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76화: 쏟아진 잉크와 사령부의 기적
숭산 요새의 거대한 성문이 무너진 후, 무림맹 선봉대는 요새 내부의 첫 번째 연병장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적들은 요새 깊숙한 곳의 3중 방어선이자 미로처럼 얽힌 내성(內城)으로 물러나 완강하게 저항했다. 내성의 통로는 수십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곳곳에 치명적인 진법과 부비트랩이 가득 차 있어 까딱하면 큰 인명 피해를 입을 판이었다.
임시 지휘소 막사 안, 맹주 혁련진과 장수들은 양가죽으로 그린 내성 지도 주변에 모여 어두운 표정으로 논쟁하고 있었다.
"어느 통로로 진격해야 마교의 복병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정보가 너무 부족하네."
탁자 끝에 앉아 있던 남궁성은 골이 깨질 듯한 편두통 속에서 눈을 감고 신음했다.
"아…… 어지러워…… 나 죽는다……."
그는 그저 구석에 조용히 누워 잠을 자고 싶었으나, 맹주와 장로들은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을 '깊은 심계를 굴리는 천재의 고뇌'로 착각하며 조용히 숨을 죽였다.
남궁성은 이 지옥 같은 회의에서 벗어나 쉬기 위해 붓을 들어 지도 구석에 "나는 아프니 먼저 가겠소"라고 적으려 했다.
그가 벼루에 가득 담긴 검은 먹물 항아리에 붓을 담그려던 바로 그 순간, 뇌맥이 세차게 흔들리며 1각(15분) 뒤의 미래가 번쩍였다.
대략 1각 뒤의 미래.
무림맹의 주력 부대가 내성의 가장 넓고 안전해 보이는 중앙 대통로로 진격한다.
그러나 그 통로는 적들이 준비한 거대한 화요(火窯-불 구덩이) 함정이었다. 군사들이 진입하자마자 성벽 틈새로 엄청난 화염 방사 장치와 폭발탄이 쏟아져 내려, 선봉에 선 남궁휘와 무사들이 불귀의 객이 된다. 정파 연합군의 심장이 타들어 가며 공성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비참한 파국이었다.
"으악! 불장난이라니! 이 마교 놈들은 요새 안에다가 대형 화로를 설치해 놨잖아!"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지도의 중앙 대통로로 진격하면 전멸이었다.
그렇다면 안전한 경로는 어디인가? 예지를 좁혀보니, 지도 우측 구석의 아주 좁고 부식된 폐수로 장치와 내성 동쪽의 얇은 흙벽을 부수고 진입하는 우회로가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중앙 통로를 지우고, 동쪽 흙벽의 약점을 아군에게 알려줘야 해. 마침 내 손에는 가득 찬 먹물 항아리가 들려 있군.'
남궁성은 예지를 기막히게 조율했다.
그가 붓을 휘두르다 뇌맥의 마비로 인해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경련의 반동으로 먹물 항아리를 통째로 들이받아 지도 위로 쓰러뜨린다.
쏟아진 검은 먹물은 양가죽 지도의 굴곡과 접힌 틈새를 따라 흘러가며, 위험한 중앙 통로 전체를 새까맣게 덮어 지워버린다.
그리고 흘러내린 먹물의 뾰족한 끝부분이 동쪽 내성 벽의 가장 취약한 지점(점토로 마감된 부실 벽)을 정확하게 가리키며 멈추는 미래가 그려졌다.
'좋아, 먹물의 흐름을 믿어보자!'
남궁성은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비틀거리며 먹물 항아리로 붓을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
"끄으으윽……!"
뒷목을 잡고 강한 경련을 일으킨 남궁성의 손이 탁자 위의 거대한 먹물 항아리를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콰당탕! 철퍼덕!
항아리가 쓰러지며 칠흑같이 검은 먹물이 양가죽 지도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앗! 지도가!"
장수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쏟아진 먹물은 신기하게도 양가죽 지도의 거친 주름과 접힌 홈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은 먹물은 내성의 주 통로인 중앙 대로 구역 전체를 완벽하게 뒤덮으며 검은 얼룩으로 지워버렸다.
그리고 먹물 줄기의 가장 얇고 뾰족한 끝자락은, 내성 동쪽 벽면의 작은 배수로 모서리 근처의 얇은 벽 좌표를 화살표처럼 가리킨 채 딱 멈춰 섰다.
남궁성은 쏟아진 먹물이 손과 옷깃에 잔뜩 묻은 상태로 탁자 위에 엎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이럴 수가……!"
회의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던 무림맹주 혁련진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남궁 소협께서는 중앙 통로가 적들의 함정으로 가득 찬 '사지(死地)'임을 온몸으로 표현하신 것이오! 검은 먹물로 죽음의 길을 지워버리시고, 동쪽 배수로 옆의 부실한 벽을 뚫고 들어가라는 계시를 내리신 거란 말이오!"
남궁휘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형님! 말로 설명할 시간조차 아까워 묵신의 권능으로 승리의 궤적을 그리시다니! 이 어찌 하늘의 장난과도 같은 신산이옵니까!"
"동쪽 벽을 파쇄하라! 그곳으로 내성을 침공한다!"
맹주의 호령에 따라 무림맹의 파쇄병들이 동쪽 얇은 흙벽을 들이받아 무너뜨렸다.
쿵!
벽이 무너지자, 그 안쪽에는 마교의 어떠한 방어 장치도 없는 텅 빈 비상 통로가 나타났다. 그 통로를 통해 진입한 무림맹 무사들은 중앙 통로 벽 뒤에서 화염 방사 장치의 방아쇠를 쥐고 대기하던 마교의 화약 복병들의 등 뒤를 덮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들을 몰살시켰다.
내성의 2중 방어선이 손쉽게 붕괴한 것이다.
남궁성은 얼굴과 손이 검은 먹물로 엉망이 된 채,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지도 다 배렸네……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내 옷은 또 왜 이 모양이고…… 진짜 집에 가서 씻고 자고 싶다…….'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내성의 공성 회의마저 먹물 쏟기 하나로 적의 화염 함정을 회피하고 최적의 진격로를 뚫어내며, 무림 역사상 가장 괴이하고도 완벽한 '묵안군사(墨眼軍師)'로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