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71화: 비틀린 바퀴가 불러온 천동 (4부 시작)
숭산의 서늘한 새벽안개가 계곡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마교의 최후 정예 부대이자 악명 높은 '흑영마군(黑影魔軍)'이 계곡 너머에 포진했다는 소식에 무림맹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무림맹 무사들의 사기는 그 어느 때보다 드높았다. 그들의 맨 앞, 가장 안전하면서도 눈에 잘 띄는 나지막한 언덕 위에는 정파 무림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군신인 남궁성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머리야…… 대가리가 쪼개질 것 같아……."
남궁성은 양 콧구멍에 삼베 솜뭉치를 쑤셔 넣고, 이마에는 차가운 물수건을 얹은 채 가죽으로 덧댄 안락한 바퀴 의자(륜의)에 누워 있었다.
최근 며칠간 연달아 예지 능력을 사용해 인과율을 비튼 대가는 참혹했다. 뇌맥이 펄떡일 때마다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밀려왔다.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침을 질질 흘릴 지경이었다.
그의 곁에서 륜의를 지키고 있던 사촌 동생 남궁휘와 무림맹주 혁련진은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형님…… 천기를 누설하여 정파를 구원하시는 대가로 저리 육신을 깎아 먹고 계시다니, 참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궁 소협의 충의와 혜안은 정녕 하늘에 닿았소. 소협이 몸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니, 이번 전투 또한 필승일 것이오!"
남궁성은 눈알을 굴려 그들을 째려보았다.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가마를 타고 가문으로 튀어 가고 싶었으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욕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저 영감탱이가 뭐라는 거야…… 내가 왜 이 추운 날 계곡 바람을 맞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집에 보내달라고……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서 귤이나 까먹고 싶단 말이다…….'
그때, 남궁성의 뇌리에 벼락이 치듯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지독한 두통과 함께 눈앞이 암전되며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가 스쳐 지나갔다.
무림맹의 선봉대가 좁은 숭산 협곡으로 진입하는 순간.
협곡 좌우 절벽 위 수풀 속에 매복해 있던 마교의 화약술사들이 일제히 불을 붙인다. 절벽 곳곳에 매설되어 있던 수십 발의 '매화뇌화탄(梅花雷火彈)'이 동시에 폭발하며 거대한 암석들이 무너져 내린다.
선봉에 섰던 남궁휘와 맹주의 친위대는 돌더미에 깔려 몰살당하고, 무림맹은 패닉에 빠져 흩어지다 마교의 기습에 전멸하는 처참한 파국이었다.
"으아아악! 폭탄 테러라니! 이 미친 마교 놈들은 매복 전투마다 화약만 쓰냐?!"
남궁성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예지를 피하려면 무림맹 군대를 멈춰 세워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진격 명령이 떨어진 상태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군대를 멈추면 군률이 흐려질 터였다. 게다가 절벽 위의 화약들은 원격으로 터지는 도화선(와이어)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화선 격발 장치는 저 언덕 아래 수풀 속에 숨겨져 있어. 마교의 격발 대장이 구리 와이어를 잡아당겨 터뜨리는 구조야. 그 와이어만 끊거나 미리 터뜨려버리면 되는데…….'
남궁성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 속에서 륜의 바퀴를 굴릴 방법을 계산했다.
그의 륜의 왼쪽 바퀴에는 방향을 고정하는 무쇠 제동 장치(브레이크)가 달려 있었다.
'내가 들고 있는 놋쇠 물병을 언덕 아래로 떨어뜨려 굴린다. 물병이 구르는 방향을 보고 당황한 남궁휘가 몸을 날릴 때, 나는 뇌맥의 두통 페널티로 발작을 일으키며 륜의의 제동 장치를 발로 차서 풀고 그대로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륜의의 오른쪽 바퀴축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무쇠 칼날이 굴러내려 가면서 수풀 속에 매설된 마교의 구리 와이어를 낚아채 감아버리게 만드는 거야!'
와이어가 륜의 바퀴에 감기며 잡아당겨지면, 마교 격발 대장이 눈치채기도 전에 뇌화탄이 '조기 폭발'하게 된다.
그것도 무림맹 군대가 아직 진입하지 않은 시점에, 절벽 위 매복해 있던 마교 화약술사들의 발밑에서 폭발이 일어나 그들을 몰살시키고 협곡 입구를 차단하는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좋아! 휠체어 전차 돌격이다!'
남궁성은 이를 악물고 손에 쥐고 있던 무거운 놋쇠 물병을 스르륵 놓쳤다.
뎅그렁! 또르르르…….
물병이 언덕 아래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굴러가기 시작했다.
"앗! 형님의 물병이!"
남궁휘가 깜짝 놀라 물병을 잡기 위해 상체를 숙이며 언덕 아래로 손을 뻗었다.
바로 그 찰나!
남궁성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듯한 지독한 두통과 함께 눈앞이 하얘졌다.
"끄흐윽……!"
남궁성은 다리를 부르르 떨며 발작을 일으켰고, 그의 발끝이 륜의의 제동 장치 레버를 콰직! 하고 세차게 걷어찼다.
툭! 드르륵!
방향 고정이 풀린 륜의가 가파른 언덕 경사면을 따라 무서운 속도로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형님!!!"
물병을 주우려던 남궁휘가 경악하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미 남궁성이 탄 륜의는 폭주하는 마차처럼 언덕 아래로 쾌속하게 질주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멈춰! 멈춰라 이 빌어먹을 의자야!"
남궁성은 바람을 가르며 속으로 비명을 질렀으나, 다리가 풀려 제동 레버를 다시 당길 수가 없었다.
륜의는 요동치며 언덕 아래 수풀 속으로 돌진했다.
서걱! 지직!
그 순간, 륜의의 오른쪽 바퀴축에 장착되어 있던 장식용 무쇠 칼날이 수풀 사이에 은밀하게 뻗어 있던 검은색 구리 와이어를 정확하게 낚아챘다.
바퀴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구리 와이어를 스르륵 팽팽하게 감아올렸다.
저 멀리 수풀 속에서 격발기를 잡고 대기하던 마교의 화약 대장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어? 와이어가 왜 갑자기 지 혼자 당겨져?! 끄악! 손가락이 감긴다!"
와이어가 바퀴에 감기며 강력한 힘으로 격발 장치를 잡아당겼다.
찰나의 순간, 절벽 위에 가득 매설되어 있던 매화뇌화탄의 내부 신관이 억지로 마찰하며 불꽃을 뿜었다.
쿠쿠쿠쿠쿵---!!!
콰아아아아앙!!!
아직 무림맹 군대가 도달하지도 않은 타이밍에, 숭산 협곡 절벽 위에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엄청난 화염과 폭음이 밤하늘을 찢었고, 절벽 위에서 대기하던 마교의 화약술사들과 복병 수백 명이 폭사에 휘말려 비명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거대한 바위더미가 무너져 내려 마교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끄와아아악!"
남궁성이 탄 륜의는 폭발의 충격 여파로 흔들리다, 흙더미 위로 부드럽게 고꾸라지며 멈춰 섰다.
남궁성은 흙바닥에 처박힌 채 눈을 까뒤집고 신음했다.
"이, 이럴 수가……!"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무림맹주 혁련진은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렸다.
"남궁 소협이 타고 있던 륜의의 방향과 낙하 각도, 그리고 적의 숨겨진 격발 도화선의 좌표를 완벽히 일치시켜 스스로 미끼가 되어 격발 와이어를 파괴하신 것이다! 적의 매복 폭탄을 역으로 터뜨려 적들을 일망타진하시다니!"
뒤늦게 뛰어 내려온 남궁휘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울부짖었다.
"형님!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적의 화약 매복을 깨부수고 정파의 수천 명 군사를 구원하시다니! 이 어찌 눈물겨운 전술이란 말입니까!"
수천 명의 무림맹 무사들은 흙먼지 속에서 남궁성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군신 남궁성! 천동(天動)의 지혜!"
"하늘이 돕는 미친개 소협 만세!"
남궁성은 콧구멍의 솜뭉치를 뱉어내며, 머리를 관통하는 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의자 부서졌잖아…… 나 이제 어떻게 걸어가라고…… 그냥 물 좀 마시려던 것뿐인데 폭탄은 왜 터지고 난리야…… 살려줘…….'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숭산의 최후 결전마저 바퀴 의자 폭주 하나로 적의 화약 진법을 박살 내며, 무림 역사상 가장 용맹하고 헌신적인 '바퀴 의자의 군신'으로 영원히 박제되고야 말았다.
(4부 강호의 평화와 미친개의 전설 -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