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가 수술을 너무 잘함

2화: 눈에 보이는 인체
눈을 뜨자 천장이 먼저 보였다.
희게 번진 형광등과 천장 타일 사이로 푸른 선들이 겹쳐 있었다. 처음에는 사고 충격으로 시야가 흔들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도 선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투명한 선들은 형광등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정확히는 눈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백 선생님. 제 말 들리세요?”
간호사가 손전등을 들어 강혁의 눈동자를 비췄다.
그 순간 강혁의 시야가 한 겹 벗겨졌다.
간호사의 손목이 피부 아래까지 훤히 보였다. 뼈와 힘줄은 흐린 회색이었다. 그 사이로 박동에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는 혈관이 푸른빛으로 떠올랐다.
강혁은 숨을 삼켰다.
손전등을 든 손이 조금 떨렸다. 피로한 얼굴과 얇은 손목도 보였다. 그런데 그보다 선명한 것은 손목 안쪽 요골동맥의 파동이었다.
[맥박 82회/분]
[리듬 규칙]
글자가 시야 한복판에 떠올랐다.
강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지러우세요?”
“아닙니다. 잠깐만요.”
눈을 떴다.
푸른 혈관도 숫자도 그대로였다.
“여기가 응급실입니까?”
“네. 교통사고로 오셨어요. 다행히 머리 CT에는 출혈이 없었고요. 옆구리 타박상하고 손목 염좌가 있어서 오늘은 관찰해야 해요.”
간호사는 침상 난간에 붙은 차트를 확인했다.
“안전벨트 자국 때문에 흉부 CT도 봤는데 급한 이상은 없었어요. 통증 심해지거나 구토 나면 바로 말씀하시고요.”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에는 얇은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고 왼손 손목에는 압박 붕대가 감겨 있었다.
온몸이 얻어맞은 듯 쑤셨다. 특히 오른쪽 옆구리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뜨겁게 찔렸다.
그런데 아픔보다 낯선 광경이 더 무서웠다.
강혁은 조심스럽게 자기 왼손을 들어 올렸다.
피부를 뚫고 본 것이 아니었다. 손을 바라보는 순간 손등이 얇은 층으로 분리됐다. 겉피부 아래의 작은 정맥과 손가락 뼈가 투명한 모형처럼 겹쳤다.
손목 붕대 아래에는 노란색으로 번진 부위가 있었다.
[연부조직 타박]
[골절 소견 없음]
[권장: 고정 및 경과 관찰]
강혁의 입술이 굳었다.
응급실 CT 판독과 똑같았다.
‘내 머리가 만든 환각이 아니다.’
그렇다고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환각이라면 어떻게 CT 결과를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방금 간호사가 말한 내용을 무의식이 글자로 바꾼 것일까.
강혁은 간호사가 돌아서려는 순간 낮게 불렀다.
“선생님.”
“네?”
“최근에 커피 많이 드십니까?”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야간만 서면 좀 마시는데요.”
강혁은 그녀의 심장 부근에 뜬 작은 노란 점을 봤다.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박동이 두 번 건너 한 번씩 아주 미세하게 빨라졌다가 돌아왔다.
“가끔 두근거리는 느낌 있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피곤해 보여서요. 너무 심하면 심전도 한번 찍어 보세요.”
간호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기 가슴을 쓸어내렸다.
강혁은 더 묻지 못했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는 순간 이 현상은 환각이 아니라 자신을 의심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터였다.
그때 관찰구역 바깥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침상 하나 비워요! 흉통 환자 들어갑니다!”
커튼이 걷히며 침상이 밀려 들어왔다.
쉰을 조금 넘겨 보이는 남자가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땀에 젖은 셔츠는 등에 들러붙어 있었고 얼굴은 밀가루처럼 하얬다.
“어디가 제일 아프세요?”
응급의학과 전공의 최민석이 침상 곁으로 붙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등이… 등이 같이 아파요.”
“언제부터요?”
“새벽에 화장실 갔다가 갑자기. 처음엔 체한 줄 알았는데.”
환자의 아내가 젖은 우산을 든 채 울먹였다.
“평소 혈압약은 드셨는데 오늘 아침에 너무 아프다고 쓰러졌어요. 심장병은 없었어요.”
최민석은 재빨리 산소를 올리고 심전도 전극을 붙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오상철입니다.”
“오상철 씨. 심전도 보고 검사하겠습니다. 일단 움직이지 마세요.”
강혁은 침상 난간을 잡은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저 같은 병원의 의사로서 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시야가 다시 흔들렸다.
오상철의 흉부 위로 얇은 푸른 격자가 펼쳐졌다. 피부와 갈비뼈가 투명해지고 폐가 양옆으로 밀려났다. 그 사이에서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었다.
심장 뒤를 지나가는 굵은 혈관 하나가 검붉게 부풀어 있었다.
강혁의 손가락이 난간을 움켜쥐었다.
대동맥이었다.
혈관 안쪽 벽에 가느다란 균열이 있었다. 그 틈으로 피가 파고들며 벽을 두 겹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붉은 그림자가 하행부를 따라 길게 번졌다.
[하행 대동맥]
[내막 파열 7.4mm]
[혈종 확장 중]
[치명적 파열 위험: 높음]
강혁의 심장이 한 번 세게 뛰었다.
등까지 찢어지는 흉통. 고혈압 병력. 심전도는 아직 뚜렷한 이상이 없다.
대동맥 박리.
“선생님.”
강혁이 불렀다.
최민석은 심전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네?”
“이 환자 조영 CT부터 잡아야 합니다. 대동맥 박리 의심됩니다.”
최민석이 그제야 강혁을 봤다. 환자복 위에 가운만 걸친 차림과 목 보호대를 훑은 눈빛이었다.
“백 선생님은 환자잖아요. 일단 누워 계세요.”
“통증 양상이 이상합니다. 등으로 방사되고 발병도 갑작스러워요.”
“그래서 CT는 잡을 겁니다. 심근효소도 같이 나가고요.”
“일반 흉부 CT 말고 혈관조영으로요. 혈압도 양팔 다 재고 베타차단제 준비해야 합니다.”
최민석의 눈썹이 움직였다.
“검사도 없이 약부터 쓰자는 겁니까?”
“대기하면 위험합니다.”
강혁은 말을 멈췄다.
자신의 눈에는 대동맥 벽이 찢어진 자리가 보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설명할 수 없는 확신으로 다른 과 전공의를 밀어붙이는 것도 무책임했다.
하지만 침상 위의 붉은 그림자는 멈추지 않았다.
오상철의 아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선생님들. 남편이 왜 이래요? 심장마비예요?”
강혁은 그녀의 손이 남편 팔목을 놓지 못하는 것을 봤다. 조금 전 자신에게 매달렸던 박정호의 딸과 똑같은 손이었다.
누군가는 지금 당장 답을 해 줘야 했다.
“심장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혁은 아내에게 먼저 말했다.
“큰 혈관에 문제가 생겼는지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이 늦어지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 빨리 해 주세요.”
아내가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최민석은 짧게 숨을 내쉬더니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영 CT로 바꿉니다. 혈압 양팔 다 재고 니카르디핀 준비해 주세요. 흉부외과에도 콜 넣어요.”
“네.”
침상이 영상의학과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혁은 따라가려다 옆구리 통증에 잠시 몸을 굽혔다. 간호사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백 선생님은 여기 계셔야 해요.”
“결과만 확인하겠습니다.”
“환자분도 환자예요.”
맞는 말이었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고도 발을 떼지 못했다. 관찰구역 출입문 너머로 침상이 사라질 때까지 환자의 가슴 위에 번지는 붉은 빛을 보고 있었다.
몇 분 뒤 결과가 올라왔다.
최민석이 판독 화면을 띄운 순간 표정이 굳었다.
“하행 대동맥 박리… 혈종도 꽤 크네.”
화면 속 하얀 혈관은 강혁이 본 것보다 훨씬 평면적이었다. 하지만 균열의 위치는 정확히 같았다.
최민석은 곧바로 전화를 들었다.
“흉부외과 당직 누구예요? 네. 대동맥 박리 하나 있습니다. 환자 지금 혈압 잡는 중이고요.”
그때 오상철이 갑자기 몸을 들썩였다.
“아파… 더 아파요!”
모니터의 혈압 수치가 빠르게 내려갔다.
강혁의 눈에는 혈종 끝이 아래로 길게 찢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파열 진행]
[수술 개입 가능 시간: 11분]
숫자가 붉게 깜빡였다.
“혈압 떨어집니다!”
간호사가 외쳤다.
최민석이 환자 곁으로 뛰어갔다.
“수액 올리고 수술실 다시 확인해요! 흉부외과 당직은?”
“교수님이 오고 계시는데 이십 분 걸린답니다.”
이십 분.
강혁은 고개를 들었다. 화면의 숫자는 열 분 남짓이었다.
능력은 시간을 알려 줬다. 죽음이 어디까지 왔는지도 보여 줬다.
그렇다고 손을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강혁이 환자의 흉부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가느다란 선 하나가 떠올랐다. 갈비뼈 사이를 피해 대동맥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푸른 궤적이었다.
[권장 진입 경로]
[예상 생존 가능성 41%]
[집도자 숙련도 반영 필요]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사고 전까지 자신은 남의 빈자리를 메우는 전공의였다. 수술실 한쪽에서 기구를 건네고 차트를 쓰며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환자는 기다릴 수 없었다.
강혁은 목 보호대를 풀었다.
간호사가 놀라 다가왔다.
“백 선생님, 안 됩니다.”
“수술실 어디가 비어 있습니까?”
최민석이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당직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됩니다. 제가 먼저 열겠습니다.”
“외과 전공의가 흉부 대동맥을요? 지금 다치신 몸으로?”
“제가 수술을 보조한 적은 있습니다. 파열 위치도 압니다.”
“그걸 어떻게 압니까?”
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가리켰다. 혈압은 여든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오상철의 아내는 남편의 손을 붙든 채 입술만 달싹였다.
“수술할 수 있나요?”
그 질문에 강혁은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수치가 보인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푸른 선을 따라가도 메스를 쥔 손이 흔들리면 끝이었다. 자신의 손목은 아직 아팠고 옆구리는 숨을 쉴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지금 여기서 물러나면 이 남자는 다음 결정을 기다리다 죽는다.
강혁은 오상철의 눈을 마주 봤다. 흐려진 눈동자가 겨우 그를 향했다.
“오상철 씨.”
“네…”
“지금 바로 수술실로 가야 합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오상철은 대답 대신 희미하게 눈을 감았다.
강혁은 최민석을 향해 말했다.
“수술실 호출해 주세요. 흉부외과에 백강혁이 먼저 들어간다고 전하시고요.”
최민석의 표정에는 여전히 불신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모니터가 다시 날카롭게 울었다.
간호사가 수술 동의서를 찾기 위해 뛰었다. 침상이 방향을 틀었다. 복도 끝 수술실 자동문이 열리며 차가운 빛이 흘러나왔다.
강혁은 떨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 위로 푸른 선이 다시 번졌다.
이번에는 그것이 환각이 아니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선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처럼 환자의 가슴 위에 선명하게 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