대표님! 접속자가 폭증하고 있어요! 그리고…… 주문이 들어옵니다!"
"띠링!"
"띠링! 띠링!"
만물상 내부에 설치된 스피커와 현의 스마트폰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연쇄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낙도동 빌라촌: 하수구에 빠진 반지 좀 건져주세요!]
[낙도 시장 상인회: 창고에 출몰한 F급 몬스터 쥐 퇴치 요청!]
[낙도 요양원: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던전 정화수 대리 수거 요청!]
"대표님…… 주문이 계속 들어와요! 이거 진짜 대박 났어요!"
철수가 흥분으로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최두식과 배달원 삼형제 역시 서로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동네의 작은 생활 민원 매칭으로 시작한 천마 플랫폼이, 낙도구 주민들의 억눌려 있던 수요를 단숨에 관통한 것이다.
현은 울려 퍼지는 알림 소리 속에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찻물 위에 비친 그의 눈동자에는 더 큰 전쟁을 준비하는 마교주의 매서운 광채가 감돌고 있었다.
"하늘의 전령들이 쉴 틈 없이 울부짖는구나. 두식아, 철수야. 손님들이 기다리신다. 상도를 펼칠 준비를 하거라."
"예, 형님!"
"예, 대표님! 바로 대기하겠습니다!"
낙도구 변두리의 낡은 만물상에서 발원한 작은 물결이, 거대 길드 골드 크레센트가 장악한 견고한 유통망의 거대한 벽을 향해 거침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