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99화: 엎어진 약탕관과 평화의 조약
천마 교주가 완전히 무력화되고 무림맹 총본산이 평화를 되찾자, 무림맹주 혁련진은 정파와 잔존 사파 세력, 그리고 마교의 온건파 대표들을 모두 소집하여 강호의 백 년 평화를 약조하는 '백년화평약조(百年和平約條)' 체결식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태극대성전 중앙 테이블 위에는 정파와 사파의 평화 의지를 담은 황금색 비단 두루마리 조약서가 펼쳐져 있었고, 테이블 상석에는 어김없이 정파의 살아있는 대성인 남궁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자에 기댄 채 끙끙 앓아눕고 있던 남궁성은 극심한 피로와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우, 입안이 왜 이리 끈적거리노…… 머리는 또 왜 이리 깨질 것 같아……."
그는 남궁휘가 머리 식히기와 기력 회복을 위해 달여 온 지독하게 쓰고 뜨거운 '한방 약탕관(한약)'을 앞에 두고 있었다. 약이 너무나 쓰고 냄새가 독해 들이켜기를 망설이며, 탕관 손잡이를 쥔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가 뜨거운 약탕관을 한 손으로 들고 들이켜려던 바로 그 순간, 뇌맥이 세차게 흔들리며 1각(15분) 뒤의 미래가 번쩍였다.
대략 1각 뒤의 미래.
조약서 서명식이 진행되는 엄숙한 타이밍.
사파 세력의 밀사로 위장한 마교 강경파의 생존 첩자가 소매 속에 숨겨둔 무음 독액 발사 장치인 '화골수(化骨水)'를 뿜어낸다. 뿜어진 독액이 황금색 조약서 위에 뿌려져 종이를 녹이고 연기를 내뿜어 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동시에 조약서 조항 중, 사파 측이 교묘하게 위조해 둔 독소 조항(정파의 영토를 억지로 양도받는 불평등 조약 구절)에 서명이 완료되어 정파가 불리한 조약에 묶이게 되는 이중의 파국이 보였다.
"으악! 불평등 조약 사기에 독액 테러까지! 이 사파 놈들은 조약식 날까지 사기를 치는구나!"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독액을 무력화하고 위조된 독소 조항을 지워버리려면, 뜨겁고 진한 검은색 약탕(황과 미네랄 성분이 가득 든 한약)을 조약서의 특정 구절 위에 한 번에 쏟아부어야 했다.
약탕의 끈적한 성분이 독액의 강산성을 완벽하게 중화시킴과 동시에, 검은 약물이 사파가 위조해 둔 독소 조항 글씨 위를 까맣게 덮어 가려버림으로써 정파에게 가장 유리한 평등 조약으로 재조정해 억지로 서명하게 만들어야 했다.
'내 한약 탕관을 조약서 중앙의 사기 조항 글씨 위로 통째로 엎질러야 해. 쏟아진 검은 약탕이 독소 조항을 가려 지움과 동시에, 뿜어진 독액을 만나 하얗게 중화되어 무해한 수증기로 날아가게 조율하는 거다!'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과 한약의 쓴 냄새 속에서 약탕관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뇌맥의 강렬한 발작으로 인해 손가락 끝에 쥐가 났고, 그의 손목이 밖으로 휙 비틀렸다.
"끄학……!"
경련을 일으킨 남궁성의 손에서 뜨거운 황동 약탕관이 미끄러져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철퍼덕! 치이이익!
탕관 속에 가득 차 있던 칠흑같이 검은 한약 탕물이 조약서 테이블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검은 한약물은 황금색 비단 조약서의 오른쪽 아래 구석, 즉 사파 밀사들이 교묘하게 조작해 둔 영토 양도 독소 조항 글씨 위를 완벽하게 뒤덮으며 까만 얼룩으로 지워버렸다.
바로 그 찰나, 사파 밀사로 위장한 자객이 소매 속의 화골수 장치를 가동해 조약서를 향해 액체를 뿜어냈다.
푸쉭!
하지만 뿜어낸 강산성 독액은 남궁성이 쏟아부은 뜨거운 알칼리성 한약 탕물 위로 떨어졌고, 찰나의 순간 격렬한 산회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연기와 함께 유기 오액으로 완벽하게 중화되어 맑은 한약 향 수증기로 날아갔다.
"자, 자객이다! 밀사가 독액을 뿜었다!"
"무림맹 조약서가 훼손되지 않고 한약 향만 가득하다!"
남궁휘와 무사들이 즉각 날아올라, 당황하여 굳어 있던 사파의 자객을 단숨에 포획하고 쇠사슬로 묶었다.
체결식장은 일순간 숙연해졌다.
맹주 혁련진은 한약물 얼룩에 뒤덮여 위조된 독소 조항이 완벽하게 지워진 조약서를 내려다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남궁 소협……! 적이 조약서에 교묘하게 적어둔 영토 침탈 독소 조항의 위치를 꿰뚫어 보시고, 자객이 뿜어낼 화골수의 약학 성분마저 계산해 한약을 엎질러 중화하심과 동시에 사기 조항을 가려 지워버리신 것이오?! 이 어찌 법학과 조약, 그리고 약학마저 천리 밖에서 다스리는 성인이 아니란 말이오!"
사파와 마교 온건파 대표들 역시 무릎을 꿇으며 경탄했다.
"소가주 소협의 무시무시한 혜안 앞에서는 우리의 교묘한 사기 수조차 어린아이 낙서에 불과했구려. 소협의 의로움과 지혜에 굴복하여, 다시는 사기를 치지 않고 평등한 평화 조약에 정중히 서명하겠소!"
남궁성은 쏟아진 한약 대접을 바라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내 약…… 남궁휘가 세 시간 동안 다려온 비싼 약인데 다 쏟아졌네…… 테이블은 엉망이 되었구만…… 나 진짜 너무 써서 머뭇거리다 놓친 것뿐인데…… 살려줘…….'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백년화평약조 체결식마저 한약 쏟기 하나로 적의 독액 테러와 사기 조항을 차단하며, 정파 무림 전체의 구세주이자 살아있는 '무림성인(武林聖人)'으로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