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77화: 부서진 등잔과 내성의 밤
내성 돌파를 목전에 둔 깊은 밤, 숭산 요새 내부의 기압은 극도로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무림맹 본진의 군사들은 다음 날 치러질 최후의 총공세를 대비해 장비를 점검하며 긴장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사령부 한구석의 텐트 안, 남궁성은 어둠 속에서 침상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 추워…… 대가리는 왜 이리 또 지끈거리는가……."
그는 낮의 먹물 소동과 계속된 긴장 상태로 인해 심각한 두통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산속의 밤바람은 텐트 틈새를 사정없이 비집고 들어와 뼈마디를 시리게 만들었다.
그는 텐트 탁자 위에 켜진 낡은 기름등잔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불꽃이 흔들리며 매연과 그을음을 내뿜고 있어 가뜩이나 아픈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저 빌어먹을 등잔불을 꺼야겠어. 눈이 부시고 그을음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군.'
남궁성이 등잔을 끄기 위해 몸을 일으켜 손을 뻗던 바로 그 찰나, 머릿속에서 강렬한 백색 스파크가 튀었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요새 내성 깊은 곳에서 마교가 자랑하는 비밀 방화 특공대 '지화조(地火組)'가 은밀히 침투한다. 그들은 공기와 접촉하면 폭발적으로 타오르는 극약 인화 물질인 '지화유(地火油)' 단지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무림맹의 식량과 마초가 쌓인 군량 기지 텐트에 도달하여 지화유를 뿌려 불을 붙인다. 순식간에 요새 전체가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고, 정파 무사들은 식량과 무기를 잃고 우왕좌왕하다 마교의 밤 기습에 퇴각하는 대참사가 보였다.
"으악! 이번에는 방화 테러야?! 이 녀석들은 잘 때만 되면 불을 지르고 난리야!"
남궁성은 속으로 절규했다.
자객들은 공기 마스크를 쓴 채 텐트촌 뒤편의 마른 수풀을 통해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그들이 짊어진 지화유 단지는 뚜껑이 허술해 이동하는 궤적을 따라 미세하게 기름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흘러내린 지화유 자국에 미리 불을 붙여, 자객들이 군량 기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들이 짊어진 기름 단지째로 역폭발을 시켜버려야 해. 마침 내 텐트 입구 옆 수풀과 그들의 침투 경로가 한 줄로 연결되어 있군.'
남궁성은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등잔을 조준했다.
그가 등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뇌맥의 마비로 다리가 풀려 탁자를 들이받고 넘어진다. 넘어지며 탁자 위에 있던 기름등잔이 텐트 입구 밖 수풀 쪽으로 튕겨 날아가 깨진다.
깨진 등잔에서 흘러나온 불씨가 텐트 밖 수풀에 묻어 있던 지화유 흔적에 닿는 순간, 불길이 역방향으로 벼락처럼 타올라 수풀 속에 매복해 기어오던 자객들의 몸에 실린 지화유 단지를 직격하여 폭발시키는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좋아, 등잔불을 던져라!'
남궁성은 이마를 짚으며 손을 뻗어 등잔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를 도끼로 찍는 듯한 지독한 두통이 찾아왔다.
"끄아악……!"
다리가 꺾인 남궁성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탁자 모서리를 무릎으로 세차게 걷어찼다.
쿠당탕!
탁자가 넘어가며 그 위에 놓여 있던 기름등잔이 텐트 입구 장막을 뚫고 밖으로 휙 날아갔다.
쨍그랑!
등잔은 텐트 밖 마른 수풀 더미 위로 떨어지며 요란하게 깨졌고, 불타는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앗! 불이다! 형님 텐트에 불이 났다!"
불침번을 서던 남궁휘와 무사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바로 그 찰나!
수풀에 붙은 등잔 불씨가, 수풀을 헤치고 기어오던 마교 지화조 자객들의 가죽 단지에서 미세하게 흘러나와 묻어 있던 지화유 흔적과 접촉했다.
치이이이이익! 콰아아아앙!!!
엄청난 기세로 붉은 불길이 수풀을 타고 뱀처럼 번개같이 흘러가더니, 저 멀리 수풀 속에 엎드려 숨어 있던 자객들이 짊어진 지화유 단지를 정타로 때리며 대폭발을 일으켰다.
"끄아아아악! 폭탄이 터졌다!"
"내 몸에 불이 붙었다! 살려줘!"
수풀 속에서 불꽃 인간이 된 마교 자객 수십 명이 비명을 지르며 굴러 나왔고, 등에 멘 단지들이 연쇄 폭발을 일으키며 수풀 전체가 지옥의 불바다로 변했다. 자객들은 군량 기지에 발 한 짝 대보지도 못하고 자폭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쓰러졌다.
"방화범들이다! 마교의 습격조가 수풀 속에 있었다!"
"물러서라! 물을 뿌려 제압하라!"
달려온 남궁휘와 정파 무사들은 불길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적들을 아주 손쉽게 체포하고 불을 껐다.
상황이 종료된 후, 연기로 시커멓게 휩싸인 텐트 밖으로 기어 나와 콜록거리는 남궁성을 본 맹주 혁련진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남궁 소협……! 적들이 공기와 닿으면 터지는 지화유를 가지고 침투할 것을 미리 내다보시고, 자신의 등잔을 던져 지화유의 흘러내린 자락에 정확히 점화하여 적들을 폭사시키신 것이오?! 이 어찌 물리적 연소의 이치마저 천리 밖에서 꿰뚫어 보시는 신산이란 말이오!"
남궁휘 역시 불에 그슬린 형님의 옷자락을 붙잡고 흐느꼈다.
"형님…… 스스로를 태우는 연기의 고통 속에서도 군의 식량을 지켜내시다니, 이 은혜는 정녕 천하 무림의 영웅들이 대대손손 기려야 할 것입니다!"
남궁성은 얼굴에 그을음이 가득 묻은 채,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등잔이 왜 저기로 날아가서…… 내 텐트가 반쯤 타버렸네…… 이 추운 겨울밤에 나는 이제 어디서 자란 말이냐…… 진짜 춥고 머리 아프다…… 살려줘…….'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숭산의 마지막 밤마저 등잔 던지기 하나로 적의 방화 특공대를 폭사시키며, 무림 역사상 가장 뜨겁고 눈부신 '등화신군(燈火神君)'의 신화에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