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보는 세가의 미친개

55화: 철기(鐵氣)의 장막
하남성 숭산(嵩山) 전선에 마련된 무림맹(武林盟)의 거대한 야전 사령부.
수만 명의 정파 무사들이 운집해 기치를 올리고 있었고, 사방에서는 긴장감 도는 철기(鐵氣)의 서슬이 진동하고 있었다. 원정대를 이끌고 합류한 남궁성은 무림맹의 선봉대 부대장 겸 군사(軍師)로 임명되어 즉각 본회의장으로 안내받았다.
맹주 혁련진의 대행이자 선봉대 총지휘관인 혁련풍(赫連風) 장군은 남궁성에게 포권을 취하며 지도 앞으로 인도했다.
"소가주 소협! 소협의 그 신산귀모의 안계로 우리 정파 선봉대의 기각지세(掎角之勢) 진형을 검토해 주시오. 마교의 본대가 바로 저편 골짜기에 주둔해 있소이다."
남궁성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내가 기각지세고 뭐고 군사 진법을 어떻게 알아! 책에서 삼국지 읽은 게 전부인데! 여기서 잘못 의견을 냈다간 내 목숨이 가장 먼저 날아간다고!'
남궁성은 이 끔찍한 군사 회의를 빨리 끝내고 쉬기 위해 눈을 감았다.
대략 1각(15분) 뒤의 미래.
회의가 끝나고 남궁성이 배정받은 사령부 중앙의 임시 텐트에서 잠들려 할 때, 텐트 바닥 흙속에 숨겨져 있던 마교의 지하고(地下道-비밀 터널) 해치 문이 열린다. 터널을 통해 침투한 마교의 '귀영침투조(鬼影渗透組)' 고수 10여 명이 튀어나와 텐트 안의 남궁성을 납치하고 사령부를 뒤흔드는 끔찍한 미래가 보였다.
"으악! 내 침실 밑에 지하 터널이 뚫려 있단 말이야?!"
남궁성은 지독한 두통을 견디며 침투조를 무력화할 방도를 찾았다.
터널의 탈출구 해치는 텐트가 설치될 구역의 구석진 흙바닥이었다.
'그 흙바닥 위에 사람이 도저히 밀어 올릴 수 없는 수천 근 무게의 쇳덩이를 얹어놓아야 해. 마침 사령부 한구석에는 무사들이 쓸 무거운 무기철궤(무기 상자) 수십 상자가 쌓여 있군.'
남궁성은 예지를 미세하게 수정했다.
그가 배정받은 텐트 위치를 보고 "나는 몸이 허해 쇠의 기운(鐵氣)을 받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저기 쌓여 있는 무거운 철제 무기 궤짝들을 내 텐트 침상 바닥 밑에 촘촘히 깔아다오!"라고 해괴한 요구를 한다.
무사들이 의아해하면서도 남궁성의 명령에 따라 텐트 바닥에 백 근 무게의 철궤 수십 상자를 촘촘히 깔아 요새 같은 철제 침상 바닥을 만든다.
잠시 후, 지하 터널에서 귀영침투조가 올라오기 위해 아래에서 해치 문을 밀어 올리려 하지만, 그 위에 실린 수천 근의 철궤와 남궁성의 몸무게(……) 때문에 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터널 안에 갇힌 침투조는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가며 켁켁거리고, 바닥에서 둥 둥 울리는 비명 소리를 들은 호위 무사들이 바닥 철궤를 치워 자객들을 손쉽게 생포하는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좋아, 쇠기운을 핑계로 삼자!'
남궁성은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눈을 떴다.
혁련풍 장군이 의견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궁성은 지도 위의 한 지점을 짚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진형은 훌륭하오. 다만, 내 개인 텐트는 저기 서쪽 무기 보관 창고 구역에 설치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몸의 음양이 불균형하여, 무거운 철제 무기 상자 수십 개를 텐트 바닥에 촘촘히 깔고 그 위에 침상을 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소이다. 무기의 철기(鐵氣)를 흡수해야 하오."
장군들과 장로들은 귀를 의심했다.
"텐트 바닥에 무기 상자를 깔고 주무신다니…… 이 무슨 괴이한 법문이란 말인가?"
하지만 남궁휘는 이미 무사들을 이끌고 백 근 무게의 철제 무기 상자들을 나르고 있었다.
"형님의 깊은 요법(療法)이시다! 즉시 텐트 바닥을 철궤로 메워라!"
탁! 탁! 탁!
순식간에 남궁성의 개인 텐트 바닥은 수천 근 무게의 철제 궤짝들로 빈틈없이 도배되었고, 남궁성은 그 철제 침상 위에 비단 이불을 깔고 누웠다. 아주 튼튼하고 차가웠다.
남궁성이 잠자리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바닥 아래 깊은 곳에서 아주 미세하게 쿵, 쿵, 쿵 하는 둔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아래에서 첩자들이 지하 터널 해치 문을 열기 위해 어깨로 들이받고 있는 소리였다. 하지만 남궁성이 누워 있는 침상 바닥 밑에는 수천 근의 강철 궤짝이 짓누르고 있었기에, 문은 눈곱만큼도 들리지 않았다.
"어라? 바닥에서 북소리가 나네?"
남궁성이 텐트 밖의 호위 무사들을 불렀다.
"바닥 밑에서 쥐새끼들이 드럼을 치는구나. 철궤를 치우고 땅을 파보아라."
남궁휘와 무사들이 즉각 텐트로 들어와 철궤들을 들어내고 흙바닥을 파헤쳤다.
철컥!
숨겨져 있던 지하 석판 해치가 열리자, 안쪽에서 매운 가스 대신 산소 부족으로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기침을 하는 마교의 귀영침투조 고수 10여 명이 줄줄이 비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컥! 켁! 살려줘! 숨 막혀 죽을 뻔했다!"
무사들이 번개같이 날아올라, 산소 결핍으로 비틀거리는 자객들을 단숨에 포박했다.
선봉대 총지휘관 혁련풍 장군은 텐트로 달려와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백지장처럼 질린 채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소가주 소협……! 사령부 한가운데 뚫린 지하 비밀 통로의 위치를 미리 파헤치시고, 무기 상자를 이용해 쇠의 기막힌 무게로 적들을 터널 안에 생매장시키시다니! 이 어찌 천문지리와 심령(心靈)의 경지란 말이오!"
남궁휘 역시 감격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형님…… 철기(鐵氣)를 받겠다는 핑계로 가문의 무사들과 사령부의 안위를 지키신 저 숭고한 혜안, 소생은 평생의 자랑으로 삼겠습니다!"
남궁성은 철제 상자 위에서 허리를 주무르며, 뇌맥을 관통하는 편두통 속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바닥이 너무 딱딱해서 허리 부러지는 줄 알았다고…… 자객은 흙 속에서 왜 튀어나오고 난리야…… 침대 좀 푹신한 거로 바꿔줘…….'
남궁세가의 공식 미친개 남궁성은, 그렇게 숭산 사령부의 첫날밤마저 텐트 바닥 무기 상자 깔기로 마교의 특급 지하 침투조를 생매장시키며 무림맹 전체의 전설적인 '무패의 대군사'로 등극하고야 말았다.