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59화: 찻주전자가 깨운 땅의 기운
정파 연합군이 남궁휘와 설영의 맹활약으로 비무 대결에서 이미 2승을 선점하여 최종 승리를 확정 지었다.
그러나 마교의 총사령관이자 잔당의 우두머리인 '마도(魔刀) 무약(無若)'은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검을 뽑아 들며 비무대 위로 걸어 올라와, 남궁성을 가리켰다.
"소가주 남궁성! 정파 무리들이 너를 대군사이자 천재라 칭송하는데, 기어이 마지막 대결은 너와 내가 직접 겨루어야겠다! 소문대로 검을 쓰지 않고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지 내 직접 시험해 보마!"
연무장 전체의 시선이 남궁성에게 쏠렸다.
정파 무사들은 환호했다.
"소가주 삼공자님의 심검(心劍)을 드디어 보게 되는구나!"
하지만 남궁성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미쳤어?! 저 험악한 떡대 늙은이가 날 죽이려 하잖아! 내공도 없는 내가 저 쇠뭉치 칼에 스치기만 해도 내 허리가 동강 난다고!'
남궁성은 기절한 척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맹렬하게 쏟아지는 시선들 때문에 강제로 비무대 위로 기어 올라가야 했다. 그는 긴장 완화를 위해 뜨거운 매화차가 담긴 묵직한 황동 찻주전자(銅茶壺)를 품에 안고 비무대에 올라섰다. "추위를 타서 차로 몸을 보하겠다"는 핑계였다.
남궁성은 비무대 중앙에서 무약과 마주 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무약이 거대한 마도를 휘두르며 폭풍처럼 쇄도한다. 남궁성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하지만, 궤적을 피하지 못하고 무약의 검기에 심장이 꿰뚫려 즉사하는 비참한 미래가 선명하게 보였다.
"으악! 기권! 기권하고 싶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왔다. 인과율을 대대적으로 비틀어야만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무약의 쇄도 경로를 대지의 충격으로 날려버려야 해. 마침 비무대 정중앙의 청석 바닥 틈새 아래에는, 숭산의 화산 온천 맥락이 지나는 뜨거운 온천 수증기 기공(氣孔-가스 배출구)이 쐐기돌로 아슬아슬하게 봉인되어 있는 상태지.'
쐐기돌은 지렛대 원리로 한쪽 끝을 강하게 누르면 뒤집어지며 온천 증기를 방출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남궁성은 예지를 미세하게 수정했다.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남궁성이 다리가 떨려 비틀거리다 앞으로 고꾸라지며 안고 있던 무거운 황동 찻주전자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주전자가 굴러가 쐐기돌의 지레 끝을 강하게 들이받는다.
쐐기돌이 뒤집어지며 지하 깊은 곳에 응축되어 있던 뜨거운 온천 매연과 수증기 기둥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뿜어져 나온다.
마침 쇄도하던 무약은 발밑에서 뿜어진 수백 도의 펄펄 끓는 수증기 폭풍에 직격당해 하늘 높이 날아가고, 비무대 밖 마교 진영의 텐트 위로 정확히 처박혀 기절하는 미래가 나타났다.
'좋아, 찻주전자의 무게감을 믿어보자!'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 속에서 찻주전자를 꽉 움켜쥐며 눈을 떴다.
무약은 검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간다, 남궁성! 내 칼을 받아라!"
"비무 시작!"
심판의 선언과 함께 무약이 대지를 밟으며 쇄도해 들어왔다. 그의 마도에서 시커먼 검기가 휘몰아쳤다.
바로 그 찰나!
남궁성은 다리가 풀려 앞으로 철석 자빠졌다.
"으와앗!"
그가 쓰러지던 손에서 미끄러진 무거운 황동 찻주전자가 바닥 청석을 타고 번개처럼 굴러갔다.
데굴데굴- 탁!
찻주전자는 기가 막히게도 비무대 중앙에 박혀 있던 박쥐 모양 쐐기돌의 모서리를 정확하게 들이받았다.
깡!
쐐기돌이 지레처럼 휙 뒤집어졌다.
그와 동시에, 쐐기돌 아래 봉인되어 있던 숭산 지하의 펄펄 끓는 온천 수증기 기둥이 대포 쏘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어, 어어?! 이게 뭐야?!"
쇄도하던 마교 총사령관 무약은 자신의 발밑에서 벼락처럼 솟구쳐 오른 수백 도의 온천 매연 폭풍에 신형이 직격당했다.
그의 거대한 몸뚱이는 허공으로 십 장 높이 날아올랐고, 비무대 밖 마교 사령부의 대형 텐트 정중앙으로 번개처럼 날아가 처박히며 대자로 뻗어 기절해 버렸다.
연무장 전체에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고요해졌다.
심판인 무림맹 장로가 경악에 차 소리쳤다.
"무약, 비무대 이탈! 승자, 소가주 남궁성! 정파 연합군의 3대0 완승이다!"
와아아아아!
수만 명의 무사들이 칼을 뽑아 치켜들며 남궁성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
정파 선봉대장 혁련풍 장군은 눈물을 흘리며 남궁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가주 소협! 칼을 쓰지 않고 오직 찻주전자 하나로 땅의 기운을 다스려 적의 수장을 기절시키시다니! 이 어찌 천문지리와 신산귀모의 대승리가 아니겠소!"
남궁휘 역시 경탄하며 검을 거두었다.
"형님…… 땅의 기맥을 다스려 적의 수장을 무력화시키다니, 형님의 계산은 정말 천하를 다 지배하고 계십니다!"
남궁성은 뜨거운 차가 쏟아져 축축해진 바닥을 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 소중한 매화차 다 쏟아졌네…… 주전자는 찌그러지고…… 나 진짜 무서워서 자빠진 건데…… 제발 집으로 보내달라니까…….'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3대3 비무 대결의 마지막 경기마저 찻주전자 하나로 적의 수장을 숭산 비탈길 너머로 날려버리며 무림 역사상 가장 괴이하고도 위대한 '천하제일의 군사'로 거듭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