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94화: 떨어진 옥패와 지하의 어둠
태극대성전 바닥이 열리고 드러난 지하 통로는 칠흑 같은 암흑과 음산한 바람으로 가득 찬 거대 석조 계단이었다.
좌우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천 장 깊이의 아득한 낭떠러지였고,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무림맹 토벌대 무사들은 횃불을 든 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적들의 기습이 날아올지 모르는 극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궁휘의 등에 업힌 채 지하 계단을 내려가던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과 함께 암흑이 주는 멀미로 인해 신음하고 있었다.
"하아…… 어두워서 눈앞이 핑핑 돈다…… 내 눈……."
빛 하나 없는 밀폐된 지하 공간의 흔들림은 그의 심각한 편두통 뇌맥을 망치로 때리듯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며 품속에 넣어둔 남궁세가 공식 소가주 '옥패(玉牌)'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가 옥패를 쥔 채 바들바들 떨던 바로 그 순간, 뇌맥이 세차게 흔들리며 1각(15분) 뒤의 미래가 번쩍였다.
대략 1각 뒤의 미래.
토벌대가 지하 계단의 굽잇길(전환점)을 돌아서는 순간.
계단 옆 낭떠러지 바위 절벽 틈새에 매달려 대기하던 마교 최고의 은형 살수단 '야율조(夜律組)'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횃불을 끈 뒤, 무음 암기검인 '암영검(暗影劍)'으로 무사들의 목을 벤다. 암흑 속에서 시야를 잃은 무림맹 고수들은 손도 쓰지 못하고 계곡 아래로 추락해 절멸하는 비참한 결말이었다. 자객들은 어둠 속에서만 기운을 발휘하는 특수한 음공 보조 위장막을 쓰고 있었다.
"으악! 어둠 속의 암살단이라니! 불을 켜야 해! 한순간에 눈뽕(?)을 시켜 어둠 속 위장을 풀어버려야 한단 말이야!"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어둠을 밝히고 자객들을 처단하려면, 지하 계단 벽면 구석에 안배된 고대 정화 장치인 '인화등(燐火燈)' 격발 스위치를 작동시켜 사방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야 했다. 그 스위치는 계단 우측 난간 아래, 손가락 굵기만 한 미세한 구동 레버 형태로 숨겨져 있었다.
'내 옥패를 계단 아래로 떨어뜨려 굴려야 해. 옥패가 바위를 때리며 회전력을 얻어 굴러 내려가다가, 난간 아래 숨겨진 인화등 수동 격발 레버를 쾅! 하고 정확하게 들이받아 작동시키게 만드는 거다!'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과 어둠 속의 현기증 속에서 옥패를 쥔 손가락에 힘을 풀려 했다.
하지만 뇌맥의 강렬한 편두통 발작이 찾아와 온몸에 강한 마비 경련이 일어났고, 그의 손목이 밖으로 휙 미끄러졌다.
"끄흐윽……!"
경련으로 손을 털어낸 남궁성의 손끝에서 큼직하고 단단한 청백옥 옥패가 팅! 하고 계단 바닥으로 튕겨 날아갔다.
데굴데굴데굴---! 쩍!
옥패는 돌계단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굴러 내려가더니, 계단 굽잇길 모퉁이 벽면의 난간 지지대 틈새 속으로 쏙! 하고 정확히 처박혔다.
쩍! 드르륵!
단단한 청백옥 옥패가 박힌 충격으로, 난간 아래 숨겨져 있던 무쇠 수동 격발 레버가 덜컥! 하고 아래로 세차게 눌려 내려갔다.
지직! 치이이익---!
찰나의 순간, 지하 동굴 천장과 벽면에 매설되어 있던 수십 개의 고대 인화등이 연쇄적으로 격발되며, 태양처럼 눈부신 백색 인화 광명을 동굴 전체에 벼락처럼 뿜어냈다.
번쩍---!!!
"아악! 내 눈!"
계단 옆 절벽 틈새에 매달려 습격 타이밍을 노리던 마교의 은형 살수단 야율조 대원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암흑 속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압 광명에 안구가 멀어 비명을 질렀다.
위장막이 풀린 자객들은 눈을 움켜쥐고 중심을 잃은 채 절벽 아래 천 장 깊이의 아득한 계곡 밑으로 추풍낙엽처럼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자멸했다.
"자객들이다! 낭떠러지 바위 틈새에 마교의 은형 살수단이 매달려 있었다!"
"빛에 눈이 멀어 지 혼자 떨어지고 있다! 남은 적들을 체포하라!"
남궁휘와 무림맹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계단 밑으로 달려가, 눈이 멀어 허우적거리는 마교 자객 수십 명을 아주 손쉽게 포획하여 쇠사슬로 묶었다.
지하 계단의 기습 매복 진형이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완벽하게 와해된 것이다.
남궁휘의 등 뒤에 매달린 채, 계단 아래로 굴러가 조각나 깨진 소중한 가문의 옥패를 보며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궁성을 본 맹주 혁련진은 눈물을 흘리며 포권을 취했다.
"남궁 소협……! 적의 어둠 속 위장 한계와 고대 인화등의 매설 기어의 위치를 간파하시고, 자신의 소가주 옥패를 던져 레버를 정확히 타격해 대낮처럼 동굴을 밝히신 것이오?! 정파를 구하기 위해 가문의 최고 가보인 옥패마저 아낌없이 던지시다니……!"
남궁휘 역시 흐느끼며 포권을 취했다.
"형님…… 옥패를 잃고 눈물 흘리시는 저 비장하고 숭고한 자태, 이 남궁휘는 평생 형님의 지혜의 깊이를 우러러보겠습니다!"
남궁성은 깨진 옥패 파편을 멍하니 바라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소가주 공식 옥패…… 엄청 비싼 최고급 옥인데 깨져서 쪼가리가 났네…… 내 보물…… 나 진짜 머리 아파서 떨어뜨린 것뿐인데…… 불은 왜 켜지고 난리야…… 집에 가고 싶다…….'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지하 성전의 어두운 길목마저 옥패 던지기 하나로 적의 은형 살수단을 눈뽕시켜 파멸로 이끌며, 무림 역사상 가장 빛나는 '광명군사(光明軍師)'로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