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92화

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92화: 부서진 붓대와 흑혈의 고서

천마비각의 독거미 함정까지 해제한 무림맹 토벌대는, 마침내 비각의 가장 깊숙한 안쪽 철제 제단 위에 모여섰다.

그 제단 위에는 마교의 시조이자 전설적인 인물인 천마(天魔)가 남긴 극비의 예언서이자 최종 계획이 담긴 고서, '흑혈천마록(黑血天魔錄)'이 든 무쇠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는 복잡하게 얽힌 잠금 장치로 굳게 밀봉되어 있었고, 정파의 장수들은 어떻게 이 보물을 안전하게 꺼낼지 몰라 제단 주위를 둘러싸고 토론을 벌였다.

제단 옆 탁자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있던 남궁성은 뇌맥이 쪼개지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하아…… 대가리가 완전히 부서진다…… 살려줘……."

계속된 미래 예지 사용의 대가로 뇌맥의 편두통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는 지독한 격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정신을 집중해 보고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묵직한 무쇠로 제작된 '철필(무쇠 붓)'의 붓대를 꼼지락거리며 만지고 있었다.

그가 철필을 쥔 채 관자놀이를 누르며 신음하던 바로 그 순간, 뇌맥이 강하게 흔들리며 1각(15분) 뒤의 미래가 번쩍였다.
대략 1각 뒤의 미래.

무림맹의 장로가 고서 상자를 강제로 열기 위해 무쇠 빗장을 철퇴로 강타한다.
그 순간 상자 내부의 마찰 격발 장치가 작동하여, 상자 주변에 가득 차 있던 고열의 마교 화약인 '흑염화진(黑炎火塵)'이 폭발한다. 대연무장 탁자 크기의 비각 전체가 엄청난 화염과 폭음 속에 붕괴하고, 비각에 모여 있던 맹주 혁련진과 선봉대 고수 전원이 시체가 되고 고서마저 타버리는 끔찍한 결말이었다.

"으악! 보물 상자에다가 먼지 폭탄을 장치해 놨잖아! 저걸 그냥 때렸다간 다 같이 가루가 될 판이야!"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화진 폭발을 막으려면, 고서 상자 우측 측면에 뚫려 있는 직경 5푼 크기의 미세한 '안전핀 주입구(유지보수용 안전핀 구멍)' 속으로 단단한 무쇠 심(철필의 붓대)을 강제로 밀어 넣어 격발용 마찰 기어가 돌지 못하게 사전 차단해야 했다.

'내 손에 든 이 튼튼한 철필의 무쇠 붓대를 강하게 내리쳐 둘로 부러뜨려야 해. 그리고 부러진 붓대의 무쇠 파편 끝부분이 탁자 위를 굴러가더니, 정확하게 고서 상자 측면의 안전핀 주멍 속으로 콰직! 하고 박혀 들어가 기어를 꽉 물리게 조율하는 거다!'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 속에서 철필을 움켜잡고 관자놀이를 꽉 눌렀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뇌맥을 관통하는 강렬한 경련 발작이 찾아와, 다리와 상체에 강한 힘이 실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끄흐윽……!"

앞으로 자빠진 남궁성의 손에 쥐여진 무거운 철필이 탁자 위의 거대 청석 모퉁이를 세차게 강타했다.
깡---!

엄청난 기의 반동(?)과 힘에 밀려 단단한 무쇠 철필의 붓대가 반으로 동강 나 부러졌다.
부러진 날카로운 무쇠 붓대 자락은 탁자 위 대리석 표면을 따라 팽글팽글 돌며 미끄러져 굴러가더니, 제단 위에 놓여 있던 흑혈천마록 고서 상자 우측 측면의 미세한 구멍 속으로 쐐액! 하고 박혀 들어가듯 정확히 스며들어 가 박혔다.

쩍! 드르륵!

무쇠 파편이 구멍 내부의 톱니 마찰 장치를 단단하게 틀어쥐며 고정 핀을 꽉 잠가 버렸다.

바로 그 찰나, 마교의 잔당을 심문해 비밀 폭탄 장치가 되어 있음을 뒤늦게 눈치챈 맹주 혁련진이 외쳤다.
"상자에 손대지 마시오! 폭탄 장치가 되어 있소!"

하지만 이미 상자의 빗장을 당기던 장수의 손끝에 의해 상자 뚜껑이 덜컥 열린 참이었다.
드르륵. 탁.

모두가 사색이 되어 눈을 질끈 감았으나, 흑염화진의 폭사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남궁성이 날려 보낸 무쇠 붓대 자락이 격발 기어를 완벽하게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자는 안전하게 열렸고, 그 안에는 붉은 비단에 싸인 흑혈천마록 고서가 온전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보, 폭탄이 작동하지 않았다! 상자가 안전하게 열렸다!"
"고서가 온전하다! 마교의 최종 대음모 계획서다!"

남궁휘와 무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고서를 회수했고, 고서의 첫 장에 그려진 천마 교주의 생존 및 낙양 총본산 아래 지하 밀실로 통하는 최종 의식 제단의 지도를 확인하고 기겁했다.

"천마 교주가 살아있다! 그가 무림맹 본산 아래의 지하 밀실에서 정파의 영맥을 끊기 위한 최종 주술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비각 내부의 고서 회수가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완벽하게 끝났다.

탁자 옆에 엎어진 채, 부러진 무쇠 철필 파편을 바라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궁성을 본 맹주 혁련진은 극도의 경외감에 눈물을 흘렸다.

"남궁 소협……! 적의 고서 상자 측면에 숨겨진 안전핀의 규격과 폭진 장치의 이치를 찰나에 계산하시고, 무쇠 철필을 꺾어 정확한 각도로 기어를 고정하신 것이오?! 고서를 안전하게 건지기 위해 필통의 붓 한 자루마저 무학의 신물로 사용하시다니……!"

남궁휘 역시 무릎을 꿇으며 흐느꼈다.
"형님…… 붓 한 자루로 마교의 최종 보물을 인화 없이 구출해 내시다니, 소생은 평생 형님의 지혜의 털끝만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남궁성은 반동으로 저려오는 손목을 주무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내 철필…… 제일 아끼는 필기구인데 부러졌잖아…… 손가락 뼈가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네…… 나 진짜 머리 아파서 관자놀이 꾹 누르려던 것뿐인데…… 살려줘…….'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흑혈곡의 보물 회수 작업마저 철필 꺾기 하나로 적의 무적 폭진 상자를 해제하며, 무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유쾌한 '신필군사(神筆軍師)'로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