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5화: 하늘의 전령, 천마 플랫폼
낙도구 상가 지하에 위치한 '태풍 피시방'의 공기는 탁했다.
어스름한 형광등 아래로 컵라면의 인공적인 조미료 냄새와 케케묵은 담배 연기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헤드셋을 쓴 청소년들의 고함과 기계 키보드의 요란한 타건음이 사방에서 웅웅거렸다.
이 혼란스러운 강호의 '학당' 안으로, 두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한 명은 훤칠한 키에 범접할 수 없는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미남 독고현이었고, 다른 한 명은 잔뜩 기가 죽어 주위를 살피는 덩치 큰 사내 최두식이었다. 현은 조카 하은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협풍 도포 대신 깔끔한 네이비색 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있었지만, 그가 걷는 걸음걸이마다 흐르는 은형(隱形)의 보법은 피시방의 혼잡한 통로를 미끄러지듯 통과하게 만들었다.
"대표님, 저기 구석 자리입니다. 구석진 자리에서 며칠째 컵라면으로 연명하면서 게임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저 꾀죄죄한 녀석이 김철수입니다."
최두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헝클어진 머리에 초점 없는 눈을 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며칠은 감지 않은 듯 떡진 머리와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그의 처참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게임 캐릭터가 쓰러질 때마다 철수는 영혼이 나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기세는 마치 주화입마에 빠져 영혼의 불꽃이 꺼져가는 삼류 무인과도 같았다.
현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피시방 입구의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거구의 사내 두 명이 들어섰다.
그들은 가슴에 어설픈 문신을 새기고 징이 박힌 가죽 재킷을 걸친 각성자들이었다. 최두식이 그들을 보자마자 낮게 읊조렸다.
"쳇, 광풍 상사 놈들입니다. 대형 길드인 골드 크레센트 놈들이 보낸 사채 추심원들이죠. 끈질기게도 김철수를 감시하러 온 모양입니다."
두 명의 깡패는 거침없이 피시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 김철수의 모니터를 발로 툭 찼다.
쿵!
"야, 김철수. 아직 살아 있냐?"
김철수가 깜짝 놀라 헤드셋을 벗으며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너, 너희들…… 여긴 왜 또 온 거야?"
"왜 오긴 임마, 이자 받으러 왔지. 그리고 지부장님이 전하신 마지막 통보가 있어서 말이야. 지난번에 네가 개발하다 남은 던전 매칭 특허 포기각서 있지? 그거 오늘 중으로 도장 찍어라. 안 그러면 네 남은 콩팥이라도 팔아서 이자를 메꿔야 할 테니까."
깡패 하나가 철수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끌어당겼다. 철수의 뺨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기 직전이었다. 철수는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
철수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낯선 사내가 서 있었다. 깔끔한 셔츠를 입었지만 눈매만큼은 얼음골의 검처럼 매서운 남자였다.
그 남자의 길고 곧은 손가락이 깡패의 손목을 가볍게 쥐고 있었다.
"강호의 상도가 땅에 떨어졌구나. 힘없는 서생을 겁박하여 기예를 빼앗으려 들다니, 참으로 비열한 행동이로다."
현의 서늘한 음성이 피시방의 소음을 뚫고 퍼져 나갔다.
"뭐야, 이 새끼는?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야? 손 안 놔?"
멱살을 잡았던 깡패가 붉은 흉터가 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현은 대답 대신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탄지신통(彈指神通).
대기 중의 공기가 미세하게 응축되었다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현의 손가락 끝에서 출발한 눈에 보이지 않는 진기 쐐기가 두 깡패의 명치 바로 아래, 기해혈(氣海穴)과 관원혈(關元穴)을 정확히 타격했다.
푹!
"윽……!"
깡패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채 바닥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주위의 초등학생들은 모니터에 코를 박고 총싸움 게임에 열중하느라 이 조용한 격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은 쓰러진 두 사내를 쓰레기 더미 보듯 내려다보며 최두식에게 턱짓을 했다.
"두식아. 이 오물들을 비상구 밖으로 옮기거라."
"예, 대표님!"
최두식이 능숙하게 두 깡패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질질 끌고 나갔다. 현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김철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거라, 서생. 이곳의 공기가 너무 탁하니, 밖으로 나가 상의하자꾸나."
피시방 건물 뒤편의 으슥한 골목길.
바닥에 쓰러진 두 깡패는 마비가 풀렸지만, 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천마의 기세에 짓눌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현은 그들을 차갑게 내려다보며 경고했다.
"돌아가서 너희 우두머리에게 전하거라. 낙도구 일대의 던전 유통과 물류는 이제부터 '낙도 만물상'이 관장할 터이니, 다시는 이 근방에 발을 들이지 말라고. 만약 이를 어길 시, 다음번에는 혈맥을 끊어놓을 것이다."
"히, 힉……! 알겠습니다!"
깡패들은 자신들이 상대할 수 없는 괴물임을 깨닫고 허겁지겁 골목 밖으로 도망쳤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철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 누구신데 저를 도와주신 겁니까? 혹시 저놈들보다 더 무서운 대기업 헌터 길드에서 오신 분인가요?"
철수의 목소리에는 불신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골드 크레센트에게 당한 배신과 파산의 상처는 그를 깊은 불신으로 몰아넣은 상태였다.
현은 셔츠 소매를 단정하게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본좌는 낙도 만물상의 대표, 독고현이라 한다. 소문을 들으니 네가 천하의 기이한 술법…… 아니, 던전의 물류를 연결하는 모바일 앱이라는 비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졌다 들었다."
"앱이요? 만들 줄은 알지만…… 이미 망했습니다. 대기업 놈들이 특허도 다 빼앗아 가고 제 서버도 다 터뜨렸어요. 이제 전 빚더미에 앉은 쓸모없는 폐인일 뿐입니다."
철수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현은 그런 철수의 어깨에 묵직한 손을 올렸다.
"서생. 무림…… 아니, 이 장사의 판도에서는 패배했다고 해서 목숨을 버리거나 기예를 꺾지 않는 법이다. 본좌와 손을 잡자꾸나. 네 기술을 펼칠 터전과 대기업 놈들의 독점망을 박살 낼 기회를 제공하겠다. 그리고 상도의 규칙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마."
현은 소매 안쪽 주머니에서 빳빳한 오만 원 권 뭉치가 가득 담긴 봉투를 꺼내 철수의 품에 툭 던져 넣었다.
"이것은 계약의 증표인 계약금이다. 천만 원이지. 네가 진 빚을 갚고 밥을 든든히 먹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다. 앞으로 네 신변은 나와 내 수하들이 보장할 것이니, 오직 비기 개발에만 전념하거라."
철수는 품에 안긴 두툼한 돈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었다. 독고현의 눈동자 속에는 그 어떤 대기업 회장들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압도적인 신뢰와, 거대한 산처럼 흔들림 없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철수의 가슴 속에서 꺼진 줄 알았던 열정의 불꽃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정말로 골드 크레센트 놈들을 이길 수 있습니까?"
"상도를 어기고 독점을 부린 자들은 반드시 파멸을 맞이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본좌의 법이다."
철수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제 모든 코딩을 대표님께 바치겠습니다."
낙도 만물상 안쪽 방.
최두식 삼형제가 쓸고 닦아 깨끗해진 방 안에는 고성능 컴퓨터 세 대와 듀얼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김철수는 씻고 새 옷을 입은 채 모니터 앞에 앉아 현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피시방에서의 초점 없는 눈빛과 달리, 마치 전장에 나선 군사(軍師)처럼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표님, 제가 구상한 새로운 플랫폼의 기본 아키텍처입니다. 위치 기반으로 던전 부산물을 캐온 헌터들과 영세 상인들을 실시간으로 매칭해 주는 시스템이죠. 여기에 '천마 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철수가 칠판에 복잡한 흐름도와 코드를 적으며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F급 던전 주변이나 낙도구 변두리는 지하 던전의 영향으로 마력 노이즈가 심해서 GPS 매칭이 뚝뚝 끊깁니다. 서버의 데이터베이스 처리 속도가 헌터들의 이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매칭 병목 현상이 생겨요. 골드 크레센트 놈들은 이걸 해결하려고 값비싼 전용 위성을 띄웠지만, 저희는 그럴 돈이 없습니다."
현은 칠판에 적힌 복잡한 기호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비록 코딩의 세부적인 구문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무림 천하를 호령하며 수만 명의 개방 정보원과 천마신교의 첩보망을 조율했던 '정보의 흐름'이라는 이치는 동일했다.
현은 찻잔을 내려놓고 칠판의 특정 연결선을 가리켰다.
"서생, 정보의 전달이란 물이 흐르는 길과 같다. 굳이 매 순간 모든 이들의 정확한 위치를 다 실시간으로 쫓을 필요가 있느냐?"
"네? 하지만 실시간 매칭을 하려면 위치가 정확해야……."
"생각을 바꾸거라. 무림의 전령들을 다룰 때도 산맥 안의 행적을 다 쫓지는 않는다. 대신 길목이 되는 협곡의 입구와 출구에 정위점(定位點)을 배치하지. 던전의 입구와 낙도구 상점가라는 명확한 '거점'들의 기운 흐름(에너지 플로우)을 기준으로 동선을 예측하거라. 노이즈가 발생하는 중간 지점은 이전의 동선 속도와 잔여 내공…… 아니, 잔여 배터리 양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이 예측 경유지를 가상으로 생성하면 될 것 아닌가."
철수는 현의 말을 들으며 벼락을 맞은 듯 굳어졌다.
"가상 예측 경유지……? 위성 통신 대신 거점 간의 기전 차이를 활용해서 동선 흐름을 계산한다고요? 어라? 이렇게 하면 굳이 실시간 위성 통신 데이터가 없어도 간단한 연산만으로 끊김 없는 매칭이 가능하잖아!"
철수의 손가락이 미친 듯이 키보드를 타다닥 두드렸다. 화면 위로 무수한 코드 라인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말도 안 돼…… 대표님, 이 방식은 천재적입니다! 복잡한 하드웨어 인프라 없이도 소프트웨어만으로 골드 크레센트의 위성망을 대체할 수 있어요!"
철수는 소름이 돋는 팔을 비비며 현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무협 소설에 나오는 인물 같은 말투를 쓰면서, 어떻게 첨단 데이터 공학의 병목 현상을 단 한마디로 해결하는 것인가.
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본좌가 상단 장부를 다룬 세월이 백 년…… 아니, 꽤 오래되었느니라. 이 정도 이치는 상거래의 기본이지."
며칠 동안 밤낮없이 코딩에 몰두한 끝에, 최초의 '천마 플랫폼' 베타 버전이 완성되었다.
앱의 아이콘은 독고현의 의견을 일부 반영하되 현대적인 센스를 더해, 검은 화염이 돋아난 날개 달린 말(천마, 天馬)의 세련된 실루엣으로 디자인되었다.
마침 유치원을 마친 조카 하은이가 노란색 가방을 메고 만물상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삼촌! 나 왔어!"
"오, 하은아! 왔느냐?"
현이 득달같이 달려가 하은이의 가방을 받아 들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삼촌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 방 안에서 꾀죄죄하지만 코딩을 끝마쳐 성취감에 취해 있는 김철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은이가 동그란 눈으로 철수를 바라보았다.
"삼촌, 이 꾀죄죄한 삼촌은 누구야? 새로 온 배달 아저씨야?"
철수는 하은이의 맑은 눈망울을 마주하자 갑자기 부끄러워져 머리를 긁적였다.
현은 철수의 어깨를 짚으며 소개했다.
"하은아. 이분은 우리 만물상의 수석 책사이자 컴퓨터 마법을 다루는 철수 삼촌이란다. 앞으로 삼촌의 유통업을 도와줄 아주 훌륭한 동료이지."
하은이는 철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주머니를 뒤적여 딸기 맛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철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삼촌, 컴퓨터 많이 하면 눈 아프고 머리 아프대. 이거 먹고 힘내!"
사탕을 받아 든 철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기업에게 짓밟히고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그가, 이곳 낙도 만물상에서 비로소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철수는 사탕을 소중하게 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은아, 고마워. 이 삼촌이…… 진짜 세상에서 제일 튼튼하고 멋진 플랫폼을 만들어서 하은이 삼촌 대박 나게 해줄게!"
"응! 삼촌 파이팅!"
하은이가 배시시 웃으며 현의 품으로 안겼다. 현은 하은이를 안아 올리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화면 중앙에는 깔끔하게 완성된 '천마 플랫폼' 관리자 앱이 켜져 있었다.
[천마 플랫폼 낙도구 베타 가동 중……]
최두식과 배달 삼형제가 낙도구 일대의 아는 영세 헌터들과 단골 상인들에게 이미 앱의 베타 버전 설치 파일을 전부 돌려놓은 상태였다. 이제 누군가 첫 요청을 누르기만 하면 모든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갈 터였다.
현이 하은이를 품에 안은 채 조용히 읊조렸다.
"자, 이제 시작이로구나. 하늘의 전령이 이 낙도구에 어떤 소식을 물어다 줄지 지켜보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의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청명하고 우렁찬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띠링!
[천마 플랫폼: 1호 배달 매칭이 성사되었습니다!]
독고현과 김철수, 그리고 최두식의 시선이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으로 집중되었다. 낙도구를 뒤흔들 거대한 플랫폼 유통 전쟁의 역사적인 첫 신호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