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을 가진 외과의가 수술을 너무 잘함

프롤로그
사람들은 의사가 사람을 살린다고 믿었다.
백강혁도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병원에서는 사람을 살리기 전에 먼저 누군가의 빈자리를 메워야 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 떨어졌다.
1화. 3년 차 전공의의 지옥
새벽 두 시 십칠 분.
응급실 모니터가 짧고 날카롭게 울었다.
“백 선생님! 침상 8번 혈압이 또 떨어져요!”
강혁은 차트에서 눈을 뗐다. 오늘만 세 번째였다.
침상 8번의 박정호는 검은 변을 쏟고 실려 온 예순넷 남자였다. 상부 위장관 출혈이 의심됐지만 당직 소화기내과는 응급 내시경 하나를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피는 계속 빠지는데 원인을 직접 확인할 손이 모자랐다.
“수액 한 번 더 올리고 교차시험한 혈액 두 단위 바로 연결해 주세요. 산소는 유지하고요.”
“네!”
강혁은 침상으로 다가가 환자의 손목을 짚었다.
맥박은 가늘고 빨랐다. 손끝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모니터 수치는 아직 버티는 척하고 있었지만 환자의 피부색은 이미 답을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 제 말 들리세요?”
환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피를… 또 토했나?”
“조금 하셨습니다. 지금 잡고 있어요.”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강혁은 정말로 붙잡고 있었다. 다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그때 가운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외과 당직방 단체 대화였다. 같은 연차 전공의가 고열로 못 나온다는 메시지 아래에 당연하다는 듯 강혁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병동 처치, 수술 전 동의서, 아침 회진 자료까지 대신 처리하라는 지시였다.
강혁은 화면을 보고 조용히 잠갔다.
어제 오전부터 외래 환자 열두 명을 봤다. 오후에는 담낭절제술 두 건의 보조를 섰다. 저녁에는 중환자실 보호자 설명을 세 번 했다. 그 사이 내린 식사는 식어 버린 삼각김밥 하나였다.
그런데도 할 일 목록은 줄어들지 않았다.
“선생님도 좀 앉으세요.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젊은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압 한 번 더 확인하고요. 소변량도 체크해 주세요.”
강혁은 대답 대신 지시를 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너무 오래 써서 이제는 목소리도 나지 않았다.
응급실을 나서자마자 수술실 앞 복도에서 한성호 과장이 그를 불렀다.
“백강혁.”
“네, 과장님.”
한성호는 수술표를 들여다본 채 고개도 들지 않았다. 가운 아래로 보이는 셔츠 소매는 구김 하나 없었다. 새벽 두 시를 넘긴 병원에서 그 사람만 다른 시간대를 사는 것 같았다.
“오전 첫 수술 동의서 아직이지?”
“보호자가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입니다. 도착하면 바로 받겠습니다.”
“전화로 받아. 그리고 6번 방 CT 판독 정리해서 내 방에 올려.”
“6번 방 환자는 지금 혈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소화기내과 내시경 대기 중이고 쇼크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제야 한성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 환자 수술할 거 아니잖아.”
“악화하면 외과 협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복부에 자극 징후도 있고요.”
“필요할 수 있다는 말로 수술방을 비워 두겠다는 거야?”
한성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날카로웠다.
“오전 수술 두 건만 밀려도 병원 평가가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보호자 민원까지 네가 다 받을 거고?”
강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환자의 혈압보다 수술실 회전율을 먼저 묻는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환자가 쇼크로 넘어가면 수술도 더 어려워집니다.”
“3년 차가 말은 잘해.”
한성호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펠로우 자리 얘기 아직 살아 있는 거 알지? 네가 조금만 영리하면 나도 편하게 밀어 줄 수 있어.”
강혁의 손끝이 굳었다.
그 자리는 늘 그렇게 쓰였다. 밤을 새우라는 명령 뒤에. 남의 당직을 대신하라는 요구 뒤에. 환자보다 서류를 먼저 처리하라는 말 뒤에.
“네가 할 일이나 해. 환자 상태는 내시경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한성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강혁은 수술표를 든 그의 등을 잠시 봤다.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입 안쪽을 세게 깨물어야 목까지 치밀어 오른 말이 새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응급실 쪽으로 걸었다.
침상 8번 앞에는 환자의 딸이 서 있었다. 젖은 패딩 소매에서는 빗물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자는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을 보다가 강혁이 다가오자 두 손을 모았다.
“선생님, 아버지 괜찮으세요?”
강혁은 환자와 모니터를 번갈아 봤다.
“출혈이 의심됩니다. 지금은 피를 보충하면서 내시경팀이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버티게 하는 중입니다.”
“수술하면 살 수 있죠?”
그 질문은 늘 가장 늦게 나왔다. 그런데 의사에게는 가장 먼저 답을 요구했다.
“아직 수술을 결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상태가 더 나빠지면 제가 바로 외과 쪽 판단을 하겠습니다.”
“살려 주세요.”
짧은 세 글자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놓치지 않겠습니다.”
확답은 아니었다. 확답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 말만은 지키고 싶었다.
잠시 뒤 박정호의 맥박 그래프가 길게 꺼졌다. 강혁은 곧바로 침상 안으로 들어갔다.
“혈압 다시 재요. 수혈 속도 올리고 다리 올려 주세요. 소화기내과에 다시 연락해서 지금 안 오면 쇼크 전환이라고 전해주세요.”
간호사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강혁은 환자의 복부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뻣뻣해진 근육과 식은땀. 수치만 보면 아직 애매했다. 하지만 환자는 사람이고 수치는 늘 한 박자 늦었다.
“백 선생님, 내시경실에서 받겠답니다.”
“침상 이동 준비해요. 혈액은 연결한 채로 갑니다.”
환자가 이송 침대로 옮겨질 때 딸이 강혁의 가운 끝을 붙잡았다.
“선생님도 같이 가시는 거죠?”
강혁은 손등을 살짝 내려다봤다. 구겨진 가운 소매와 마른 소독약 자국이 보였다.
“문 앞까지 보겠습니다.”
내시경실 앞에서 환자를 넘긴 뒤에도 그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출혈점만 잡히면 된다. 그때까지 혈압만 버텨 준다면.
벽 너머에서는 금속 기구가 부딪히는 소리와 짧은 지시가 이어졌다. 강혁은 손에 남은 환자의 맥박 감각을 떨쳐 내지 못했다. 얇고 빠른 맥박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는 경고처럼 손가락 끝에 남아 있었다.
그는 본래 새벽 한 시에 끝났어야 할 수술 기록을 아직 쓰지 못했다. 병동에서는 수술 뒤 통증 조절이 안 되는 환자가 다시 호출할 수도 있었다. 오전 수술 환자의 보호자는 언제 도착할지 몰랐다.
그래도 지금은 차트를 펼칠 수 없었다. 내시경실 문이 열릴 때까지는 다른 어떤 일도 이 환자보다 급하지 않았다.
복도 끝 자동판매기 앞에서 인턴 하나가 졸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강혁은 그 모습을 보고도 부러워할 힘이 없었다. 잠깐 앉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멀게 느껴졌다.
새벽 다섯 시가 가까워서야 내시경실 안에서 간호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출혈 부위 잡았대요. 일단 지혈됐습니다.”
강혁은 벽에 등을 기댔다.
온몸의 힘이 늦게 빠져나갔다. 눈을 감자마자 수십 개의 호출음이 귀 안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한성호였다.
― 오전 회진 전까지 서류 들고 내 방으로 와. 빠뜨린 거 있으면 네 책임이야.
강혁은 메시지를 지우지 못했다. 손에 든 화면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복도 창문 밖으로 잿빛 새벽이 번지고 있었다. 비는 오히려 더 거세졌다.
오전 회진과 수술 전 준비를 끝낸 뒤에야 강혁은 겨우 퇴근 지시를 받았다. 서른여섯 시간을 병원 안에서 보낸 몸에 퇴근이라는 말은 휴식보다 다음 호출 전의 유예처럼 들렸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발걸음이 자꾸 옆으로 쏠렸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시동을 걸자 창문에 맺힌 물방울이 헤드라이트에 번졌다.
집까지는 이십 분이었다.
잠깐만 눈을 붙이면 됐다. 샤워도 하지 않고 침대에 쓰러져 두 시간만 자면 됐다.
병원 밖 도로는 물빛을 뒤집어쓴 채 번들거렸다.
강혁은 첫 번째 신호를 늦게 봤다.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차가운 빗바람이 뺨을 때렸지만 눈꺼풀은 더 무거워졌다.
두 번째 교차로를 지날 때 휴대폰이 울렸다.
응급실이었다.
강혁은 웃음도 아닌 숨을 짧게 뱉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누군가가 또 자기 이름을 찾을 것이다. 받으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전방의 화물차 브레이크등이 붉게 번졌다.
강혁은 핸들을 꺾었다.
타이어가 빗물을 가르며 비명을 질렀다. 차체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순간 시간이 늘어진 것처럼 느려졌다.
핸들 위에 얹힌 자신의 손등이 보였다. 창밖의 번개와도 다른 푸른 선 하나가 손목 위로 떠올라 있었다.
가느다란 선은 피부 아래 혈관처럼 손등을 지나 팔꿈치 쪽으로 번졌다.
강혁은 그것이 환각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했다.
둔탁한 충격이 전신을 꿰뚫었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금이 간 앞유리와, 그 너머에서 한 번 더 선명해진 푸른 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