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간 천마님이 유통망을 독점함

11화: 금빛 초승달 아래의 조용한 따돌림
낙도 만물상 앞 골목길에는 아침부터 기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광풍상사의 조태식과 부하들이 빗자루를 들고 얼어붙은 보도블록을 박박 긁고 있었다. 털코트 위로 눈발이 얇게 내려앉았지만 조태식은 감히 손을 멈추지 못했다. 심장 깊은 곳에 박힌 차가운 진기 쐐기가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바늘처럼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조 아저씨! 거기는 빙판이 남았어요. 할머니들 미끄러지면 안 돼요."
하은이가 알록달록한 책가방을 멘 채 만물상 문 앞에서 야무지게 지적했다.
조태식은 사색이 된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예, 예! 하은 아가씨. 바로 치우겠습니다."
"아가씨 아니고 하은이예요. 그리고 청소할 때는 인사도 밝게 해야 착한 어른이에요."
"예!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험악한 깡패들이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하자 골목길 사람들이 킥킥 웃음을 삼켰다. 독고현은 만물상 문턱에 서서 그 꼴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하은이의 목도리를 정성스럽게 여며 주었다.
"하은아. 오늘 학당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지 말거라. 나쁜 어른들을 착한 청소부로 만들었다는 말은 강 선생님께서 듣기에 다소 기이할 수 있다."
"왜? 좋은 일 했잖아. 삼촌이 눈싸움으로 이겨서 나쁜 아저씨들을 갱생시킨 거잖아."
"눈싸움이라는 표현까지만 쓰면 족하다. 갱생이니 강제 봉사니 하는 말은 현대 관청에서 까다롭게 들을 수 있느니라."
하은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곧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삼촌도 오늘 나쁜 말 쓰지 말고 장사 잘해. 나도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낼게."
현은 그 말에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사이좋게.
조카가 가장 당연하게 바라는 그 말이 독고현에게는 천하의 어떤 상단 계약보다 무거운 약조였다.
"그래. 하은이가 웃으며 돌아오면 이 삼촌도 하루의 장부가 흑자로 끝난 것이라 여기마."
낙도초등학교 1학년 예비 교실은 겨울 햇살로 환했다.
창가에는 색종이로 만든 눈꽃 장식이 붙어 있었고 낮은 책상 위에는 이름표와 크레파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이들은 정식 입학을 앞두고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한 적응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하은이는 자기 이름표를 반듯하게 세워 놓고 옆자리 아이에게 웃어 보였다.
"안녕. 나 하은이야. 우리 같이 눈꽃 접을래?"
옆자리 여자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이었다.
"야. 너 걔랑 놀면 안 돼."
반대편 책상에서 명품 패딩을 입은 남자아이가 턱을 치켜들었다. 아이의 이름표에는 백도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은 가슴팍에는 금빛 초승달 모양 배지가 달려 있었다.
"왜?"
여자아이가 눈치를 보며 묻자 도윤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빠가 그랬어. 쟤네 삼촌이 우리 회사 괴롭힌대. 골드 크레센트랑 싸우는 집 애랑 친하게 지내면 던전 안전 체험권 못 받을 수도 있대."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골드 크레센트.
아이들이 그 이름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이 큰 회사라고 말하는 곳, 학교 행사에 간식차와 체험권을 보내주는 곳, 부모들이 함부로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수군대는 곳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도윤은 주머니에서 번쩍거리는 금색 스티커를 꺼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골드 키즈 스티커야. 이거 붙이면 다음 달 체험관에서 선물도 받는대. 그런데 쟤랑 같은 모둠 하면 명단에서 빠질 수도 있대."
"진짜?"
"우리 엄마가 교장 선생님이랑 통화했어. 거짓말 아니야."
아이들의 시선이 하은이에게 모였다.
하은이는 손에 들고 있던 분홍색 색종이를 꼭 쥐었다. 종이 끝이 손톱에 눌려 작게 구겨졌다.
"우리 삼촌 나쁜 사람 아니야."
하은이는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 삼촌은 나쁜 아저씨들이 물건 부수고 사람 괴롭히면 혼내주는 사람이야. 그리고 착한 사람들한테는 엄청 친절해."
도윤이 코웃음을 쳤다.
"흥. 우리 아빠가 너희 만물상 때문에 회사 사람들이 화났다고 했어. 너희 삼촌이 계속 까불면 학교도 곤란해진대."
그 말은 어른의 문장을 어설프게 흉내 낸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충분히 날카로운 가시였다.
방금 전까지 하은이에게 웃어 주던 아이가 슬그머니 의자를 밀었다. 다른 아이들도 금색 스티커를 손등에 붙이며 하은이의 책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하은이는 눈을 깜빡였다.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삼촌이 걱정할 테니까. 강 선생님이 마음 아파할 테니까.
그래서 하은이는 분홍색 색종이를 다시 폈다. 구겨진 자국이 가운데에 남아 예쁜 눈꽃 접기가 조금 삐뚤어졌다.
강서윤은 교실 뒤편에서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관계는 어른의 말보다 훨씬 빠르게 기울어진다. 방금 전까지 네 명이 앉아 있던 모둠 책상에서 하은이 혼자만 남겨진 장면은 작은 일이 아니었다.
"도윤아."
서윤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불렀다.
"친구를 빼고 노는 말은 하면 안 돼요. 우리 반에서는 어떤 친구도 혼자 두지 않기로 약속했지?"
도윤은 눈을 굴리다가 입술을 내밀었다.
"저는 그냥 아빠가 말한 거 말했는데요. 엄마가 선생님도 곧 알게 될 거래요."
그 말에 서윤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교장실에서 아침마다 울리던 전화벨. 학부모회 임원들이 은근히 묻던 "문제 있는 가정 아이를 굳이 우리 반에 둬야 하느냐"는 말. 예비 소집일 뒤로 더 노골적으로 바뀐 시선들.
서윤은 그 모든 것을 삼키고 아이들 앞에 무릎을 굽혔다.
"도윤아. 어른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든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정한 약속을 지켜요. 친구를 회사 이름으로 나누면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 회사가 학교에 체험권 주는데요."
"그래도 안 됩니다."
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도윤은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흐트러져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하은이 옆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손등의 금색 스티커를 만지작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수업이 끝날 무렵, 하은이가 만든 우정 카드만 책상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서윤은 하은이 옆에 앉아 조용히 물었다.
"하은아. 오늘 속상한 일 있었지?"
하은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도윤이가 잘 몰라서 그런 거예요. 삼촌이 말했어요.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먼저 친절하게 알려주면 된다고."
아이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서윤은 하은이의 구겨진 색종이 눈꽃을 조심스럽게 펴 주었다.
"그래도 선생님한테는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선생님은 하은이 편이야."
하은이는 그제야 아주 작게 웃었다.
"그럼 선생님. 삼촌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삼촌이 걱정하면 또 이상한 눈싸움을 할지도 몰라요."
서윤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은이가 만물상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기울기 전이었다.
평소 같으면 문을 열자마자 "삼촌!" 하고 달려와 품에 안겼을 아이가 오늘은 조용히 신발을 벗었다. 책가방도 평소처럼 소파 옆에 던지지 않고 두 손으로 꼭 붙잡은 채 내려놓았다.
현은 장부를 보던 손을 멈추었다.
"하은아. 학당은 즐거웠느냐?"
"응. 재미있었어."
하은이는 너무 빨리 대답했다.
현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무림에서 백 년 동안 수많은 신하와 적을 보아온 그는 거짓말의 냄새를 알았다. 하은이의 거짓말은 너무 작고 착해서 더 선명했다.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냈고?"
"응. 눈꽃도 접었어. 조금 못생겼지만."
하은이는 가방에서 구겨진 색종이 눈꽃을 꺼냈다. 웃으려고 애썼지만 입꼬리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김철수는 모니터 앞에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안경을 밀어 올렸다. 최두식도 청소 감독 명단을 들고 있다가 굳어졌다.
현은 하은이에게 더 묻지 않았다.
"훌륭하구나. 우리 하은이가 직접 만든 눈꽃이니 만물상 장부보다 귀한 보물이로다."
그는 색종이 눈꽃을 두 손으로 받아 카운터 안쪽에 세워 두었다. 하은이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얼굴로 안쪽 방에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현의 온화한 미소가 사라졌다.
"철수야."
"예, 대표님."
"오늘 학당과 관련된 공개 게시판과 학부모 모임의 소문을 살펴보거라. 남의 문을 부수지 말거라. 길바닥에 떨어진 말만 주워 담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철수의 손가락이 자판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현은 하은이의 책가방 옆에 떨어진 작은 금색 가루를 손끝으로 집어 올렸다. 초승달 모양으로 반짝이는 싸구려 스티커 조각이었다. 그는 눈을 감고 단전의 진기를 아주 가늘게 풀었다.
만물감응.
손끝의 작은 가루에 묻은 교실의 잔향이 겨울 안개처럼 떠올랐다. 아이들의 웅성거림. 명품 패딩을 입은 남자아이의 얄팍한 목소리. "골드 크레센트랑 싸우는 집 애랑 놀지 마." 그리고 그 문장 뒤에 묻은 어른의 냄새.
탐욕스럽고 눅진한 금전의 기운.
상대를 직접 치지 않고 주변을 말려 죽이는 자들의 비겁한 수법.
현의 손끝에서 금색 가루가 조용히 으스러졌다.
"대표님."
철수가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돌렸다.
화면에는 낙도구 맘카페의 공개 글과 댓글이 떠 있었다.
[골드 키즈 던전 안전 체험권 받으신 분? 특정 가정이랑 엮이면 명단 빠질 수도 있다던데요.]
[낙도초 1학년 예비반에 골드 크레센트랑 분쟁 중인 만물상 조카가 있다네요.]
[괜히 우리 애 피해 보면 어떡하죠?]
최두식이 욕을 삼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표님. 이거 백강혁 쪽 냄새가 납니다. 조태식이 깨지고 나니까 애 학교를 건드리는 겁니다. 진짜 치졸한 놈들입니다."
현은 모니터를 한참 바라보았다.
눈빛은 차가웠으나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무림에서도 가장 하등한 자들이 칼끝이 닿지 않는 아이와 가족을 먼저 흔들었다. 그런 자들은 자기 장부의 빈칸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법이지."
"대표님……."
"허나 하은이가 현대 사회에서는 폭력을 쓰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가르쳤다. 이번에는 칼이 아니라 장부와 증거로 목을 조르겠다."
그때 카운터 위에 놓인 스마트폰이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강서윤의 이름과 함께 조심스러운 문장이 떠 있었다.
[독고하은 보호자님. 오늘 하은이와 관련해 상담 때 꼭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현은 메시지를 오래 바라보았다.
강서윤 역시 교실에서 금빛 초승달의 그림자를 보았다는 뜻이었다.
현은 카운터 위에 놓인 학부모 상담 신청서 사본을 집어 들었다. 날짜는 곧 다가올 상담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서윤 선생을 만나야겠다. 학당 안에 누가 금빛 초승달을 들이고 있는지, 어느 손이 조카의 책상에서 친구들을 밀어냈는지 하나씩 확인하겠다."
그의 손가락이 종이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그 손이 골드 크레센트의 후원금 장부와 이어져 있다면……."
현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핏빛 마기가 아주 얇게 일렁였다.
"본좌가 친히 그 장부를 펼쳐 이자까지 정산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